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Jun 30. 2024

원래는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었다

이쯤 되면 '원래는 ~하고 싶었다'가 끝나긴 할까

내가 받은 유일한 사교육은 피아노이다. (남들이 다 다니는 영어, 수학 학원은 고등학교가 끝나는 날까지 다닌 적이 없다. 다들 다니니까 방학 때 노량진에 있는 한*학원에 한 달 갔다가 바로 그만두었다.)


엄마의 가장 큰 소망 하나는 딸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엄마는 정말 없는 형편에 짜 내어 피아노를 가르치셨다. 형편이 어려워 이사를 자주 한 만큼 선생님도 자주 바뀌었다. 교회 친구 어머니, 사촌 언니, 동네 학원, 그리고 교회 반주자 선생님. 중간중간 쉬는 텀이 많아서 배운 기간과 피아노를 쉰 기간이 비슷했다. 교회 이모가 주신 낡은 한일 피아노로 나는 6년 정도를 배웠다. 십 대 시절 마지막 선생님이셨던 교회 반주자 선생님께 제일 오래 배웠다. 하지만 같은 이름의 봉천동이었어도 서로의 집은 언덕 이 편과 저 편의 반대편인지라 오가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선생님 댁으로 가는 길은 마을버스가 있었는데 우리 집은 마을버스가 없어서 일주일에 두 번 가는 그날은 그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나는 피아노를 그닥 잘 치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를 반 이상은 해 갔다. 5학년 여름부터 이 선생님께 배우기 시작했는데 붓점, 당김음, 스타카토, 레가토로 매일매일 하농을 치고 체르니를 치고 바흐 인벤션을 치고 소나티네를 치다 보니 6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모차르트 소나타를 치기 시작할 수 있었다. 피아노를 좀 치던 우리 반 아이들이 이미 4학년 때 모차르트 소나타를 수준급으로 쳤으니 나는 상당히 늦은 편이었다. 사실 그전까지 피아노는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또 엄마의 확인이 무서워서 피아노를 쳤다. 그렇게 시켰으니 어쩔 수 없이 치다가 문득 5학년 때 처음으로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아마 그다음부터 진도가 조금 빨리 나갔던 것 같다. 피아노를 조금 친다고 - 말 그대로 조금 - 광고를 하지도 않았는데 4학년부터 풍금으로 음악 수업 반주를 했다. 전학을 간 학교에서도 선생님은 나를 콕 집어서 반주를 시키셨다. 6학년 때는 합창단 반주와 대회에 나가는 아이들 독창 반주를 했다. 


어느덧 치는 곡들은 바흐의 경우 2 성인 인벤션을 넘어서 3 성인 신포니를 치기 시작했고 체르니는 40번을 거의 다 쳤으며 모차르트 소나타를 어느 정도 치자 이제는 베토벤 소나타에 들어갔다. 그때가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 나이 대의 다른 아이들은 영어와 수학 학원을 다니고 아무도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진 않았는데 나는 계속계속 피아노를 배웠다. 피아노만 배웠다. 그렇다고 전공할 수준의 레슨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나를 가르쳐 주시던 교회 반주자 선생님은 입시를 하려면 다른 선생님에게 가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 집 형편에서는 물론 어려운 일이었다.  


고 1이 되었을 때 이제 나는 웬만한 악보는 초견으로 대강대강 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고3 언니들의 향상 음악회 때는 반주를 했다. 그 선배들과는 아무런 연이 없었는데 피아노를 치는 아이를 찾던 선배들을 위해 반주를 하던 친구들은 나를 추천해 주었다. 그렇게 음악을 전공하는 선배들과 나중에는 후배들의 반주까지 해 주면서 이제는 성악곡인 이탈리아와 독일의 가곡들과 다른 기악곡들까지 레퍼토리를 넓혀 가기 시작했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피아노를 배우러 일주일에 한 번씩 반주자 선생님께 갔다. 이쯤 되니 친구들은 내가 전공을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선생님의 학벌 같은 좀 더 구체적인 정보까지 묻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되고 나니 또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피아노가 정말 이렇게 좋은데, 나는 피아노를 전공할 만큼 칠 수 있을까? 그 정도 실력이 되는 걸까? 


