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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un 09. 2024

3개월 넘기기 참 어렵다

한 가지에 빠지면 그것만 팠다. "정말 할 수 있겠어?" 친구는 거듭 물었다.

친구가 몇 번이나 확인한 것은 종이로 장미 접기. 친구는 지금까지 수십 명에게 알려주었지만 끝까지 제대로 배운 사람은 겨우 2명이었고 제대로 외우는 사람은 없다며 정말로 잘할 자신이 있느냐고 거듭해서 물었다. 종이 접기에 나름 자신이 있던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호언장담을 하면서 열심히 배웠다. 지금이야 종이접기 책이 잘 나와 있고 인터넷도 잘 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지만 당시에는 알기가 쉽지 않았다. 


종이 장미는 과연 어려웠다. 그래도 열심히 복습을 하고 친구를 몇 번 더 귀찮게 한 끝에 드디어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줄기차게 장미만 접어댔다. 장미로 꽃다발을 만들어서 선물도 여러 번 했다. 부직포로 접어보고 한지로 접어보고 종이를 사서 접어 보고 하여간 열심히 만들었다. 당시 내 친한 친구, 수학 공부를 봐주던 교회 오빠, 담임 선생님 등등 가까이 있는 분들께 선물할 기회가 있을 때는 그냥 지극 정성으로 종이장미꽃다발을 만들어서 드렸다. 왜냐면.... 장미를 하도 많이 접어 두어서 진짜 많았기 때문이다. 꽃철사를 사서 꽃테이프로 감고 가짜 장미 잎사귀를 문구점에서 사서 달고 예쁘게 포장했다. 베프 어머니는 다른 꽃은 다 버렸는데 내가 친구에게 준 그 꽃다발만큼은 차마 버리지 못했다고 나중에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장미 꽃다발은 이제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할 만큼 하니까 더 이상 접기가 싫어졌다. 그 고등학교 1학년 시기에 딱 곁에 있었던 분들만 받을 수 있는 나름의 시즌판 한정 선물이었던 셈이다. 2년 정도 뒤에 장미접기용으로 종이도 따로 출시되었길래 샀다가 그냥 다 버렸다. 종이가 아까워 몇 년을 서랍 속에 보관하다가 결국은 버렸지만 딱히 놀랍진 않았다. 왜냐면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는 지점토 만들기 반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천사점토니 아이클레이니 하는 다양한 클레이 종류의 점토가 흔하지 않았다. 찰흙이 주류였고 그나마 지점토가 고가의 클레이였다. 지점토로 장미를 만들어 잘 말린 후 색칠하고 다시 락카까지 발라 거울도 만들고 시계도 만들어 장식한 집도 꽤 많았고 전문 공방이나 교습소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 앞 지점토 공방을 지나다니며 거기서 강습을 받는 아이들이 부러워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지점토 반이 있었다! 냉큼 들어갔다. 알고 보니 지점토로 정교하게 물건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종 도구가 필요했다. 잎사귀를 찍어 내는 판, 세밀한 모양을 잡기 위한 다양한 공예칼과 도구, 밀대는 물론이요 자잘한 것을 집고 올리는 집게와 판, 고정시킬 접착제 등등 여기는 또 다른 세계였다. 용돈도 많이 못 받는 아이가 하나하나 도구를 사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정성으로 복사를 하면서 이리저리 다 만들어 보았다. 종이장미를 만들었던 것처럼 집에 오면 지점토만 계속 만들어댔다. 말리면 갈라지는 장미에 다시 물을 발라서 빈틈을 메꾸고 이리저리 색칠을 해 보고 락카칠을 하고 완전히 노동이었는데 종일 그것만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3개월이 지나니까 흥미가 뚝 떨어져 버렸다. 어느 정도 잘 만들게 된 다음이었다. 한 박스 가득한 도구들이 아까워 계속 가지고 있기는 했는데 어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펠트, 리본이나 비즈도, 주름지 공예도, 한지 공예도..... 그냥 스쳐가는 것만 언 듯 생각해도 한숨이 나온다. 가끔은 3개월이 넘어가는 경우도 물론 있었다. 베이킹 같은 경우는 1년은 갔던 것 같다. 베이킹이 오래갔던 것은 할 것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제과와 제빵이 다르고 제과도 쿠키냐 케이크류나 가 다르고 제빵도 단 빵인지 식사용빵인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요리로 넘어가서 요리책을 사서 이것저것 다 해 봤다..... 십자수나 자수는 조금 더 갔고. 꼭 나만 이런 것은 아니고 다른 아이들도 상당수 그럴 테지만, 막상 간절히 원해서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순간 흥미가 뚝 떨어지는 경우는 내게 유독 도드라졌다. 어느 정도 해 보고는 고개를 휙 돌려 버리니 아빠는 이런 나를 보면서 좀 기가 막히신 듯했다. 그래서 정말 엔간한 것이 아니면 잘 안 들어주셨던 것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지 싶다. 


사실은 연애도 그랬다. 이 사람이 너무 좋은데 3개월을 넘긴 경우는 정말 극히 드물었다.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싶으면 그 뜨거웠던 마음이 갑자기 차게 식는 것이다. 나도 그런 내가 황당하고 싫어서 노력은 해 보지만 최소한 연애만큼은 노력한다고 돌아선 마음이 다시 돌아서는 일은 없었다. 썸을 타다가 중도에 멈추는 경우는 더 많았고 나를 좋아하게 만들어 놓고 내 쪽에서 그만두는 경우도 많았으니 정말 나쁜 ㄴ이 맞다. 도대체 왜 나는 그 마음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는 것일까. 분명히 좋아했고 뜨거웠는데. 정말로 확신했는데.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그 사람을 얻기 위해서 들인 시간과 돈과 정성과 노력이 아까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족. 그 많은 만들기 재료와 도구들은 지금도 가끔씩 여기저기 구석에서 발견이 될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 환호를 하며 가져다 쓰고 있다. 도구함만 세 개가 넘는 십자수 재료는 딸 둘이 엄청 써대는 중인데도 몇 년간은 없어지는 일이 없을 것 같다. 비즈는 그냥 버리자니 정말 고가의 구슬들이라 차마.... 잔뜩 있는 인형 만들기용 솜은 당근에 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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