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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12. 2024

원서를 소리 내어 읽어야 하는 이유

우리말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해 보면 쉽다.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글을 쓸 때도 저절로 머릿속에서 그 언어가 말로 재생이 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미 충분히 소리를 통해서 우리 뇌에 저장된 언어가 자동으로 읽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어의 경우는 조금 애매하다. 우리도 외국어를 배울 때 전혀 소리 없이 배운 것은 아니지만 인지 체계가 어느 정도 형성이 된 다음에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모국어와는 다르게 만들어진 것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경우는 바이링구얼이라고 해도 모국어를 사용하는 뇌의 부분과 외국어를 사용하는 뇌의 부분이 동일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외국어로 된 책이나 영상을 접했을 때 바로바로 이해가 되는 경우는 어떤 것일까? 이는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뇌의 두 부분의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도록 훈련이 된 경우이다. 


일상적인 예의 경우로 apple이라는 단어를 보면 자동으로 사과라고 이해가 된다. 수없이 많이 본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친숙하게 사용하지 않은 단어는 어린 시절, 혹은 최근에 외우거나 기억을 했더라도 바로 전환이 되지 않는다.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를 할 때였다. 강화유리라는 단어를 설명하고 싶은데 순간적으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유리는 glass로 바로 떠오르는데 강화라는 단어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make it hard not to break easily로 돌려서 말하고 나서 다음 날에서야 tempered가 떠올랐다. 강화라는 단어는 reinforce, strengthen, intensify 등등이 먼저 떠오른다. 다만 강화유리는 불로 달구어 특수하게 처리한 것이기 때문에 tempered를 사용하는 것이다. 초콜릿을 가공할 때 템퍼링 한다는 부분을 생각하면 조금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래서 이미 열처리되어 (모든 유리는 열처리 된 거 아닌가요? 싶지만 여하튼 그러하다) 더욱 단단해진 유리를 강화유리 tempered glass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핸드폰에 붙이는 강화유리필름은 또 다르다. tempered glass film이라고 하면 얼마나 쉽고 좋으랴마는 screen protector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액정보호필름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바로 연결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한국말로 같은 단어도 영어로 들여다보면 또 다르니 정말 쉽지 않은 부분이다. 그래서 영어는 정말 단시간 내에 되지 않는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꼭 진리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여러 번 말해지고 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의 양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의 질이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천천히 새겨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익히는 것이 나는 제일 좋았다. 물론 단시간 내에 목표를 가지고 초집중해서 성취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냥 천천히 가기로 했다. 


외국어와 조금이라도 더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일단 소리 내어서 읽어 보는 것이다. '제 발음이 별로인데요.' 물론 정확한 발음으로 읽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수많은 것은, 우리는 한국어 발음도 별로라는 것이다. 어른은 조금 낫긴 하지만 그럼에도 틀린 발음들이 무수히 많다. 발음은 한 번 정도는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발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소리 내어 읽기를 주저한다면 앞으로도 오랜 시간 동안 소리를 내어 읽지 못할 것이다. 해 봐야 어디가 부족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리를 내어 읽어 보면서 눈으로 보는 외국어 지문이 소리와 함께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디오 북이 있잖아요? 오디오 북은 내가 읽는 것이 아니다. 주도적으로 읽어 보아야 적극적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저 듣고 그저 보는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내 입안 구조를 움직여서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그 소리를 귀로 들으면서 외국어를 공부해 보자. 너무 오래 읽으면 또 습관적으로 읽게 될 수도 있으니 한 두 문장으로 시작해서 조금씩 늘려가다 보면 된다. 말하는 것과 읽는 것은 또 다르기 때문에 자꾸 읽어 보면서 눈으로 들어오는 문자 텍스트가 어떻게 말로 울리는지 익혀 보는 과정을 통해 언어가 외부에 머무르는 피상적인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 다가와 나의 소유가 되는 순간을 겪게 되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가끔씩 저절로 소리 내서 읽는 낭독을 즐기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활자를 소리로 만드는 그 순간 또 다른 느낌으로 살아있는 다가오는 생생함은 또 다른 설렘이 된다. 한국어 책을 낭독하면 느낌이 다른 것처럼 영어 책도 자꾸 읽어보면서 그 감각을 즐기는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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