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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un 02. 2024

프롤로그 - 한 우물을 파지 못하는 당신에게

생각하지도 않던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고도 한참을 그렇게 저렇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동료 브런치 작가들이 정식으로 책을 출간하는 과정을 보면서도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 번 큰 맘을 먹고 '내가 만약 책을 쓴다면'이라는 주제를 떠올려 봤습니다. 쓸 주제가 너무너무 많더라고요. 6학년 학급 경영 이야기도 쓰고 싶었고 초등영어 쓰기 교육에 관한 이야기도 쓰고 싶었고 사연이 많았던 네 아이를 키우던 삼십 대 시절과 남들과는 조금 달랐던 어린 시절 이야기 등등 생각해 보니 끝도 없이 이야깃거리가 안에 가득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주제로 첫 책을 써야 할지 난감해하는 제게 어느 날 이 말이 딱 와닿았습니다. 난 도대체 왜 한 우물을 파지 못하는 거지? 이건 제가 저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초등학생 시절부터, 그리고 교직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내 떠 올려왔던 의문이었습니다. 관심 분야도 금방 바뀌고 그러다 시들해지고요. 이런 저를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하나를 진득하게 파고들지 못하는 것일까 싶어 자괴감이 들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을 생각해 보면 꽤 많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미치도록 책을 읽었고, 클래식에 빠져 지냈으며, 밤하늘의 별을 보다가 천문동아리도 만들었습니다. 피아노만 전공생처럼 몇 시간을 치기도 하고, 합창 지휘와 성악, 리코더와 플루트까지 이리저리 배울 수 있는 음악 분야는 이리저리 해 볼 만큼 해 봤고요. 몸치지만 요가와 발레, 댄스 스포츠도 열심히 배웠습니다. 마흔 넘어 시작한 필라테스는 광고까지 찍었고 이제는 아이들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엄마표 영어로 한동안 나름 유명하기도 했고 영어 관련 유튜브 영상도 제법 많이 찍었습니다. 원서 읽기 모임과 영어 공부 모임도 계속해서 몇 년째 진행하고 있고요. 마흔 들어 갑자기 배운 수채화는 이제 어설프지만 기초를 가르쳐 드릴 만큼은 되었어요. 물론 이외에도 이것저것 걸쳤던 분야는 정말 많습니다.


그냥 대충 봐도 정신없으시죠? 저도 제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선배 선생님들은 이십 대의 제게 한 우물만 파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러질 못했어요. 영어 교육 쪽으로 상당히 오래 해서 연구대회 입상도 여러 번 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독서교육이 중요하게 여겨져서 또 연수를 듣고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있고 그러다가 음악 교육 쪽을 또 들여다보고 있고 다시 또 영어 교육을 파고 있고, 그러다 효과적인 학급 경영을 연구하고.... 이러다 보니 제 이름 석자를 대면 뭔가 많이 떠오르기는 하는데 이거다 싶은 딱 한 가지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대로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너무나 존경하는 멘토 선생님의 한 마디가 큰 힘이 되었어요. 저희는 원래 그런 사람들이래요. 한 우물을 팔 수 없는 사람들. 그렇다면 분명히 저 말고도 여러 분들이 계시고 저와 같은 고민을 가지신 분들이 계실 거예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면 좋겠다 싶어서 한 번 꺼내 보기로 했습니다.


하나의 우물을 깊게 파기 어려우신 저와 같은 분들. 제 이야기를 보시는 과정에서 그 답답함이 조금이라도 해소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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