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미아는 삼청동을 걷고 있는 태오의 모습을 상상하며 웃음을 삼켰다. 낯선 곳에서 어색하게 걷고 있을 태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스치듯 지나갔다. 왠지… 그런 그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잠시 들떴다.
신기하게도 태오 또한 미아의 여유로운 세계를 함께 나누면 어떤 느낌일지 생각하고 있었다. 늘 목적지를 향해 내딛던 자신의 힘찬 발걸음이 처음으로 여유롭고 평온하게 변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미아와 태오는 많은 것이 달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로를 더 잘 알고 싶어졌다.
그들의 대화는 끝났지만, 마음속에는 간절한 질문이 하나 남아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당신의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요?’
미아는 조용히 찻잔을 매만지며 태오를 생각한다. 그는 언제나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이는 기계처럼 보였다. 철저하게 계획된 하루, 깔끔하게 정돈된 사무실, 빠르고 효율적인 사고방식,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 빈틈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냉철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순간도 흐트러짐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태오가 무작정 삼청동의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걸으며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면 어떨까?
미아는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처음엔 어색해할 것이 분명했다. 익숙한 도심의 반짝이는 유리 건물이 아니라, 기와집과 작은 카페와 오래된 공방이 자리한 낯선 거리를 걸어야 하니까. 스마트폰을 꺼내 길을 검색할 수도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걷기 시작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적응하지 않을까?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니까.
카페 앞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서점 앞을 기웃거리며 그녀가 좋아하는 낡은 책을 펼쳐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어쩌면 천천히 걸으며 처음으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노점에서 따끈한 군밤을 사서 하나씩 까먹고, 작은 공방의 유리창 너머로 도예가가 조용히 흙을 빚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을 수도 있다.
미아는 태오가 그런 순간을 경험할 때 어떤 표정을 띠고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낯선 세계에서, 태오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이 들까?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서서히 호기심을 품고, 그러다 문득 여유를 즐기는 자신을 발견하면 놀랍지는 않을까?
그 순간을 곁에서 보고 싶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그 찰나의 순간을.
미아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도 기대되지만, 그가 그녀의 세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는지가 더 궁금했다.
태오는 창밖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도시의 불빛은 반짝였고, 차들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자신과는 결이 다른 미아의 세계를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녀는 늘 여유로웠다. 자신이 익숙한 방식처럼 빠르게 목표를 향해 내달리지 않았다. 그녀는 계획 없이도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태오는 그녀의 그런 점이 참 신기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 미지의 세계에 함께 들어가 보면 어떨까?'
태오는 삼청동의 카페 골목을 걷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돌담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어디로 향할지 정하지 않은 채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어느 순간, 한 서점 앞에 멈춰 서서 오래된 책들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그려보았다.
손때 묻은 표지를 넘기고, 누군가가 남긴 작은 메모를 발견한다면… '그때는 어떤 기분이 들까?'
그는 책을 읽을 때 언제나 목적이 있었다.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자신이 모르는 무엇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혹은 자기 계발을 위해서 전투적으로 책을 읽곤 했다. 하지만, 미아처럼 생각을 하며, 느낌에 따라 책장을 넘기고, 낡은 시집 속에서 오래된 감성을 발견하는 경험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그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그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삼청동의 아담한 찻집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기분은 어떨까?'
'비라도 내라는 날이면 더 색다른 느낌일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아무 목적 없이 그곳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싶어졌다. 그는 자신이 과연 그런 순간을 마주했을 때, 적당히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미아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그녀 덕분에?, 그곳도 낯설지 않게 느껴질까?' 그것도 궁금했다.
그는 문득, 그녀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느꼈을 어색함에 대해 생각했다.
낯선 공간에서, 조금은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그곳에서 태오를 마주했을 때의 그녀를 다시금 떠올려 보았다.
그렇다면, '자신이 고즈넉한 삼청동에서 그녀를 바라본다면?'
'아마 그녀는 익숙한 공간에서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처음으로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그 또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오는 자신이 그곳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한층 더 궁금해졌다.
