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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pr 16. 2023

피아노는 과연... 내게로 왔을까요

피아노 나눔과 운반, 그리고 먼 훗날의 소망까지

지난번 애타는 기다림 끝에 그분께 답장이 왔다. 캘리그래피를 하시는데 국전을 준비하시느라 확인이 늦었다고 미안하다고 하셔서 되레 내가 많이 죄송했다. 당장 내일 와도 된다고 하시는데 운반 업체도 알아봐야 하고 여러 일로 분주해서 금요일로 약속을 잡았다.


사실 더 빨리 만나고 싶었고 마음도 이리저리 긴장되었는데 막상 주중에는 여러 일로 바빠서 틈이 없었다.


피아노 운반을 위해서 일단 당근에서 알아보았는데 한 곳은 피아노 운반은 하지 않는다고 처음에 딱 잘라서 거절하셨고 다른 한 곳은 조율도 같이 해서 16~18만 원을 이야기했다. 신랑을 통해서 알아본 곳은 운반만 10~12만 원, 그리고 조율은 별도로 다른 분을 통해서 최소 8~10만 원이다. 사실 피아노 조율은 이렇게 말해서 참 죄송하지만 사기치기도 딱 좋은 분야이기도 하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여기도 고쳐야 하고 여기도 바꿔야 하고 부품이 없어서 추가로 주문을 넣어야 하고 등등의 이유를 대기 시작하면 30~40만 원은 그냥 나간다.


예전에 한 번 친한 이웃 블로거님이 조율사님을 극찬하길래 그분께 의뢰를 맡겼는데 최소 40만 원은 든다고. 원래 50만 원은 받아야 하지만 아는 분 소개이고 하니 특별히 깎아서 40만 원에 해 드리고 오늘 20 만원 다음에 20만 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금액이 나올 수 없는 구조인 것이 그전에 내가 조율을 수없이 했을 때도 많아야 10만 원 대 후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집 피아노를 그렇게 막 굴리진 않았다.... 신랑이랑 늦게 통화가 되었는데 화를 불같이 내면서 당장 거기서 멈추라고 했다. 한 만큼만 그냥 20만 원 드렸고 원래 아는 분께 해서 추가로 15만 원을 드렸다. 그분은 10만 원만 받겠다고 하셨는데 생판 모르는 남에게 20만 원을 주고 아는 분께는 그 절반만 드릴 수가 없었다.


일단 기본가는 8~10만 원이 맞다.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그냥 두었던 피아노를 조율할 때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나중에 수리할 부분이 많다고 하면서 부품비를 포함하여 가격을 올릴 것이 내가 생각해도 눈에 보이는지라 조금 더 비싸도 아는 분께 확실하게 받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계단의 유무에 따라서 운반 비용이 달라진다. 계단 한 층당 2만 원 정도 추가라고 보면 된다.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층이 높아도 비용은 변동이 없다. 피아노 나눔을 보고 나서 당근에서 피아노를 검색을 해 봤는데 이런 일반 피아노는 대체로 많아야 20만 원 정도, 그리고 의외로 나눔인 곳도 꽤 많았다. 다른 한 곳은 처음에는 20만 원, 그리고 10만 원, 나중에는 나눔으로 바꾸었다. 이유는 엘리베이터 없는 4층이라서 운반비가 많이 드니까 그냥 가져가라는 것이다. 딸이 쓰고 피아노 장인이 관리하던 피아노라는데 내가 연습실을 운영한다면 가져오고 싶지만 굳이 운반비만 20만 원 가까이 쓰면서 가져올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디지털 피아노는 아직도 가격대가 높게 형성이 되어 있는데 진짜 나무로 된 피아노는 왜 이렇게 무료 나눔을 해도 가져가지 않는 것인지 처음에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곧 납득이 되었다. 가장 주요한 원인은 층간소음이다. 피아노의 진동과 울림이 굉장히 커서 아랫집뿐만 아니라 윗집, 옆집, 건너 다른 층의 집들까지 다 소음이 전달이 되고 또 자리를 차지하면서 관리하기에도 비용과 노력이 드는 번거로움이 있다.


아무튼 그렇게 피아노는 우리 반으로 왔다. 교실이 제일 끝에 있어서 복도까지 터서 만든 교실이라 공간이 굉장히 여유가 있어서 피아노가 왔어도 사실 존재감이 별로 없어 보인다. 온 기념으로 안드레 가뇽의 '바다 위의 피아노'를 쳐 보았다. 히히히. 치면서 알았다. 너.... 사랑받았던 좋은 피아노구나. 지금이야 음이 다 풀려있지만 다시 조율해 주고 아껴주면 원래의 좋은 소리 금방 되찾겠구나.


피아노 주시는 분을 뵙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오려고 했는데 운반하시는 분이 나는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하셨다. 또 주시는 분도 일이 있으셔서 집에 없으니 그냥 주차장에 있는 피아노를 가져가면 된다고 하셨다고 해서 전화 통화만 했다. 말씀해 주시길 우리 딸이 쓰던 피아노인데 전공을 해서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고 또 다른 음악가와 결혼해서 외국에서 살고 있다고. 그런데 본인이 피아노를 치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딸이 쓰던 피아노를 보면 마음이 그렇다고 그래서 정리하시는 거라고 하셨다. 잘 쓰고 나중에 처분도 맘대로 하라고 하셨다. 수요일마다 근처 회관에서 캘리그래피 강의도 하니까 한 번 오라고 하셔서 나중에 인사드리러 갈 예정이다.


은퇴하고 나중에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연습실 운영이다. 20년 뒤에도 악기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손으로 치고 노래를 부르고 활을 긋는 이 아날로그적 연주에, 그리고 그 연주에 대한 소망에 끝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추어이든 프로이든. 오히려 모든 것이 자동화되고 디지털화되어 가는 시대에 내 손으로 직접 뭔가를 하고 만드는 DIY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일 것 같다.


가까운 곳에 작고 깔끔한 연습 공간을 마련하고 악기들 관리도 잘해 주면서 작은 홀도 하나 만들어서 작은 음악회와 전시회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과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 보통 때는 카페이다가 음악회장으로 대관도 해 주고 그냥 연주도 할 수 있고 그 뒤로는 연습실이 붙어 있는 거지. 한켠에는 시대가 흘러도 가치를 잃지 않는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고 그림도 그리고 공부도 하면서 좋은 인연들과의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 따스한 공간. 그런 시간을 그려본다. 그리고 오늘에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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