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나요...?

by 여울

웹소설을 가끔 읽는다. 요새는 바빠서 건너뛰기도 하지만 그래도 주말에 여유로울 때면 들여다본다. 웹소설에도 감동을 주는 좋은 작품들이 많이 있다. 좋아하는 작가들도 많이 생겼다. 다만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고 매번 감동을 주고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자야'작가님은 믿고 보아도 좋다. 앗, 오늘의 이야기는 이 부분이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로판에는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지 않은 작품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세 가지 키워드란 회빙환이다. 회귀, 빙의, 환생. 상당수의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어리석음에 후회하고, 집착에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하고, 바보같이 착하게 이용당하며 살다가 죽임 당하고, 권력에 취해 악행을 저지르다가 마지막에 파멸하는 삶을 산다. 그리고 죽기 전에 후회를 하고 참회를 하고 한 번의 삶을 간절히 바란다. 이런 경우는 회귀. 그리고 좋아하던 소설 속 주인공 내지는 조연으로 빙의 그리고 환생. 그리하여 복수를 하거나 예전보다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하거나 하여 후회의 여지를 없애고 악행을 저지르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 물론 가끔 "난 예전 삶에서 너무나 힘든 고시생 혹은 대학원생, 죽도록 야근만 하는 삶을 살았어. 결과는 밤늦게 지쳐 집에 돌아오는 길 트럭에 치여 혹은 괴한에 의해 죽었고. 그러니 이번 삶에서는 꿀만 빨 거야!."라고 하지만 결심이 제대로 이뤄지는 경우는 매우 드믈다.


그래서 나도 생각해 본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가? 이십대로 돌아가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한 때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재벌집 막내아들'과 같은 경우라면 엄청난 부를 거머쥘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그게 정말로 내가 원하는 삶일까. 나는 그 정도로 치밀하게 차곡차곡 쌓아 올리지는 못하겠고, 대출받아서 집을 좀 사고, 카카오 주식과 삼성 주식을 사놓고 나서 나중에 파는 정도로 끝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으니 '아이들'이다. 어제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책을 읽었다.



"There is no experiece like having children. That's all. There is no substitute for it. You cannot do it with a friend. You cannot do it with a lover. If you want the experience of having complete responsibility for another human being, and to learn how to love and bond in the deepest way, then you should have children."

아이들을 가지는 것 같은 경험은 다시없단다. 그게 전부지. 대체할 것이 없어. 친구와도 안 되고 연인과도 안 되고. 또 다른 인간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그리고 가장 깊은 방법으로 결합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아이들을 가져야 해.


So you would do it again? I asked.

그래서 다시 하실 건가요? 내가 물었다,


"Would I do it again?" he said to me, looking surprised. "Mitch, I would not have missed that experience for anything. Even though..."

"다시 하겠느냐고?" 놀란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미치, 나는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네."


"Even though there is a painful price to pay."

"Because I'll be leaving them soon."

"만약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해도 말이지."

"왜냐면 곧 나는 떠날 테니까."





그래.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바로 아이들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들. 과거와 현재에 대한 지식을 알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부도 쌓을 수 있(을 것 같)고, 친구나 연인, 멘토 등 중요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아마도 그대로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가지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지금 내가 가진 이 소중한 네 명의 아이들이 다시 내게로 온다는 보장이 그 어디에 있을까 말이다. 지금의 삶이 비록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고 시간에 쫓기면서 아등바등 살고 있어도 아이들이 있으니 반짝거린다. 그래서 또다시 책 속에 나오는 이 말. Love each other or perish (Auden)이 의미가 있나 보다. 고전독서모임에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이 부분이다. 사랑을 주는 것은 생산적인 것이라고. 비생산적인 사람은 사랑을 주지 않는다. 자신을 가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랑을 주면서 오히려 내가 더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연인들 사이에서도 가능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 그것은 내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엄마에게 와서 꼭 끌어안는 것인 이 아이들을 보면 오늘 당면한 과제들에 애써 용기를 그러모으다가도 그냥 무방비로 행복에 노출되는 것이다.


그러니 2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봐야겠다. 지금 현재에 충실하면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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