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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ul 10. 2024

교사가 되었으니 이제는 한 우물을 파라는데

4학년 2학기를 앞두고 수능이냐 편입시험이냐 임용고시냐를 놓고 고민했다. 세 분께 조언을 구했는데 내게 다시 공부를 하고 싶은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나의 최종목적은 교사가 되는 것이 맞았다. 다만 그전에 좀 더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고 아이들 앞에 서고 싶었다. 그러자 그럼 임용고시를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세 분 모두 다. 문제는 임용고시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친구들은 모두 3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학원을 다니며 스터디 그룹을 짜서 공부를 했는데 나는 한 학기를 앞두고 공부를 비로소 시작했다. 안 한 이유는, 당연하게도 바빴기 때문이다. 합창동아리 지휘자로서 마지막 동아리 공연과 졸업 연주회를 위해서 겨울 내내 준비한 슈만의 피아노곡으로 역시 마지막 피아노 연주회를 마치고 기말고사와 교생실습까지 마치고 나서야 공부에 돌입할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큰일이다. 남들은 벌써 세 번째 복습에 들어가는데 나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 스터디를 해 보려고도 했지만 잘 맞지 않았고 준비할 시간도 턱없이 부족해서 결국 친구와 둘이 앉아서 같이 그러나 각자 공부하기로 했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교대는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중초임용이라는 화두 앞에서 우리는 무기한 파업을 결정했다.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들을 2주간 교육시켜서 초등현장에 정교사로 보내는 정책이었다. 그분들의 능력을 폄하해서가 아니라 초등과 중등은 애초 달랐다. 파업하는 동안 나는 임용고시 공부를 했다. 원래는 임고를 포기할 생각으로 지장까지 찍었지만 접수 마지막 날, 학생회에서는 우리에게 시험을 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초등교사가 되었다. 


현장에 나와서 발령받은 곳은 내가 4년간 다녔던 모교였다. 졸업은 다른 학교에서 했지만 여기에서 제일 오래 시간을 보냈으니 마음의 모교와도 같은 곳이었다. 이 학교에서 영어를 4년을 가르쳤다. 선배들은 내게 한 우물을 파라고 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영어교육이 내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합창단 지도 교사와 스카우트 총대장을 겸임했다.) 전담으로는 물론 영어를 가르쳤지만, 담임으로서도 연구 교사를 하면서 3년을 영어를 가르쳤다. 마지막 해 역시 전담으로 영어를 가르쳤고, 영어교사 심화 연수에 선발되어서 한 달간 미국에서 국비로 공부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담임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보니 중요한 것은 영어교육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 교육이 중요하고 글쓰기 교육이 중요하고 상담 교육과 인성 교육이 중요했다. 재미있는 놀이지도를 통한 학급 경영도 중요했다. 관심 있던 음악교육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과학 교육의 매력도 눈에 띄었고 친구가 수학 교육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영재 교육을 하기 시작하자 거기도 달리 보였다. 방학과 학기 중에 이리저리 다양한 연수를 받아 보면서 내 마음은 일단 독서 교육으로 기울었다. 한 동안 독서 교육 관련 연수는 정말 쫓아다니면서 열심히 들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또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 연결이 되었다. 독서교육은 연극수업으로, 연극 수업은 글쓰기로, 미술로, 음악으로..... 계속 확장되어 갔다. 그러니 수시로 열리는 수석 교사님들의 수업 나눔도 가능하면 빠지지 않고 들었고 방학이면 독서교육연구회에서 열어주는 자율연수나 놀이연수 같은 각종 다양한 연수들도 자비를 들여가며 들었다. 학교에는 능력자 선생님들이 참으로 많았는데, 리코더 교육을 하시는 선생님을 만나서 리코더를 배우면서 여기에도 또 열심히 따라다녔다. 초등교사는 만능이 되어야 하니 국악 연수도 열심히 들었다. 소고춤도 배우고 장구도 배우고 전통 춤도 배웠다. 체육시간에 무용을 가르쳐야 하니 기본 무용과 댄스스포츠도 배우고 수영교육연수도 들었다. 거기에 조금 더 욕심을 내어서 플룻과 수채화도 배웠다. 


저학년의 필요가 다르고 중학년의 필요가 다르고 고학년의 필요가 다 다른데 해마다 내가 맡는 학년군이 달라지니 나는 이제 정말 무엇을 파야하는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선배들은 한 우물만 파라고 하시는데 그러기엔 내가 가진 기본 능력치가 너무 낮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이리저리 다 채워야 할 것 같았는데 그러다 보니 여기도 저기도 다 모두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다 하게 되어 버려서, 결국 돌아보면 여기도 저기도 특별히 잘하는 것이라고는 딱히 없게 되었다. 나 어쩌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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