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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Dec 25. 2023

초등학교 원어민 교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초등현장에서 원어민 교사에 대한 딜레마

15년 전에 처음 원어민 교사가 초등학교에 오기 시작했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 온 교사 G는 뉴질랜드 남자분으로 학원에서 일하다 왔다고 했다. 우리는 많이 싸웠다. 나와도 좀 싸웠지만 원어민 담당 선생님과는 더 많이 싸웠다. 초등학교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적었고 수업에 대한 가치관도 달랐다. 내가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을 때 의자에 한쪽 다리를 꼬는 것도 아니고 걸쳐 앉아서 나와 아이들을 구경하는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와 다른 J 선생님은 이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중고등학교에 가면 더 잘 가르칠 것이라는 추천서를 썼다. 


사실 모든 원어민이 G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영어캠프 교사도 하면서 다른 원어민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는데 정말 같이 근무하고 싶다고 여겨지는 분이 한 두 분이 아니었고 많이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어민 교사에 대한 초기의 어려움과 형평성에 대한 불만이 원어민 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키웠다고 본다. 형평성에 대한 불만은 한국 정착 지원에 관한 비용이었다. 한국인 교사들은 교사가 되었다고 거주에 대한 비용을 지원받지 않는다. 그런데 원어민 교사를 데려오기 위해서 비행기 티켓이나 살 집을 구해 주는 것, 심지어 가구와 모든 정착에 대한 도움을 주는 것에 더해서 담당 교사가 다 맡아서 처리해야 하는 부분이 문제였다. 중앙일보 기사처럼 영어 담당 교사는 원어민 교사의 비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변기도 뚫어줬다, 개인비서 전락" 원어민 교사 싫다는 학교들 | 중앙일보 (joongang.co.kr)


원어민 교사를 학교에서 기피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의사소통의 문제. 한국말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챙겨주어야 하고, 수업을 혼자서 할 때와 다르게 미리 의논하면서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부분은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사실 좀 불편하다. 둘째, 한국에서의 거주 및 비자 등의 행정적인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 미리 거주를 하고 있거나 익숙한 원어민이 아니기에 거주지 등록부터 자잘한 문제들을 다 도맡아서 해 주어야 하니 성가신 일은 분명하다. 셋째, 교사 자격증의 문제이다. 사범대를 졸업하여 교사 자격증을 가진 원어민을 우대하지만 구하기 어려웠던 예전 시절에는 교사 자격증 유무와 상관없이 선발했다. 그러니 당연히 초등학교 아이들의 특성을 아는 바가 적은 것은 당연하거니와 사회 초년생들이 많다 보니 직장생활에 대해 알려줄 것도 많다. 어떤 선생님은 조카 뒷바라지하는 이모 같다고 하셨다. 키워 놓으면 길어야 3~4년 정도 있다가 본국으로 돌아가니 계속 한국에 여행 오는 조카들 봐주는 것 같다고. 거기에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다른 문화적 차이에 따른 사고방식이 분명해서 특히 약물 문제로 좀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부분은 계약서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


아...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원어민 교사는 없는 게 나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어민 교사는 초등학교에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외국어를 배우는데, 사실은 사용할 대상이 없다. 간단한 말이지만 내가 4년간 배우고 있는 언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배움의 동기가 된다. 또 한국인 교사가 완벽하게 가르쳐 줄 수 없는 영어 자체의 독특한 뉘앙스부터 시작해서 바람직한 문법적 표현과 문화적 특수성까지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 한국인 교사가 해 줄 수 있는 영어 수업과 또 다른 좋은 수업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작년에 영어 문집을 만들면서 너무나 아쉬웠던 것은 학교에 원어민 선생님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문장을 써 오면 나 혼자 읽어가면서 피드백을 주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가끔은 이 표현이 문법적으로는 맞지만 실제로도 괜찮은지 한계에 부딪혔다. 올해는 학교에 원어민 선생님이 배치되었다. 우리 반을 데리고 영작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내가 1차를 봐주고 원어민 선생님이 2차를 봐 주니 훨씬 좋았다. 이런 프로젝트를 하고 질 좋은 수업을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실력 있는 우수한 선생님을 데려와야 하는데, 그러기엔 교육청과 정부에서 제시하는 조건은 열악하다. 


한국에서 10년 이상 가르칠 경우, 원어민 선생님들은 더 이상 임금 인상의 대상이 아니다. 10년을 근무하든, 20년을 근무하든 10호봉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다. 명절 보너스는 물론이고 성과 상여금도 없다. 예전에 제시되었던 본국을 방문할 수 있는 비행기 티켓도 더 이상 제공되지 않는다. 물론 S 등급의 교사들이 오면 조금은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조건은 미국 유명 대학의 정교수 정도 되는 경력이라야 된다고 하니, 그 경력을 가지고 누가 오겠는가. 그냥 오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몇 년 정도 한국 여행하는 기분으로 머물다가 정말로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 시점이 되고 안정적인 급여가 필요한 시점이 되면 한국을 떠나거나 다른 직장으로 옮기거나 하는 것이다. 기껏 시간과 비용과 공을 들여서 신규 원어민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잘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면 급여 문제로 떠나 버리게 된다니, 이것은 사실 한국 교육현장에서도 손해다. 


지역별로 원어민 선생님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 - 즉, 한국인 교사가 그에 대한 비서처럼 일을 챙기지 않는 시스템, 급여 시스템을 개정할 것 - 한국에서 장기간 신뢰할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해 온 교사가 합리적인 급여를 받아 베테랑 교사가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가진 선생님이 교육 현장에 설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원어민 교사 수를 늘리는 것도 좋지만 우수한 선생님들이 교단을 떠나지 않도록 해 주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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