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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ug 21. 2024

어느 날 수채화가 내게로 왔다

그림 잘 그리는 아이가 부러웠다. 유독 표정과 이름까지 생생한 그 아이의 이름도 기억나는데, 동일한 이름의 내 친구들이 그 후로도 두 명이나 생겨서 더 잘 기억이 나는지는 모르겠다. 그림을 너무도 잘 그려서 주목을 많이 받았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늘 그림 잘 그리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나는 타고난 노력파라서 데생처럼 연필로 가르쳐주는 대로 명암을 표현하는 것이나 정교하게 포스터물감으로 글자를 반듯하게 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유독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대회가 많았다. 글은 그럭저럭 쓰겠는데 그림은 정말로 넘사벽의 세계였다. 중학교에 가면서 디자인의 영역도 배우게 되니까 이제는 미술적 감각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동생까지 부러워졌다. 딱히 대단한 기법을 발휘하는 것도 아닌데 동생의 그림들은 멋있었다. (나중에 커서 보니 동생은 예체능 쪽으로 재능이 있었던 아이였다.)


고등학교 때는 "참 쉽죠잉." 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밥 아저씨의 그림을 따라 해 보니 유화가 그럴싸했지만 남의 그림을 따라 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미술 시간은 내게는 정말 큰 스트레스였다. 차라리 서예나 수묵화는 조금 하겠는데 창작의 능력과 자연스럽고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이 요구되는 서양화의 영역은 늘 스트레스였다.


그렇게 초등교사가 되었으니, 나는 이제 미술 시간이 큰 일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영어 과목을 교과로 원하시는데 나는 미술과 체육이었다. 늘 부담이 컸던 미술을 언제까지나 피해 다닐 수만은 없어서 선생님들이 수채화를 배워 보자고 하셨을 때 망설이다 함께 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는 모작으로 시작했다. 똑같은 그림을 보고 그려도 선생님들의 성격 따라 그림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 신기했다. 그림을 보고는 따라 그리겠는데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은 어려웠다. 조금 알듯 말듯 했던 수채화는 육아휴직을 들어가면서 또 내게서 멀어졌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복직한 학교에서 나는 멘토 선생님을 만났다. 원래는 영어교육으로 더 알려지신 선생님이신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수채화를 함께 그려보자는 교원학습공동체를 제안하셨다. 선 듯 나서는 분들이 없는 가운데 나는 함께 해 보고 싶었다. 8년 전에 사놓은 수채화 물감을 쓸 수 없는지 있는지 모르지만 비싸게 사두고 먼지만 쌓여가는 도구들도 아깝고 지금이 아니면 미술은 영영 나와는 거리가 먼 과목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선생님에게서 배우는 수채화는 즐거웠다. 우리가,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이 그림이 두렵고 어려웠던 것은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잘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물을 사용하는 법, 물감을 덜어오는 법, 색채를 풀어내는 법, 겹치는 법, 닦아 내는 법 등을 하나씩 천천히 배웠다. 어색하고 난감하던 처음의 그림들은 점차 익숙해진 붓질과 물감을 사용하는 기법의 발전으로 조금씩 나아졌다. 색 한 가지 만으로 근사한 밤하늘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정도라면 나도 그려 볼 수 있겠다 싶었다. 꽃도 그려보고 꽃다발과 화환도 그려보고 풍경화도 그려보면서 난생처음 그림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내가 그리는 그림의 크기는 엽서 정도의 작은 종이였다. 종이 크기가 작으니 그림이 클 필요도 없었고 꽉 채워야 하는 부담감이 적었다. 배경을 꽉 채울 필요도 없었다. 어느 날은 도넛 하나만 그려도 괜찮았고 어느 날은 창문에 하얀색 펜으로 별을 그리기만 해도 괜찮았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주변의 사물과 풍경도 더 세심하게 보게 되었다. 무심코 지나가는 나뭇잎 하나하나에 다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아파트 담장과 그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는 능소화는 아찔하도록 아름다웠다. 지나가는 집의 대문도 사랑스러웠다. 그냥 집어 먹곤 했던 작은 딸기 한 알을 그리기가 이토록 어려운지 몰랐다. 씨앗을 하나하나 제대로 표현하려면 말도 못 하는 끈기와 집요함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림을 못 그렸던 것이라기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하나 단계별로 짚어주시는 분을 만나니까 그제사 그릴 수 있던 거였고. 방법을 알게 되니까 재미가 있고 즐거움을 느끼게 되니까 푹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다. 나만 그렇지는 않겠지. 새로운 학교로 발령을 받고 혼자 그림을 그리다가 생각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초보자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가르쳐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같이 그리는 것이라고. 같이 그리려고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알려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 몇몇 선생님들께는 그림이 치유와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미술 시간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사람의 일은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힘들고 좌절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미술이 이제는 감사와 치유의 도구로 다가올 줄이야. 요새는 조금 뜸하기는 하다. 한 가지에 쉽게 싫증을 느껴서가 아니라 뻔한 핑계지만 시간이 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두 시간은 그냥 훌쩍 지나가는데, 올 해는 이런저런 프로젝트들을 많이 시작해서 선 듯 수채화 도구를 꺼내 놓기가 쉽지 않다. 내게는 한 가지에 좀 더 집중을 하면서 시간을 나누는 경향이 있는데 작년부터 조금씩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는 피아노가 힘을 가져가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요새 정리를 하다 보니 기운이 조금 달리는 것도 있다.

하지만 내게 기쁨이 되는 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언제든지 한가로운 오후, 쓰윽 쉽게 붓과 팔레트를 꺼낼 수 있다는 사실은 마음을 넉넉하게 해 준다. 사르륵 종이 위에 담기며 펼쳐질 색의 향연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예기치 않은 삶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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