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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un 12. 2024

원래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원래는 법대를 가고 싶었다 I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묻는 것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왜냐면 나 역시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어른들은 묻는다. 아이들은 생각해 본다. 물론 가끔씩 꿈이 매우 선명한 아이들도 있지만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상당수다. 그런 아이들을 두고 어른들은 꿈이 없다느니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른다느니 이런저런 평을 한다.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참 뭔가를 배워가는 시기에 나는 커서 어떤 직업을 가질 거야라고 단언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에 대해서 정말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적는 칸이 사라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심지어 본인 희망과 부모 희망 란이 따로따로 있었다. 가끔 부모 희망 란에 "자녀 본인의 희망대로"라고 적으시는 분들이 있었다. 


그럼 나는 어떤 직업을 갖고 싶었을까. 중학생 때는 천문학자나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4학년 우연히 만나게 된 밤하늘은 매혹적이었다. 처음 접하는 밤하늘의 별자리와 신화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중성이나 성단, 성운, 은하와 같은 좀 더 깊은 딥스카이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즐거움에 흠뻑 취했다. 집에는 쌍안경이 하나 있었는데 그 쌍안경 하나면 웬만한 딥스카이들은 그래도 볼 수 있었다. 메시에 목록이라고 해서 육안으로 관측이 가능한 천체들을 모아놓은 것이 있다. 물론 깨끗한 밤하늘은 아니지만 서울 밤하늘은 의외로 별 입문하기에 좋았다. 우선 광해 - 빛 공해 - 가 심하기 때문에 크고 밝은 별들 위주로 보였고 이는 대부분 별자리의 기반이 된다. 그래서 자잘한 별들로 뒤덮인 시골 밤하늘보다 오히려 별자리를 외우기에 좋았다. 그렇게 밤마다 하늘과 별자리 지도를 번갈아 가면서 하나씩 외우고 맞추어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기본 틀이 갖춰지고 나면 사이사이 작은 별들과 숨어 있는 성단과 은하들을 가늠해 본다. 맨눈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쌍안경으로 보면 좀 더 잘 보인다. 이렇게 틀을 갖춰놓고 있다가 명절이면 내려가는 시골 밤하늘에서 나는 하염없이 밤늦게까지 밖에서 머물렀다. 추석은 안 된다. 보름달이 너무너무 밝기 때문이다. 설날은 너무도 춥지만 달이 없는 음력 첫날이니 최상이었다. 추위에 덜덜 떨면서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보다가 잠깐 들어와 뜨끈한 아랫목에 몸을 녹이고 나가서 다시 보기를 반복했다. 신문에 뜨는 천문 관련 기사는 늘 챙겨 보았다. 헤일밥 혜성이 왔을 때 한 달간 매일 저 혜성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11월의 사자자리 유성우는 황홀하기만 했다. 이렇게 별을 바라보고 연구하는 일이 직업이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야심 차게 천문학자의 꿈을 가졌는데 곧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나는 수학을 못했다. 과학 중에서도 물리는 더더욱 아니올시다였다. 웬만하면 모든 과목을 좋아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최소한 십 년을 주로 해야 하는 일이 공부인데 싫어하는 마음으로 억지로 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어떻게든 그 과목의 즐거운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보였다. 그런 노력파인 나 조차도 유일하게 좋아할 수 없는 과목이 바로 물리와 경제였다. 결국 수에 약했던 것이다. 수학까지는 어찌어찌해 보겠는데 그것을 응용해서 풀어가는 물리는 너무 힘에 겨웠다. 천문학자가 되려면 물리는 기본인데 안 되겠다. 중학교 2학년 때 현실을 깨닫고 슬프게 마음을 접었다. 아마추어 천문가로 남기로. 그리고 매우 잘한 선택이라고 여겨진다. 이 아마추어의 세계도 정말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딴 길로 새는 것 같으니 여기서 멈추기로 하자. 


아무튼 아마추어 천문가도 제대로 하려고 치면 온갖 천체망원경의 원리와 구조 등등 과학에 관련된 온갖 지식을 공부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어찌 되었건 좋아하는 것이 수시로 바뀌고 변덕이 심했던 내가 오랫동안 간직한 취미 중 하나가 바로 별 보기였고 그래서 이쪽 분야의 나름 쟁쟁한 분들도 만나는 일도 간혹 있었고 친구들, 지인들도 많았다. 외박이 안 되는 탓에 같이 별을 보러 가는 일이 매우 드물어서 그 별덕후들 사이에서 나는 조금 열외로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어찌 되었건 한 분야를 좋아하고 거기에 있게 되면 반전문가가 된다는 것도 여기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에도 대학교에도 천문 동아리가 없었다. 신기하게도 어디서든 별 좋아하는 아이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친구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그랬다. 새로 오신 과학 선생님은 너무 힘들다고 천문 동아리를 만들어주지 않으셨지만 별을 좋아하던 나와 친구에게 각별한 스승이 되어 주셨다. 대학교 때는 우아 (UAAA, 전국아마추어대학생천문연합)에서 만난 선배들이 "없다고? 그럼 네가 직접 만들면 되지."라는 한 마디에 천문동아리 별이랑을 만들었고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직접 주도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던 것 같다. 그리고 해 보니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어떤 일에 직면했을 때 기꺼이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그래서 지금도 어떤 것을 시작하는데 크게 두려움이 없는 것에 그 경험이 일조했다고 여겨진다.


쓰다 보니 별에 관해서도 할 이야기가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는 목차 구성을 할 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쓸 생각도 딱히 없었고 그래서 넣지도 않았는데 내 인생의 큰 축을 담당한 부분이라 잠깐만 쓴다는 것이 전체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 반의 반도 이야기를 못했는데! 그래서 소제목이 '원래는 법대를 가고 싶었다 I'이다. 



거대한 밤하늘, 끝없이 뒤덮는 별들의 향연 앞에서 압도되는 그 경이로움은 정말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동적이다. 하지만 똑같이 하늘을 보아도 또 다르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고 끌리는 것이 다르니까. 나는 그저 나라는 작은 존재가 저 압도적인 가득함에 끌렸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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