당시 아빠는 대학에 가서 피아노를 가르쳐야지 왜 '사교육으로' 피아노를 배운 아이들이 대학을 가냐는 어찌 보면 이해는 가지만 절대로 이해를 받을 수 없는 논리를 계속 펼치셨다. 미리 수많은 금액을 지출해서 그렇게 하는 이 제도권의 음악 교육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너무나 피아노가 치고 싶었던 나는 정말 눈물로 호소를 했다. 반주자 선생님도 "여울이 같은 아이가 전공을 해야 해요. 정말 피아노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아이."라고 대 놓고 말씀하셨지만 부모님은 꿈쩍도 안 하셨다. 어쩌면 엄마는 흔들리셨을지 모르나 아빠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아빠의 또 다른 논리는 모든 예술은 학문적 기반이 탄탄해진 다음에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예술을 정말로 하고 싶으면 공부 먼저, 그러고 나서 예술은 나중이라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시켜주지 않는데 나 혼자 피아노를 아무리 연습을 해도 그 낡은 피아노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한계에 직면한 나는 결국 고1 가을 무렵 피아노를 그만하기로 결정했다.


피아노를 계속 배우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음악을 전공하려는 선배들과 친구들, 후배들과 어울리면서 그쪽으로 계속 마음을 두고 있었다. '대학교에 가면 피아노를 쳐야지'하고 내내 생각하고 있었다. 교대에 들어가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피아노 레슨 안내문이았다. 당시 교대에서는 원하는 학생들에게 정말 저렴한 가격으로 레슨을 받을 수 있도록 선생님을 연결해 주었다. 시간은 고작 30분이었지만 당시 월 가격이 6만 원이었으니 1회 레슨에 만 오천 원 가량으로 거저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4년을 피아노를 쳤다. 날마다 음악관에 안 가는 날이 없었다. 토요일에도 피아노를 치러 학교에 갔다. 하루에 몇 시간씩 피아노를 쳤다. 바흐, 쇼팽, 드뷔시, 플렝크, 모차르트, 프랑크,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슈만 등등 레퍼토리는 더더욱 넓혀졌다. 수업 듣기 전에 피아노를 쳤고 공강 시간에 피아노를 쳤고 수업이 끝나면 음악관이 문 닫을 때까지 피아노를 쳤다. 심지어 남자친구도 피아노를 치는 남자친구를 만났다. 나는 영어교육과였지만 음악교육과 대부분이 내 친구들일 정도로 영어교육과 동기들보다는 음악교육과 친구들과 더 친했다. 자율적으로 했던 철학스터디도 음악교육과 친구들과 함께였었다. 나중에는 졸업연주회까지 준비했었다. 


웃긴 것은 피아노를 원하는 대로 실컷, 제대로 쳐 보니 피아노를 안 한 것이 얼마나 잘 한 선택이었는지 그때서야 알게 된 것이다. 나는 피아노를 좋아하는 것이었을 뿐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웬만하면 노력으로 어느 정도는 커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음악은 타고난 재능이 없이는 매우 매우 힘든 길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매 학기 제자 발표회를 열었는데 나는 항상 끝에서 두 번째 순서였다. (보통 잘하는 아이들이 피날레를 맡는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정말 끝내주게 잘 치는 음악과 내 친구 ㅈㅇ를 나는 따라갈 수 없었다. 내가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5번을 칠 때 내 친구는 리스트 연습곡 마제파를 쳤고 내가 슈만 알레그로를 칠 때 친구는 쇼팽 발라드 1번을 쳤다. 곡 난이도도 차이가 났지만 그 해석과 표현력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넘사벽이었다. 비전공자인 내 친구가 이 정도로 치는데 진짜 전공자들은 얼마나 더 한다는 것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전공을 안 했기 때문에 그래서 오히려 맘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합창 동아리에 들어가서 반주를 하고 지휘를 하고 아카펠라를 했고, 음악 동호회에서 공연을 하고 음악 감상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과외도 심지어 피아노를 가르치는 과외를 하면서 그렇게 대학교 4년을 음악으로 채웠다. 그리고 졸업학기에 나는 고민에 빠진다.



이전 04화 원래는 법대에 가고 싶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