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더 딥 블루 씨
감독 테렌스 데이비스 출연 레이첼 와이즈, 톰 히들스턴
개봉 2015. 04. 23.
영화 <더 딥 블루 씨 The Deep Blue Sea (2011)>는 영국 유명 극작가 테렌스 래티건(Terence Rattigan)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 The Deep Blue Sea (1952)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받길 원했던 두 남녀가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에 빠져들게 되면서 겪는 가슴 아프고 파멸적인 사랑을 그린다.
영화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고등법원 판사 윌리엄 콜리어 경(Simon Russell Beale)의 젊은 아내 헤스터(Rachel Weisz)의 욕망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헤스터가 자살하기로 한 날부터 하루 동안의 사건을 중심으로 다루며, 헤스터의 자살 시도가 실패하고 회복되어 가면서 그녀의 불륜과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짧고 산발적인 회상으로 펼쳐낸다. 영화 타이틀 '더 딥 블루 씨'는 악마와 깊고 푸른 바다 사이에 있는 헤스터의 딜레마에서 따왔다고 한다.
Freddie Page: Let me give you a case: Jack loves Jill, Jill loves Jack. But Jack doesn't love Jill in the same way. Jack never asked to be loved.
프레디 페이지: 예를 들어 말해줄게. 잭은 질을 사랑하고, 질은 잭을 사랑해. 하지만 잭의 사랑은 질과 같은 방식은 아니야. 잭은 사랑받고 싶다고 한 적 없어.
헤스터는 어렸을 때부터 성직자인 아버지로부터 열정과 자유를 억압받으며 규칙과 절제를 우선시하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평온해 보이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만, 고리타분한 판사 남편과 애정은 있으나 성적 열정이 없는 지루한 생활에 지쳐 늘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어느 날, 헤스터는 영국 공군(RAF) 조종사 출신의 자유분방하고 젊은 남자 프레디(Tom Hiddleston)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곧 열정적인 관계를 시작한다.
한편, 헤스터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프레디는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공군 파일럿으로서 성공적이었던 자신의 과거 영광에 심취해 있는 남자다. 우연히 헤스터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 짧은 순간에도 늘 과감하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매력적인 남자지만, 많은 죽음을 목격했던 아픔을 안고 있으며 두려움과 흥분이 뒤섞인 전쟁의 기억에 시달리고 있다.
프레디에 대한 마음을 멈출 수 없는 헤스터는 남편에게 불륜이 드러나자 그동안의 비교적 편안하고 호화롭지만 답답했던 삶을 주저 없이 뒤로하고 프레디와 함께 어둡고 초라한 런던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헤스터의 새로운 연인 프레디는 그녀의 섹슈얼리티를 깨웠지만, 무모하고 스릴을 추구하는 프레디는 결코 남편 윌리엄이 준 사랑과 안정을 그녀에게 줄 수 없다. 그래도, 헤스터는 열정 없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참을 수 없기에 자신의 이상향 같았던 남자 프레디에게 점점 더 집중하고 치명적 사랑에 빠져 우아하고 고상한 자기 삶의 틀을 깨고 지독한 사랑에 몸을 던지는 거침없는 행동을 감행한다.
사랑할수록 깊어져 가는 헤스터의 소유욕은 멈출 수 없는 집착을 낳고, 치명적 사랑은 점점 파멸로 치닫기 시작한다. 헤스터의 애절함은 시간이 갈수록 프레디를 향한 집착으로 이어져 이 둘은 곧 위기에 직면하지만, 이미 격정적 사랑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헤스터는 결코 이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Hester Collyer: Lust isn't the whole of life, but Freddie is, you see, for me. The whole of life. And death. So, put a label on that, if you can.
헤스터 콜리어: 욕망은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프레디는 제 전부예요. 삶의 전부. 그리고 죽음. 그러니 할 수 있으면 마음대로 이름을 붙이세요.
