나는 식품제조를 하는 공장에서 생산자로 일한다. 오늘도 누구나 들렸을 법한 편의점에 진열되는 도시락, 김밥, 삼각김밥, 햄버거, 샌드위치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이곳에 입사한 지도 어느덧 6년이 다 되어간다. 음식을 만들어내는 곳인 만큼 이곳에선 음식이 최고 갑의 위치에 있다.
지난 이야기- 오늘이라는 세상의 주문을 받고 출근버스에 오른다.
원재료
태양은 반드시 떠오른다
원재료가 자라는 대지 위에태양이떠오른다. 원재료에 태양이 필요하듯 나란 원재료를 비춰줄 태양을 내 가슴속에 띄운다면 외부의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 혼자서도 음식(갑)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료를 수확할 수 있는 가능성이 늘기 때문이다. 나란 원재료에 끊임없이 신경 쓰다 보면 그 태양은 반드시 떠오른다. 나란 원재료의 가격부터 올리는데 힘쓰도록 하자. 그러면 인간관계의 많은 부분을 풀 수 있다. 결국 나에 대한 존중이 인간관계의 출발이다.
몸과 마음의 돌봄은 항상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출근 버스가 오고 있다. 공장에 도착하기까지나의 신선도를 유지해야 한다. 최고의 하루를 보낼 나를 준비해야 한다. 일단 잠은 잘 잤고 컨디션 조절을 해놨기에 몸의 포장은 좋다.새벽의 감사함을 흠뻑 들이마시며 마음의 포장을 끝낸다. 출근버스에 앉아 뇌의 주름도 매만진다.음악으로, 글쓰기로, 독서로, 생각으로 보이지 않는 나를 들여다본다. 가끔 눈이 퀭한 상태가 될 땐 얼른 잔다. 퀭한 눈으로 새벽부터 병든 닭은 주문취소될수도 있다. 버스가 어느새 공장에 도착했다.
동료라 서로 메어줄 수 있다
공장입구다. 하나 둘 모여드는 사람들. 포장 상태가 풀린 동료들도 보인다. 눈이 조금 풀리고 다리가 조금 풀린 이들이 보일 때가 있다. 괜찮다. 동료라 서로 메어줄 수 있다. 웃으며 크게 인사하고 같이 올라가며 좀 도와주면 된다. "넌 뭐가 그리도 기쁘냐."라며 포장을 더 풀어헤치는 사람도 있으니 잘 살피자. 때론 돕고 싶어도 일단 물러나야 할 때도 있다.
항상 변함없는 미소
공장 출입문을 열고 건물 내부로 들어간다. 일단 체온측정이다. 우린 모두 체온을 재는 체온측정 ai봇 앞에 서야 한다. 365일 체온계를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흐트러짐 없이 우리의 건강을 체크해 주는 모습이 수년 전 개봉한 디즈니의 빅히어로에 나오는 베이맥스라는 의료 봇이 떠올라 그를 ai봇이라 표현했다. 그는 한 명 한 명 체온을 세심하게 재고 친절하게말해준다. 우린 그 체온을 체온기록지에 자필로 기재한다.체온에 이상이 있을 시 건강상태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공장엔 많은 장인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열을일부러 내서 체온을 올리는 장인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헤어캡과 마스크도 나눠주는 역할까지 겸임한다. 그는 내가 미소 지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
헤어캡을 안 쓰면 들어갈 수 없는 문을 열고 들어가 탈의실로 향한다. 헤어캡에 위생모를 뒤집어쓰고 새하얀 위생복으로 환복하고 받은 마스크를 착용한다. 눈은 내놓는다. 눈은 일과 중 생길 수 있는 상태를 계속 체크해야 하는 곳이기에 드러낸다. 가끔 광기의 눈, 억울함의 눈, 분노의 눈 상태를 보이는 이, 음식이라는 갑 아래 꼴값이 되려 하는 눈을 체크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아프거나 다치거나 힘들어도꾹 참고 일하는 분들의 눈이 체크 0순위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말없이 버틴다는 것이기 때문에 눈이라도 파악해야 한다. 이곳엔 저마다 깊은 사연의눈들이있기에 그들의 상태를 동료들이 서로서로 읽어줘야 한다.
마지막 문(죽음)까지 모두가 평등하다
위생세척실에 도착한 우리들은 전신거울 앞에서 온몸을 롤러질하며 보이지 않는 먼지마저 떼어낸다. 손을 세척하고 말리고 주정까지 뿌린다. 주정은 살균소독제라 보면 된다. 다음은 에어샤워기이다. 바람이 몇 초간 온 사방에서 강력하게 나온다. 이제 손 포장 차례이다. 우리가 안전하게 하루를 시작했음을 알리는 출근지문을 찍은 후 위생장갑으로 손포장마저 끝낸다. 마지막 문을 열기 전 자신을 한 번 더 점검하라고 거울과 롤러가 있는 공간이 있다. 옷매무새는 어떤지, 삐져나온 머리카락은 없는지, 이른 아침부터 나오느라 피곤한 몸과 마음을 다잡았는지, 버스에서 눈을 붙이느라 안 떨어진 눈곱이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야 한다. 주정이 나오는 위치에 손을 대면 센서 작동으로 마지막 문이 열린다. 이 마지막 문까지 모두가 평등하다.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하고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 우린 그렇게 모두가 이 문까지 같은 길을 간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드디어 현장이다. 만약 음식이 없다면 우린 살 수 없다. 특히나 난 음식이 없다면 일자리도 잃는다. 음식은 인간에게 있어 갑 중의 갑이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꼭 식품공장으로 보내주길 바란다. 이곳이야말로 음식이 갑이 되는 세상이다. 관리자든 생산자든 회사대표든 이 갑 앞에 모두가 을이 된다. 각자의 위치가 다를 뿐인데 그러지 않는-갑질이 생기는-일들이 인간관계에 끊임없이 되풀이된다.갑 중의 갑인 음식도갑질은 안 한다. 그저 갑의 위치에서 있어야 할장소에비치되어 서있다. 모두가 이와 같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일이 멈추는 기적이 일어나고 음식이 내려와 어깨동무를 하듯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모두가 배부를지도 모른다. 서로 존중하고 아끼는 세상이 되었으면 바란다.
서로 존중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자
내가 처음 본 공장의 모습은 갑을관계가 다소 심해 보였다. 갑은 갑인데 꼴값인 사람들. 을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고개를 못 드는 사람들. 나 역시 꼴값일 때도 있고 을의 마음가짐으로 지낼 때도 있다. 늘 일어나는 이런 일들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들이다. 하물며 인간관계에서 갑과 을은 상황과 위치에 따라 변한다. 정신없다. 복잡하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과 말을 해야 하는지 고민 끝에 최선이라 생각해서 선택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상대를 존중한다고 했는데도 상대가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결국 속상하고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러나 나의 선택에 대한 상대의 반응 또한 상대가 가진 선택의 자유이다. 이것을 존중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자. 그러나 존중하지 않아야 될 때도 있다. 그땐 주문의 노래를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