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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pr 18. 2023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그 시간

황혼이 아니고 뭐더라. 갑자기 그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점점이 바닥에 흩뿌려진 벚꽃이 이제는 한창의 절정을 넘어섰다고 말하는 듯하다. 여전히 한낮의 여운이 남아있는데 저녁의 차분함이 공존하는 시간. 거리의 가로등이 서서히 불을 밝히다가 어느 순간 '반짝' 하면서 한 단계 조도를 올릴 때가 있다. 같은 저녁 시간인데 확 하고 빛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슬쩍 여기 있다고 말하듯이 살짝 여운을 준 다음 어느 순간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이 시간을 사랑한다. 이 순간에 머물러서 매일 저녁 날마다 비슷한 듯 그러나 다르게 보여주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그 순간에 머물러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어느 날은 라라랜드의 그 황홀한 자주와 분홍의 향연 같기도 하고, 어느 날은 마치 내가 지구가 아닌 금성에 머무르는 듯 지독한 황금빛에 눈이 부실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그저 순수하게 넘어가는 태양이 선명한 빛을 발휘하는 정경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하루가 벌써 이렇게 갔구나 싶으면서도 오늘도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는구나 싶다. 집에서, 혹은 퇴근하는 둘레길에서, 혹은 한강대로를 건너는 차 안에서 그렇게 저녁의 빛을 마주하면서 감사를 한다. 돌아갈 곳이 있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오늘 들끓었을지언정 또 평화롭게 밤을 마주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음을. 그리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음을.


거실과 온 방이 하도 난리가 나서 정말 잔소리 엄마가 되어 반짝반짝 깨끗한 거실과 방을 만들어 놓을 때까지 아이들을 들들 볶은 날이었는데, 울먹울먹 하면서도 다시 와서 "엄마 사랑해요"라고 내일 아침 와서 나에게 꼭 안길 아이들이 있음에 감사한다. 방금 말하고서도 "제가 그랬어요?" 하는 얄밉지만은 않은 귀여운 개구쟁이들이 있는 우리 반 아이들과 내일 또 울고 웃고 떠들썩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6학년 담임교사라서 감사한다. 날마다 도전과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너희들을 사랑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래서 2023년 한 해가 이렇게 아름다운 저녁 빛으로 물들어 갈 때에 우리 감사하면서 또 그 시간의 향연들을 감사할 수 있도록 즐겁게 지내보자.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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