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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ug 06. 2024

초등교사인데 승무원 교육을 받아 보라고요?

그래서 시작된 발레 수업

교사가 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아빠는 어느 날 뜬금없이, 정말로 뜬금없이 승무원교육을 받아보면 좋겠다고 하셨다. 네에??????


이유인즉슨, 나에게는 반듯한 자세와 우아한 태도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음..... 사실 여기에 대해서 완전히 부인을 하지는 못하겠는 것은 있다. 얼마 전 한 심리테스트에서 나온 문장 중 '사회성을 학습했어요'라는 부분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내 세계가 아주 확고하고 확실해서 어려서부터 좀 튕겨져 있는 부분이 있었다. 아이들하고 뛰어노는 것보다는 혼자서 책을 읽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베프에게 저 사회성을 학습했다는 부분을 이야기하자 맞다며 쿡쿡 웃었다. "너 고등학교 때 좀 독특했다." 사실 고등학교 때는 아주 양반이었다....


이제 큰 딸은 교사가 되어서 사회로 나갔는데 아빠가 보시기엔 구부정한 자세와 애매한 표정이 걸리셨던 것일까. 아무튼 승무원들처럼 반듯하고 곧은 자세와 바르게 말하는 화법 등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래서 실제로 알아보기도 했는데, 그러다 그만두었다. 이미 교사인 내게 정말로 승무원이 될 것도 아니면서 학원에 비싼 돈을 내고 장기간 다닐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건 못하겠다고 했더니 그럼 발레라도 배워보라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성인발레라는 것은 정말 별로 없었다. 뭐 한 번 찾아나 보자 하고 검색했더니 정말로 있었다. 당시 근무했던 당산동과 가까운 홍대에 두 곳이나 있었다. 그중에서 조금 덜 세련된 느낌의 1인원장 발레 학원을 찾아가 보았다. 한 달 주 2회에 십만 원. 나는 그렇게 발레 스타킹과 레오타드를 입고 발레를 시작했다. 이렇게 몸에 붙는 옷을 입는 것은 나에게는 큰 용기였다. 당시에는 레깅스라는 옷도 없었다. 나는 늘 덩치가 큰 나의 체격에 콤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많은 각오를 가지고 입었다.


발레 학원의 성인 반은 보통 6시부터 한 시간 반 정도 간격으로 두 개의 클래스가 있었다. 60kg 후반의 상당히 통통한 몸을 자랑했던 나는 발레를 하는 동안 서서히 몸의 균형과 함께 라인도 같이 잡혀갔다. 처음에는 이렇게 몸을 다 드러내야 하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일단 눈을 질끈 감고 스트레칭부터 하나하나 따라 하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몰입해 있었다. 사람의 몸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발레를 직접 하면서 알게 되었다. 몸이 뚱뚱하고 마르고 상관없이 곧게 뻗어내고 곡선을 그려가는 인체의 선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처음에는 땀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는데 어느 사이엔가 수건 하나가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쏟아졌다. 아마도 막혀 있던 땀샘이 열리고 노폐물이 쏟아지는 것이었을지 원장 선생님도 놀랄 정도였다. 주 2회 시작했던 것이 금액을 올려 주 3회가 되었다. 일찍 가서 늦게까지 연습하는 내 모습이 좋았던지 원장님은 내게 추가 비용을 받지 않을 테니 일주일에 네 번이고 다섯 번이고 와서 마음껏 수업을 듣고 연습하라는 큰 호의를 베풀어 주셨다.


그렇게 일 년을 하자 나는 누가 봐도 예쁜 몸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다리만 빼고 - 이 다리는 오히려 더 튼실해졌다...). 군살이 하나도 없이 탄탄한 허리와 우아한 목선과 반듯한 어깨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가 알아차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물어보기 시작했다. "무용하세요? 혹시 댄스 스포츠를 하시나요? 무용하는 사람들과 걷는 자세나 라인이 비슷해요." 학교 회식이 있는 날조차 나는 재빠르게 학원으로 달려가서 한 시간이라도 발레를 하고 다시 후다닥 돌아와 회식에 참석할 정도로 열의가 넘치는 학생이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발레 학원에서 살고 있다 보니 친구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과는 정말로 친해져서 서로 연락도 자주 주고받았다. 일본인이었는데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취미로 발레를 하는 것이 그녀의 낙이었다. 나는 그녀를 우리 학교에 초대해서 아이들에게 일본 문화 수업을 부탁했고 그녀는 흔쾌히 즐겁게 한 시간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원장님은 이 일로 노발대발했다. 학원생들끼리는 이렇게 친해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아주 친하던 수강생 두 명이 있었는데 돈을 빌려서 도망가는 바람에 본인 입장이 아주 난처해져서 그 후로는 수강생들끼리의 사적인 만남을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서로 가까이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그 부분이 싫었다. 둘 다 성인이고 한 번의 안 좋은 예가 있다고 우리까지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결국 내 친구는 학원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나 역시 이 일이 있고 나자 어쩐지 껄끄러운 마음에 원장님과 계속 수업을 받기가 힘들어졌다. 그렇게 호의를 베풀어 주셨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결국 그렇게 내 발레는 끝이 나고 말았다. 몸치였던 내가 운동을 이렇게 좋아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지금도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나중에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나면 꼭 다시 발레를 하고 싶다고 그 소망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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