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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ug 25. 2024

제일 인기 없다는 영어교육 유투버, 그거 저예요

때는 2019년. 그렇다 코로나가 발생하던 그 해였다. 복직한 지 3년째 되던 해 나는 어찌어찌 영어교과전담교사가 될 수 있었다. 힘들었다. 너무 힘들었다. 영어교육으로 대학원 석사 학위까지 받았고, 영어수업으로 수상도 여러 번 했는데 힘들 수 있나 싶겠지만 힘들었다.


오랜 육아 휴직을 하는 동안 실전 영어에 대한 감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려고 조금씩 하는 영어 말고 수업에서 실제로 한 시간 동안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를 한 마지막 때는 벌써 10년 전이었다. 거기에 원어민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예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라면 상관없겠는데, 어느 정도 잘한다고 알려진 터라 그래서 싫었다. 이대로 잘하는 '척' 남아 있고 싶었다. 


그 해는 영어를 혹독하게 공부하기 시작한 첫 해가 되었다. 제일 좋은 교재는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 아는 것과 말하는 것은 다르다. 실수 없이 말하려고 정말 달달 외웠다. 외우다 보니 좋은 표현이 너무 많았다. 나 혼자 알고 있기 아까웠다. 분명히 영어를 공부하고 싶은 분들이 계실 텐데. 하루에 한 문장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영어 초보자도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테고. 당시에 나는 조금 알려진 엄마표 영어 블로거였기 때문에 블로그에 공지글을 올리자 바로 함께 하고 싶다는 신청 댓글이 여럿 달렸다. 문장을 고르느라 고심하고 있는데 같은 연구실을 사용하는 원어민 선생님이 보더니 무엇을 하는지 물었고 대강 상황을 설명하자 문장 녹음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어머, 그럼 너무 좋지!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에서 문장을 고르다가 아예 애니메이션 하나를 통으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겨울왕국에서 문장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하루에 하나씩 외우는 영어문장, 줄여서 하하영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꽤 오랜 시간 지속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영어 문장이 하나 적힌 문장 카드와 녹음 파일, 그리고 간단한 설명이 전부였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대본을 보면서 문장을 고르는 동안 원어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설명이 너무 좋았다. 처음에는 그냥 들으면서 필기하다가 나중에는 녹음을 해서 들으면서 복습을 했다. 사전에 나온 것과 다르게 실제의 생생한 설명은 또 생동감이 있었다.


설명을 하는 동안 나와 원어민 선생님은 그 문장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각자의 에피소드를 풀기 시작했다. 이것도 나 혼자만 듣기에 아까웠다. 그때 아는 동생이 제안을 했다. 유튜브 영상을 찍어 보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요새는 자막과 편집 프로그램도 잘 되어 있으니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면서 샘플 영상 링크도 보내주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한 번 해 보기로 했다. 첫 영상을 같이 근무하는 후배 선생님이 보고 피드백을 해 주었다. 자막이 있으면 좋겠고, 얼굴 크기를 키워 주면 좋겠고, 그리고 둘의 케미가 좋아서 재미있다는 것이다. 뭐, 누구든 도움이 되면 좋겠지. 그렇게 영상을 찍었다. 퇴근 시간이 될 무렵이면 우리는 영어실에 올라가 30분가량 영상을 찍었다. 집에 와서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밤늦게까지 편집을 했다. 원어민 선생님이 한 말을 받아 적고 번역을 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는데 그 과정을 통해서 듣기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다. 다 하고 나서 원어민 선생님에게 메일로 보내서 다시 감수를 받고 그리고 나면 최종본으로 다시 편집을 했다. 


구독자는 조금씩 늘기는 했다. 하지만 조회수는 높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영상은 설명이 간결하기보다는 길었다. 구슬샘처럼 간결하고 반복적으로 해 주면 좋을 텐데, 왜 그런 표현이 만들어졌는지 한참을 이야기하고 관련된 경험담을 이야기하기도 하다 보니 내용은 좋겠지만 끝까지 영상을 제대로 볼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도 영상이 길어지면 건너뛰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만약 지금까지 계속해서 영상을 찍었다면 달라졌을 텐데, 나는 하하영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다른 학교로 옮겨야 했다. 


새로 전근을 간 학교는 이전 학교와는 15분 정도 거리이긴 하지만 따로 시간을 내서 영상을 찍기엔 심리적,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이대로 그만두는 것이 아쉬워 주말이라도 시간을 내어 볼까 싶기도 했지만 주말은 또 주말대로 할 일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할 일이 많은데 내가 재미있다고 유튜브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데 이대로 시간을 계속 쏟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많지 않은 구독자 수도 아마 한몫했을 것이다. 교육 유투버는 참으로 인기가 없다고 들었다. 구슬샘이 처음에 구독자가 늘 때마다 감사 인사를 했던 기억도 난다. 혼자서라도 어떻게 해 볼까 지금 고민은 계속하고 있는데 일단 세상에는 나보다 훌륭하신 영어 선생님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자고 하고 있다. 지금도 가끔 새로 구독을 누르시면서 더 이상 영상이 없다고 아쉽다는 댓글을 남겨 주셔서 너무 감사할 때가 있긴 하지만 일단 지금은 아니다. 예전에 마니의 유시진 작가님이 '쿨핫'을 잡지 사정으로 인해 연재 중단하시고 연재 재개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일단은 없다고 하신 기분이 이해가 된다. 


영어 관련 유튜브 영상 찍기는 흥미를 잃었다기보다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 맞다. 영어로는 commitment라고 하는데 이 일은 상당한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상당 부분은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로 미룬 것이 조금 있다. 지금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의 양은 절대적으로 한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나중에 해야 할 일로 구분해 놓고 미루어 놓았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여전히 인기 없이 구독자가 몇 백 되지도 않는 무명 유투버이지만 그래도 나누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아놓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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