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일상
운동 하나 안 하면서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었던 M은 공장의 육체노동이 힘들고 버거웠다. M은 공돌이, 공순이라 불리는 공장노동자를 사회적 약자 소위 밑바닥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연히 공장은 생각도 안 해봤던 일터였다. 그러나 가야 했다. '왜 넌 여기까지 왔니?' 자신에게 던지는 이 질문의 답을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던졌다. 분노와 후회가 치솟다가 숨을 쉴 수 있음에 감사하다가를 반복했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도 한다. 실수를 넘은 잘못을 하면서도 잘못인지 모르고 지냈던 시간을 축복 같은 운으로 빠져나왔지만 깨어나니 현실이었다. 깨어나면 밝을 거라고만 생각했지만 이곳 또한 어두워 보였다. 그나마 부, 명예, 명성, 화려한 네온사인 같은 거품의 꿈은 깨어났다. M이 다시 만난 일상은 그런 세상이었다.
그 무엇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해결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일적인 대화 말고 대화를 안 했다.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방패를 두르고 지내던 그 어느 날. 방패를 깨뜨리려는 자가 있었으니. 17살 아래의 동생이었다. 동생은 처음부터 M을 형이라 불러주었다. M이 존댓말을 계속하는데도 4개월을 계속 그렇게 불러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은 말했다. "형 이제 삼촌이라 부를게요." 철벽 같던 방패를 뚫기에 그 창은 너무나 강력했다. 무력이 장난 아니다. 방패는 뚫렸고 "삼촌은 좀 그렇지. 그냥 형이라 불러." 라며 공장에서 처음 말을 트게 되었다. 사람을 밀어내고 막으면서도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는 모순(矛盾)이 깨졌다.
어찌 보면 이 사건은 [사람 곁에 사람이 있다]는 M의 인간관계에 첫 줄을 이었다. 그렇게 이 공장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갔고 그들은 M에게 인간관계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거품 가득히 묻힌 채 살았던 M의 곁엔 거품 목욕도 할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밑바닥은 그들이 아닌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본인이 인생의 약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이제야 사람의 형색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나 거울을 보면 괴물처럼 보였었던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Monster 가 몸에서 빠져나갔다.
6년 후
주문
따릉 따릉. 05시 알림이 울린다. 주문이 들어왔다. 세상이 날 찾는 주문알람이다. 세상엔 아직 내가 갈 곳이 많다. 일터, 가정, 도서관, 카페, 소중한 벗들 그 밖에도 날 찾는 주문이 많다. 잠시 세상에 내가 설 곳이 없다고 느꼈던 그 순간에도 난 주문받고 있었다. 그 주문 하나하나가 희미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희미한 주문의 빛이 모이고 모여 칠흑 같던 나의 동굴에 빛이 되어주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던 그 동굴에 비친 빛은 작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꿀벌이 모이고 모이면 말벌도 이겨낼 수 있는 것처럼. 형이라 부르던 하루하루가 모여 만든 동생의 창이 나의 방패를 뚫어낸 빛이 된 것처럼. 희미한 빛들이 모이고 모여 한줄기 빛을 비춰주는 것처럼. 자신의 빛이 희미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 빛이 필요하기에 주문한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희미한 빛이 되기 위해 예측불허의 사건이 끊이지 않는 공장출근버스에 몸을 싣는다.
아픈 몸과 지친 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도 끝끝내 해낼 동료들이 다치지 않길 바란다. 그들과 난 오늘도 편의점에 들를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맛있는 음식을 만들러 출근한다. 나에게 이 공장은 꿈과 행복을 만들게 해 준 드림팩토리이자 행복공장이다.
딸랑딸랑
숨이 배고파 들렀던 그때 그 편의점 소리
따릉따릉
숨이 벅차게 행복할 주문의 노래를 부르자.
♬당신을 주문합니다~♬
음의 진동과 파장은 바꿀 수 있다.
음악에 무지한 나의
단조에서 장조로의 전조를 시작한다.
삶의 진동과 파장도 반드시 바뀐다.
♬당신의 삶은 바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