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의 비 오는 저녁 산책

by 여울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니 왓? 4시가 다 되었다.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떠나기 직전까지 하루에 4시간 정도 자면서 쉴 새 없이 오가며 일을 했다. 그러다 덜렁 여기로 왔으니 A형 독감과 노로바이러스 감염증을 겪으면서도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학년말 업무를 해야 했던 지친 몸에 전날까지 빡셌던 일정으로 몸이 호소를 한 것이지 싶었다. 온천은 거들기만 했을 뿐. 죄가 없었다.


여기가 한국만 되었어도 호텔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을 조금은 더 고려를 했을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아무래도 아쉬웠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도 해야 했고, 수족관은 이미 끝났어도 스카이 빌딩은 꼭 가보고 싶었다.


호텔 밖을 나서는데, 이럴 수가. 비가 오는 것이다. 우산은 놓고 왔는데 그렇다고 우산을 사고 싶진 않았다. 혹시나 싶어 호텔에 문의를 하니 방 호수를 체크하고 선 듯 우산을 빌려준다. 이렇게 크고 좋은 우산을.



밖에 나갔다가 우산을 빌렸다 하는 바람에 또 시간이 지체되었다. 나는 오늘 이 크림롤케이크를 꼭 먹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유명하다는 이 롤케이크 들을. 일부러 여행책자에 이렇게 체크도 해 놓고 사진도 찍어놨다. 둘 다 호텔에서 아주 멀지는 않았다. 다만 일단 밥을 먹어야겠다.


그래서 들린 곳은 도쿄 치카라메시. 규동 마니아인 친구가 여기는 꼭 들리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이틀 연속 규동이야? 싶었는데 일단 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라멘과 우동도 먹고 싶지만 ''부터 먹고 나서 생각하고 싶었다. 제대로 된 첫 식사니까. 초밥도 조금 미루기로 하고. 어제 들렸던 구로몬 시장 바로 옆이다. 일단 여기서 먹고 조금 아쉬우면 그 참치구이를 먹어보기로 했다.



어제 덮밥식으로 먹는 규동을 먹었으니 오늘은 조금 다르게 그냥 밥처럼 먹고 싶었다. 그래서 grilled beef and vegetable set을 하고 고기를 추가했다. 어제 먹어보니 고기 양이 좀 적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일본에선 무조건 고기추가다. 보통은 밥과 고기만 주는데 이 세트는 미역미소된장국이 포함되어 있어 그것도 맘에 들었다.



야채는 알고 봤더니 숙주였다. 뭐 숙주도 아삭하니 좋았다. 나는 야채가 엄청 많을 줄 알았지 ㅋㅋㅋㅋ 고기는 불맛이 입혀져서 바삭하면서 소스는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어제는 덮밥이라 소스에 절여지지 않은 밥알이 없었지만 오늘은 내 맘대로 먹을 수 있으니 나는 덮밥보다는 이렇게 먹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맛있었고. 도쿄 치카라메시는 내 마음의 맛집이 되었다.


밥을 먹었으니 이제 롤케이크를 먹으러 가야지. 그런데 살롱 드 몽셰르가 생각보다 먼 것이다. 걷다가 그만 나는 지쳐버렸다. 이틀간 커피도 한 잔 못 마셨다. 생각해 보니. 그래서 그냥 눈앞에 보이는 커피집으로 들어갔다. 호시노커피. 음? 여기도 책자에서 본 것 같다. 리버뷰 맛집이라고 했는데, 여기 어디가 리버뷰지? 알고 봤더니 호시노커피는 체인인지라 그 리버뷰는 다른 쪽이었다. 걷다 보니 여기저기 진짜 많았다. 재빨리 네이버 검색을 한다. 오오 수플레 맛집이라고. 그런데 혼자 가면 싱글을 시키라고. 다른 리뷰에는 이층인 더블로 되어 있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혼자서 수플레 두 개는 못 먹을 것 같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수플레를 시켰다. 그냥 한 입 먹어보니 부드러운데 좀 밍밍한 것 같아 리뷰에 나오는 것처럼 메이플 시럽을 듬뿍 부었다. 아..... 실패다. 그냥 조금만 부어서 찍어 먹을 것을. 사진은 그럴싸 하지만 너무 달고 촉촉을 넘어선 축축의 정도가 되어 별로였다. 커피는 반값에 리필이 된다고 했던 것 같다. 사실 여기는 브런치 메뉴가 엄청 착한 가격이라는데 다음번엔 도전해 보고 싶다.


