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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Oct 22. 2024

다시 듣기로 돌아간다

외국어를 배우는 추천 방법 - 섀도잉

마흔이 되어서 시작한 영어 공부는 언어의 네 가지 영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하루에 한 문장을 외우는 말하기로 시작했다. 몇 달 후 영어책을 읽으면서 읽기로 이어졌다. 유튜브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면서 말하기와 듣기가 되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쓰기가 제일 적게 이루어지긴 했다. 본격적으로 쓰기를 시작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지나고도 몇 년이 지난 불과 1년 전이다. 


유튜브 영상 촬영을 그만두면서 듣기의 비중은 낮아졌다. 나는 그동안 책 읽기에 집중하면서 문자 위주로 영어를 더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듣기가 약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하기는 되는데 상대가 하는 말을 가끔씩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말하기가 늘기는 늘었으니 나와 대화하는 외국인 친구들은 말이 조금씩 빨라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이 내게 사용하는 어휘의 수준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듣기 공부를 계속하지 않았으니 나는 여전히 중급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듣기 실력을 키우는 것은 당연하게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과정이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라 할지라도 실제의 소리는 들릴 때 또 다르게 들리기 때문이다. 거기에 문장이 이어지면서 연음이 되면 아는 단어도 안 들린다. 트랜스포머의 첫 부분에서 When all hopes seemed lost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seemed lost가 안 들렸다. 어떻게 들렸냐면 dlust로 들렸다. seemed에서 s가 hopes에 붙고 모음 ee가 잘 안 들리니까 강조되는 부분인 lost가 들리는데 seemed의 마지막 자음 d가 lost에 붙으면서 dlust로 들린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단어인지 몰라서 몇 번을 돌려보다가 그제사 파악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나은 경우이고 아예 영어 자막을 봐야 이해가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 경우는 그냥 많이 반복해서 듣는 것이 답이다. 안 들리는 부분을 계속 반복하고 나중에 정말 안 되면 자막의 도움을 받는다. 소리가 문자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확인하면서 그 부분을 또 반복해서 듣는다. 자막 없이도 문장이 와닿을 때까지 반복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죽죽 이야기가 나야 재미있는데 한 문장을 수십 번 반복하는 것은 가끔 애가 닳는다. 하도 반복을 하고 있으니 곁에서 숙제를 하던 막둥이는 "엄마, 왜 자꾸 뒤로 돌아가요?"라고 의아한 표정으로 묻기도 했다. 


이제 어느 정도 들린다 싶으면 문장을 따라서 말해본다. 처음에는 문장이 나오면 바로바로 따라 말하는데 나중에는 동시에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해 본다. 따라서 빠르게 말하는 것은 되는데 동시에 맞춰서 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이 방법은 내가 큰 아이와 엄마표 영어를 할 때 쓰던 방법이었다. 한 부분을 정해서 수없이 듣고 반복하면서 나중에는 화면만 틀어놓고 더빙을 하는 것이다. 섀도잉에 더빙까지 더해진 방법으로 사실 듣기와 말하기, 어휘력 확장에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고 여겨진다. 다만 단순하게 책을 보고 문장을 외우는 것보다 시간과 노력이 훨씬 많이 든다는 것이 단점이다. 


아이만 시켰지 나는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엄마표 영어를 거의 놓은 시점에서 내가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럼에도 이 방법이 제일 효과가 좋았다. 기초를 어느 정도 다져 놓은 상태에서 영어의 감이 떨어졌다 싶거나 조금 더 올리고 싶을 때는 이렇게 집중적으로 며칠만 해 주어도 귀가 확 열리고 말하기도 훨씬 잘 된다. 오늘 학교 원어민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는데 40분을 둘이서 쉼 없이 떠들어도 막힘이 없을 정도였다. 작년에 새로 온 원어민 선생님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잘하는데 가끔 생략되거나 흐릿하게 넘기는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을 못 알아 들어서 어려울 때가 있었는데 이렇게 집중적으로 하고 나면 그런 부분이 훨씬 줄어드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기초를 잡는 데는 애니메이션이 제일 효과적이고 다음에는 일반 청소년 영화나 로맨스 영화가 조금 더 좋다. 액션 영화는 재미있지만 씬 위주로 진행되는 부분이 많아서 공부를 하기에는 대화가 많은 영화를 추천한다.


최근에 발견한 섀도잉에 좋은 채널을 하나 추가한다. 들으면서 계속 따라 하다 보면 표현을 외우는 것도 잘 되고 발음은 물론 귀도 조금 더 잘 열리는 것을 느낀다. 이런 비슷한 채널은 많이 있고 하나를 클릭하면 알고리듬이 알아서 자동으로 추천해 주니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나는 이 영상을 아들 야구 경기를 기다리는 동안 많이 듣고 있다. 경기와 경기 사이에 텀이 있는데 그때 귀에 이어폰을 끼고 들으면서 조용히 따라 한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냥 배경음악처럼 틀어놓고 중얼중얼 따라 하면서 하고 있다. 이렇게 문장 단위로 외우다 보면 좋은 점은 내가 순간 못 알아들을 때도 끼워 맞추어서 짐작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발달한다는 것이다. 오늘 외국인 친구랑 이야기할 때 "~~~~ after class?"라고 묻자 "During the class."라는 대답이 왔다. during의 발음은 [듀링]보다는 [쥬]와 [듀]가 절묘하게 섞여 있는데 오늘 그녀의 발음은 [쥬]가 조금 더 강했다. 순간적으로 [쥬어링]처럼 들렸는데 바로 아하 'during'이구나라고 끼워 맞출 수 있었다. 잠깐의 멈칫거림을 그녀는 못 알아차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짧은 문장을 수십 번 반복하면서 익숙해지면 조금 더 긴 문장과 지문을 소개해 주는 다른 섀도잉 영상 채널을 통해서 공부해 본다. 하나의 글을 따라 해 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기승전결의 흐름도 익히고 생각을 어떻게 풀어가는지도 조금 더 생각해 보게 된다. 스몰토크와 같은 짤막한 대화들도 시작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초기에는 좋겠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가려면 길고 깊은 대화가 필수적이다. 아이들이 짧은 단어에서 시작해서 짧은 문장으로 그리고 긴 문장으로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어른도 그렇게 하면 된다. 그때까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언어의 바다에 천천히 적셔가면서 충분히 탐색하고 익숙해지면 된다. 짧고 쉬운 문장이 되면 긴 문장도 할 수 있다. 긴 문장은 결국 짧은 문장의 토대에 조금 더 살을 붙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로 시작이 반이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가 정말로 맞다. 여기에 맞는 영어 속담이 있어서 적어 본다. A journey of a thousand miles begins with a single step. (수천 마일의 여정도 한 걸음으로 시작한다는 이 속담은 사실 중국 노자의 말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일단 한 문장을 시작하면 된다. 한 단어로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열 걸음 걸어가 열 개의 단어를 익히고 열 개의 문장을 익히고 다시 한 걸음을 더 걸어보면 되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ezp6tLGR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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