아니, 어쩌면 벌써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미아와 태오, 서로 너무 다른 세계에 속한 두 사람은 그 순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로 낯선 세계에서, 서로를 익숙하게 바라보는 순간을.
낯설지만, 설레고, 조금은 두근거리는 기대를 품은 채 함께 있는 시간을 상상했다.
태오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과 너무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는 걸 미아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사람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돈된 그의 옷차림과 사무실처럼, 그의 삶도 그렇게 말쑥하게 정돈된 것처럼 보였다. 일정은 철저하게 계획되었고, 그는 언제나 정확한 결정을 내렸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조금 정 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아는 태오가 가진 그 ‘확고함’에 어쩐지 신뢰가 갔다.
그녀는 기분이 흐르는 대로 감성적인 삶을 살고, 직관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고, 읽고 싶은 책을 무작위로 고르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고민하기보다 일단 무작정 시도해 보는 성격이었다. 그것이 미아에게는 자연스러운 방식이었지만, 때때로 방향을 잃는 순간도 많았다. 자신이 가는 길이 맞는지 고민할 때가 있었고,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 순간을 즐기는 자신이 과연 옳은 선택을 하는 걸까 불안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태오는 달랐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길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결정을 내릴 때 망설이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을 확신하며 행동했다.
그의 그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태도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가 가진 돈이나 지위 때문이 아니라, 태오 자신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미아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가 옳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토록 당당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태오는 정말 누가 보기에도 근사해 보였다. 미아는 그런 태오를 보며 미묘한 존경심을 느꼈다.
'그 확신 속에는 어떤 감정을 품고 있을까?,
그도 가끔은 흔들릴까?,
그도 가끔은 무작정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까?'
그를 더 알고 싶었다.
'그가 자신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순간을 경험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에게도 미아처럼 즉흥적인 하루가 필요할까?'
미아는 그가 짜인 일정 속에서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아닌, 색다른 공간에서 차를 마시며 조금 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 모습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의 단단한 세계 속에 작은 틈이 생긴다면,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새로운 감정이 스며든다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밀려왔다. 그 순간, 미아는 자신도 모르게 태오에게 점점 더 깊이 들어가고 있음을 알아챘다.
태오 또한 미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자신과 너무나 다른 사람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여유로움을 뿜어내며 늘 자유로워 보였다. 그녀에게는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무언가 신비로운 요소가 있었다. 태오는 항상 미래를 계획하고, 철저한 목표를 세우며 살아왔다. 하루의 일정은 미리 정해져 있었고, 그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미아는 그런 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때때로 예기치 않은 새로운 길을 탐구했고, 우연히 발견한 서점에 들어가 시간을 잊은 채 지내기도 했다. 그것이 태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그런 미아를 바라보며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그동안 자신이 너무 숨 막히게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와는 걷는 속도가 달랐다. 자신은 늘 빨리 걸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하지만 미아는 천천히 걸었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거리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자신에게는 늘 ‘가야 할 길’이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그 순간마다 그때그때 발견할 것들’이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태오는 자신이 그녀처럼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어느 날, 삼청동의 작은 찻집에서 그녀처럼 따뜻한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목적 없이 거리를 걸으며 하루를 보낸다면,
'그런 날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그녀가 자신의 삶에 들어오면, 자신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를 조금 더 알고 싶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빛깔일까?, 어떤 향기로 채워져 있을까? 어떤 느낌일까?'
그녀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감정을,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가득 품고 있는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그 세계 속에 한 번 뛰어 들어가 보고 싶어졌다. 아무 생각 없이.
태오는 미아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없는 것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녀의 세상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흐를까?
그녀와 함께 있으면, 자신도 조금은 여유로워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 순간, 태오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헤어 나올 수 없는 그녀만의 매력에 푹 빠져 있음을 깨달았다.
미아와 태오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상대에게 자석처럼 이끌리고 있었다. 자신이 가보지 않은 세계에서 살아가는 상대에게, 자신이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간직한 상대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서로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그 순간, 동시에 두 사람은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을 더 알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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