이제 커피를 마셨으니 롤케이크를 먹으러 가자. 그렇다. 나는 아직도 이 일본의 롤케이크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했다. 걷고 있는데 이번에는 줄을 길게 선 사람들이 보인다. 뭔가 하고 봤더니 스트로베리 마니아라는 딸기로 만든 디저트집 앞에 선 줄이다. 헐. 다 먹고 싶은데, 저 딸기 아이스크림이 유난히 당긴다. 결국 나는 줄을 서서 이 딸기 아이스크림을 하나 겟 하고 말았다....



딸기 쪽은 상큼하고 바닐라 아이스크림 쪽은 부드럽고, 같이 먹으면 상큼부드러움이 어우러져서 진짜 그윽했다. 아..... 뜨아랑 같이 먹으면 더 좋을 텐데.....


먹으면서 가다 보니 이런 핀볼게임이 있는 가게가 눈에 띄었다. 어릴 때 보고 처음이다. 온갖 종류의 테마로 되어 있다. 나는 반지의 제왕과 호빗 게임을 해 봤다. 호빗은 내가 5위라고 이름을 입력하라고 해서 해 봤다. 하핫. 아마 아무도 안 하나 보다.



우리나라 30년 전 표처럼 생긴 아니 더 작은 지하철 표를 사서 옛날처럼 넣고 통과한다.



우메다 역에 내린다. 여기서 15분 정도 걸어야 한다. 비 오는 밤길을 걷다니.... 하아.... 진짜 일본만 아니었음 나 방콕이다. 여기 우메다 근처는 뭐든지 다 거대해서 거대한 신도시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도톤보리보다 훨씬 더 깔끔하다.



드디어 스카이 빌딩!!! 스타게이트 같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내려올 때도 그러한데 조명 탓인지 정말 반대 느낌이긴 하다. 나는 일부러 야경을 보러 왔다. 흐리고 비 오는 날 노을이 보일리도 없거니와 야경은 그래도 불빛이 비추이니 괜찮겠지 싶었다. 그리고 생각보다도 훨씬 좋았다. 비 오는 정취가 더해져서 바에 앉아서 말차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참 좋았다. 사실 아까 딸기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말차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스카이 빌딩에 오니까 딱! 하고 말차 아이스크림이 있길래 얼릉 샀다. 하루에 아이스크림 두 개라니..... 놀랍다. 평소에는 한 개도 먹지 않는다.




그리고.... 말차 아이스크림은 진짜로 맛있었다. 왜 말차말차 하는지 알겠더라. 또 먹고 싶은데 규동에 수플레에 딸기 아이스크림에 말차 아이스크림까지.. 진짜 많이 먹긴 했다. 루프탑에 올라가서 한 바퀴 돌았다. 비가 와도 우산은 들고 갈 수 없다고 했다. 당연하다. 바람에 우산이 날려가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을 테니까. 은하수가 뿌려진 듯한 길을 걷자니 너무 좋았다. 날씨가 좋은 날은 관측도 있다고 한다. 오늘은 달 관측이었는데 비가 와서 취소되었다고. 집에 오는 길에 일본 탐사선이 달 착륙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같은 날이었다. 어쩌면 탐사선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아마추어 천문가로서 너무 아쉽다.



그리고 기어코 헵파이브까지 가서 관람차까지 타고 말았다. 혹시나 싶어 검색했더니 정상 운영을 한다고 해서 얼른 갔다. 나는 이상하게도 관람차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 있어서 타는 것을 좋아한다. 한강에도 설치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만들어지면 꼭 가야지. 전망차는 천천히 움직였고 나는 도시를 보았다. 약 15분 간 혼자서 즐긴 정취는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났지만 그래도 좋았다.


신세계 백화점 앞 같은 거리를 지나서 다시 호텔 쪽으로 돌아온다. 비가 오는 오사카. 여전히 낯선 이 도시는 오히려 우메다에서 조금 더 다가온 듯 느껴졌다. 다른 곳을 가도 조금 더 그럴까? 도톤보리는 내게 그저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쇼핑장소였지만 우메다에서 오사카의 다른 모습을 보면서 조금 더 거리가 좁혀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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