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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ug 12. 2024

시작을 하면 끝까지 남기는 했다

학교에 있다 보면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공부를 하는 모임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더 이것저것 많이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플룻도 배웠고 수채화도 배웠고 댄스 스포츠와 요가도 배웠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지 생각을 해 보니 당시는 주 6일 근무였다. 학교 수업은 대부분 5교시면 끝났다. 아무래도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다. 


학교마다 선생님들이 공부하는 모임이 달랐다. 그리고 선생님들마다 자신의 전문 분야를 파신 분들도 꽤 많았다. 새로 옮긴 학교에서 나는 리코더를 공부하는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다. 리코더를 전공자에게 따로 레슨을 받으실 정도로 열심히 하시는 선생님이셨다. 본인의 딸도 리코더를 전공으로 독일 유학까지 진지하게 고려하셨다. 처음에는 교실에서 여러 선생님이 모여서 함께 시작했다. 소프라노와 알토 리코더를 조금 가격대 있는 제품으로 사서 꾸준히 함께 연습을 했다. 텅잉과 잡는 연습, 호흡을 넣는 연습 등등. 리코더는 쉬운 악기 같았지만 막상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니 정말 공부할 것이 많았다. 수업이 계속되면서 자연스럽게 난이도는 올라갔고 그와 동시에 조금씩 그만두시는 분들이 늘어갔다. 결국 연말에는 나와 리더 선생님 둘만 남았다. 둘이서 열심히 리코더를 불었다. 피아노는 계속 치고 있었으니 가끔 반주도 해 드리면서 나와 선생님의 사이는 아주각별해졌다. 만약 출산과 육아로 인한 휴직이 아니었으면 나도 선생님처럼 리코더를 더 파게 되었을까? 그것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리코더와 동시에 중국어 클래스도 열렸다. 당시 학교에는 다문화 관련 선생님을 한 분씩 배치하는 것이 또 유행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중국계, 베트남계 등등 선생님들이 한 분씩 오셨다. 우리 학교는 중국계 선생님이었다. 다문화 가정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교육부에서는 이런 쪽의 교육과 소통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긴 것 같다. 문제는 다문화 학생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는 부분이다. 선생님은 열심히 하셨지만 아무래도 여유로운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교사를 대상으로 한 중국어 클래스도 개설되었다. 주 2회로 잡았고 처음에는 소강당에서 열릴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학교에 계신 대부분의 선생님이 앉아서 성조의 기본부터 배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인원은 점점 줄어들었고, 소강당에서 교실로, 그리고 나중에는 작은 연구실로 점차 옮겨질 정도였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는 나 혼자 남아서 선생님과 일대일로 개인 공부를 했다. 좋으면서 죄송했다. 이렇게 일대일로 개인 과외를 공짜로 받다니. 왜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넘기시는지 그때는 의아했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중국어 교재 상 권을 끝내던 일 년의 마지막 날, 나는 선생님께 작은 선물을 드렸고 선생님은 정말 너무너무 고마워하셨다. 나라도 끝까지 해서 정말 좋았다는 것이다. 육아 휴직에 들어간 나는 혼자서 중국어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서 같은 교재의 하 권으로 혼자서 공부를 했지만 역시 육아로 인해서 이 또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시험까지는 어떻게 어떻게 보았지만 언어란 것은 공부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리코더와 중국어는 끝까지 혼자 남아서 열심히 배우긴 했지만 결국 그것으로 끝이 났다. 리코더는 어려서부터 했고 선생님께 잘 배운 것으로 아이들도 잘 가르치고 있지만 손은 무디어졌다. 어려운 16분 음표가 나오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는 연습 없이는 되지 않는다. 중국어는 사실 기억이 거의 안 날 만큼 희미하다. 2년 간 열심히 한 것이 다 어디로 갔는지 정말 너무 아깝기만 하다. 여러 번 비슷한 과정을 지나왔다. 한 번 시작한 것은 끝까지 간다. 이것은 나와의 약속이기도 하고 함께 하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기도 했다. 약속을 끝까지 지키려는 책임감이 내게 강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지나 보니 알게 되었다. 문제는 한 단계를 성취한 이후에 한 단계를 또 올려야 하는 것을 지속시키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어느 정도 해 보았고 어느 정도는 성취를 했지만 이것을 더 이상 발전시키면서 삶에 자극을 받고 싶은 마음이 더 이상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딱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기본 정도를 가르쳐 줄 만큼의 수준이니 어쩌면 나의 이런 성향은 초등교사로서 최적화된 것일까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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