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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pr 22. 2024

6년 만에 맞춰진 퍼즐 조각

아이들을 오래 가르쳤어도 기억에 유독 선명하게 남는 아이들이 있다. ㅎㅅ이도 그중 하나였다. ㅎㅅ이가 2학년 때 담임이었고 지금 중2가 되었으니 꼬박 6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ㅎㅅ이와 ㅎㅅ이 어머니를 알게 된 것은 그 전해부터 시작되었다. ㅎㅅ이와 둘째는 예전에 같은 반인 적이 있어서 이미 알고 있었다. 학급대표로 봉사를 하시던 ㅎㅅ이 어머니는 좋은 분이셨고 아이도 영특하고 잘하려는 의지가 충만했다. 다만 뭔가 애매한 느낌이 들 때가 가끔 있었다. 무엇이 그럴까 가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나중에 영어 교과를 가르친 같은 학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부분이 조금 더 보였다. 아이는 자존심이 강했고 인정받기를 원했고 동시에 애정도 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늘 적극적이었다. 그런 부분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원래도 상냥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어서 가끔 묘한 충돌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잘 넘어갈 수 있었다.


그 후 다른 학교로 전근을 왔고 6학년 영어 전담을 맡았던 그 첫 주에 나는 ㅎㅅ이를 복도에서 만났다. "앗!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어머나! 너 ㅎㅅ이 아니니?" 그랬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온 가정 중에는 ㅎㅅ이네도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반은 아니어서 오며 가며 복도에서 ㅎㅅ이를 그렇게 보았다. 4년이 지났어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내 마음에 남아있던 아이였다. 그전 학교에서 나는 이미 ㅎㅅ이 동생도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여러 해 지내다 보면 형제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올해 우리 반에 ㅎㅅ이 동생의 이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과 이렇게 인연이 겹치기도 하는구나 하는 신기한 마음이 반반이었다. 그런데 동생의 진단평가 점수가 심상치 않았다. 보통은 수학 과목이 미달인 경우가 많지만 전 과목이 다 고르게 낮았다. 유난히 똑똑하고 전교회장선거에도 나갈 만큼 적극적인 ㅎㅅ이 동생인데 진단평가 점수는 부진을 넘어선 미달이라니. 가끔 이런 경우도 있어서 조금 더 지켜보면 괜찮아지기도 한다. 그래서 일단은 안내를 드린 다음 가르치며 기다려 보았다. 아이는 수학 단원 평가는 어느 정도 보았지만 암기 과목이나 응용 부분에서는 어려움을 보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딩 만들기 수업도 너무 어렵다고 했다. 과학 교과 시간이나 영어 교과 시간에는 모둠원들의 불만이 솟구쳤다. 친구와 장난을 치거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속 물어봐서 본인들의 수업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를 지켜보면서 심각하진 않지만 ADHD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화가 났을 때 본인이 한 말이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집중력의 정도가 짧은 것, 충동적인 경향이 보이는 것들로만 모두 속단할 수는 없지만 한 번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느껴졌다.


드디어 학부모 상담 주간. 제일 마지막 시간에 여유롭게 배정하고 ㅎㅅ이 어머니를 기다렸다. 약간은 긴장된 보이시는 모습으로 교실에 들어오신 어머니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한 달 반의 짧은 기간으로 아이를 모두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유독 내 시선을 많이 가져갔기에 가능한 부분이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어릴 때 많이 아파서 정말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고 여러 종류의 수술을 받으면서 동생에게만 올인했어야 했다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정말 모든 것을 다 챙겨주고 다 해 주어서 홀로서기가 늦어진 것 같아 요사이 노력하는 중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아이도 모든 식구들도 다 힘겨운 과정을 겪는 것을 알고 나니 그제사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ㅎㅅ이의 그 애매했던 부분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라도 아이는 아이. 두 살 어린 동생이 아프니 스스로 혼자서 설 길을 찾아야 했던 아이는 그래도 외로웠을 것이다. 동생이 정말 많이 아프니 어떻게 표현도 하기 어려웠고 혼자서 착착 챙기는 알아서 하는 누나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겠지. 6년 전에 이렇게 제대로 알 수 있었다면 좀 더 안아주고 좀 더 보듬어줄 것을.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이었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니 자기는 영어 시간에 늘 친절하게 대해 주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잘한 것 같다는 대답을 했다. 그 대답이 참 고마웠다. ㅎㅅ이는 내가 걱정을 하던 하지 않던 씩씩하게 잘 자랄 것이다. 원래도 마음이 튼튼한 아이니까 여러 어려움을 잘 헤치고 나갈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필요한 사랑과 정을 많이 많이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은 동생일 수도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충분히 귀한 존재라는 것을, 다음에 우연히 한 번 더 만날 수 있게 된다면 마음 한 자락 더 전해 주어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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