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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ul 03. 2024

수능을 끝까지 견딘 이유는 바로 영어 때문

그래서 이제는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어졌다

처음부터 영어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배웠고 그래서 낯설고 감이 오지 않았던 과목. 해가 거듭되면서 어느 사이 영어는 내 최애 과목이 되어 있었다. 이 과정은 또 다른 이야기라서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좋아하면 잘하게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수학과 물리가 힘들고 다가가기 어려웠던 만큼 영어는 오히려 즐거웠다. 물론 영어가 쉬웠다는 것은 아니다. 문법은 지금도 너무 어려워서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부분이다. 어찌 되었건 나는 수능시험을 견뎌내었는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 영어가 마지막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수능 초기였기에 제2외국어가 없었고 영어가 마지막에 있었다. 국어 수학 사탐과탐의 긴 여정의 끝에는 가장 좋아하는 영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영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


앞의 글에서 법조인의 꿈을 접은 다음에 들어온 것은 영문학이었다. 영어를 이만큼 좋아하니 영문학을 공부하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책 읽기도 좋아하니 딱인가 싶었다. 이런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교대에 진학하는 과라는 것이 존재했다. 국어교육과, 사회교육과,.... 이렇게 각 과목별로 과가 있었고 추가로 영어교육과와 컴퓨터교육과가 비교적 최근에 신설되었다. 영어교육과는 내가 4회 졸업생이었고 컴퓨터교육과는 우리가 2회였으니 정말 신설학과가 맞았다. 앞의 글에도 썼지만 피아노가 너무 좋아서 음악교육과를 놓고 고민을 했다. 원하는 학과를 순서대로 쓰고 입학 성적에 따라서 정하는데, 다만 인기 학과 1 지망에서 떨어지만 비인기학과로 배정될 수 있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아빠와 의논 끝에 1 지망은 영어교육과로 2 지망은 음악교육과로 적었다. 사실 떨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덜커덕 붙어버렸다.


영어교육과 생활은 쉽지 않았다. 교대생들 모두가 어느 정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긴 하지만 영어교육과와 컴퓨터교육과에서 남녀 수석과 차석이 모두 나올 정도로 두 과는 좀 힘든 편이었다. 입학할 때만 해도 사도장학금을 받고 들어갔는데 나중에 그 장학금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내가 받던 장학금의 레벨은 점점 낮아져 3학년 2학기 때는 결국 받지 못했다.) 교수님들 말씀으로는 보통 A학점을 줄 수 있는 90점 대의 아이들이 다른 과는 30퍼센트로 적절하게 유지가 되는데 우리 과는 대부분이 90점 대라서 어쩔 수 없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하실 정도였다. (우리 과 전원이 다 사도장학금을 받고 들어왔었다.....) 커리큘럼은 대부분 영어'교육'에 관련된 과목으로 짜여 있었다. 영어음운론, 교실영어, 영어교수법 등이었는데 사실 매우 재미가 없었다. 그러니 공부를 자연히 열심히 안 했고 자연히 열심히 하는 성실의 아이콘 교대생, 그중에서도 공부를 죽어라 파는 성실한 아이들 속에서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피아노를 열심히 치던 내 성적이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유지될 리는 없었던 것이다. 안 한 건 아니고 진짜 하긴 했는데 그 정도로 해서는 택도 없었다. 정말로 교대 아이들은 무서운 아이들이다. 지금 선생님들을 봐도 어찌나 대단한 분들인지 모른다. 나는 진짜 댈 수도 없을 정도로 성실과 노력과 완벽의 대명사라고 봐도 된다. (나는 날라리.)


다른 대학교에 가서 다른 전공을 하고 싶었고, 교대는 여러 과목을 배우니 재수를 하는데 좀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계산과 아울러 동아리와 동호회 활동에 열을 올리고 그 와중에 3학년 때는 연애로 활활 불태웠으니 학점은 4점대에서 3점대로 그리고 급기야 2점대로 내려갔다. 3학년 2학기 평균학점이 2.96이었다. 한 과목만 플러스를 주셨으면 3점을 넘겼을 텐데 하는 마음에 교수님을 찾아가 읍소할까 싶기도 했지만 그것도 성적에 열의가 있는 애들이 하는 거였다. 상당수의 교대 공부는 사실 놀라우리만치 재미가 없었다.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고민하며 4학년이 되었다.


다른 학교 4학년들은 취업 준비를 위해서 학점을 좀 적게 수강하고 대부분 A를 준다는데 우리는 4학년이어도 필수로 들어야 하는 학점이 여전히 많았다. 그래도 3학년 때보다는 좀 적어서 하지 않아도 되었을 한 과목을 더 수강하기도 했다. 대부분이 교양으로 짜여 있었는데, 어쩌면 좋을까..... 너무 재미있는 것이다. 교양수학은 교수님께서 이름도 기억하시고 칭찬하실 만큼 펄펄 날았고 (수학을 못하던 내가 그랬다니 믿을 수 없다.), 교육학조차 재미있었으며 다른 모든 과목들이 다 재미있어서 정말 열심히 했다. 그리고 지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아서 과 친구들이 눈을 다시 뜨고 나를 보았다. (그랬다. 나는 3학년 때는 정말 지각을 밥 먹듯이 했다. 그 정도로 3학년 커리큘럼이 재미가 없고 싫었다.) 뭐, 사실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 슬슬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그중에서도 영문학 개론은 정말 환상적으로 재미있었다. 이 재미있는 영문학 개론을 4학년이 되어서야 들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날 만큼 속상하고 땅을 칠 만큼 아쉬웠다. 


그렇게 스스로 찾아서 공부를 하고 나니 이제 또 갑자기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공부는 영문학이란 것을 알아 버린 것이다.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완전히 재수를 할 것인지, 편입 공부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임용고시를 준비할 것인지. 사실 임용고시를 준비하기에도 좀 늦은 감이 있었다. 이유는 4학년 1학기를 마지막 동아리 공연을 준비하는데 다 써 버렸기 때문이다. 피아노 졸업연주회를 준비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두 가지 공연을 준비했으니 남들은 다 새벽부터 공부하는데 나는 다른 것에 신경 쓰고 있었다. 


여러 이유로 임용고시를 보고 교사가 되었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대학원은 선배의 추천으로 교원대학교로 들어갔는데 중등선생님들도 함께 듣는 곳이라 과목 선택의 폭이 넓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다시 영문학의 다양한 세계를 만나게 된다. 매 학기 다양한 영미문학을 만나면서 또 교수님들의 사랑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교에서 듣던 것과는 달랐고 원하는 수준도 달랐다. 영어교수법조차 재미있었다. 내가 찾아서 분석하고 주제를 잡아서 만들어가는 학문의 즐거움이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것을 대학원에서 비로소 알았다. 어쩌면 좋을까. 나는 이제 영어를, 영문학을, 그리고 영어교육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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