Freddie Page: Today, the letter, the suicide attempt? We're lethal to each other. You can't expect a bloke to go on after he's driven someone to suicide. Much as he loves her.
Hester Collyer: Do you think that leaving me will drive me away from it?
Freddie Page: That's a risk we'll both have to take.
프레디 페이지: 오늘, 편지, 자살 시도? 우린 서로에게 치명적이야. 자기 때문에 자살하려던 여자와 같이 살 수 있는 남자는 없어. 그녈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헤스터 콜리어: 날 떠나면 자살하지 않을 거로 생각해?
프레디 페이지: 우리 둘 다 감수해야 할 위험이지.
영화 <더 딥 블루 씨>는 오직 한 사람, 프레디의 사랑만을 바라보고 원하는 여인 헤스터와 솔직하고 자유로운 사랑을 원하는 남자 프레디 그리고 표현에 서투르지만 듬직한 남편 윌리엄의 서로 다른 방식의 사랑 이야기다. 각자 이 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사랑 방식은 서로의 삶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 치명적이고 우울하다. 또한, 영화는 이들이 각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로 다른 형태의 사랑을 원하게 되면서 그 사랑이 어긋나고 파멸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섬세한 감성으로 풀어낸다. 이들 각자의 이유 있는 이야기는 한 방향으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사랑의 감정과 아픔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한 인간이 신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이 사랑의 위대한 힘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헤스터에게 프레디의 존재는 신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어 자리 잡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프레디는 그녀 인생의 모든 것이고, 이전의 삶을 과감히 포기할 만큼의 소중함이고, 죽음까지 생각할 만큼의 절실함이고,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삶의 진정한 의미이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우주였을 것이다. 그런 헤스터에게 프레디가 그녀의 집착에 대해 몹시 예민하게 반응하며 무례하게 행동할 때 그녀는 아마도 프레디와 함께 이루고 싶었던 세상을 향해서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을 만큼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자살 시도로 이어지고 마침내는 서로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만 남긴 채 헤어지는 수순을 밟는다.
언젠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말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도대체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진정 사랑하는데 어떻게 헤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내심 얼마나 무책임하고 말도 안 되는 말장난이고 위선으로 포장된 태도인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는 감당이 안 되는 한계치에 이르러서 사랑이 바닥난 상태로 헤어지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을 미워하고 참아내기가 힘겨워져서가 아니라 어쩌면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헤어짐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줄 수 있는 사랑이 생각보다 턱없이 미미하다고 느껴질 때,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이 지금 표현할 수 있는 사랑보다 꽤 차이가 커서 서로의 마음을 다 채워줄 수 없을 때, 또는 헤스터 남편 윌리엄의 경우처럼 여전히 사랑하고 있지만 헤스터의 바람대로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이혼이 허락되지 않았던 1950년 대의 갑갑한 시대적 환경이 안타깝고, 전쟁의 기억으로 고통받는 프레디를 헤스터가 좀 더 이해하고 따뜻하게 감싸줬으면 좋았을 텐데... 오직 사랑만을 갈구하는 불안한 모습으로 프레디에게 매달리는 의존적인 여성이 될 수밖에 없었던 헤스터의 처지가 그저 안쓰럽다. 자유분방하고 얽매임을 싫어하는 프레디였지만, 자산만의 사랑의 방식이 있듯이 집착 또한 예민하고 불안정한 헤스터만의 또 다른 사랑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이해해 줬더라면, 조금 더 기다려주는 인내심을 발휘해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줬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프레디도 헤스터를 사랑하기 때문에 집착으로 점점 더 헤스터 자신을 파괴해 가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서로에게 독이 되기 싫어서) 그 역시 아프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마지못해 헤어지는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영화에서 프레디가 떠나는 날, 무릎에 프레디의 구두를 올려놓고 정성스레 닦아주는 헤스터의 모습은 이제는 어느 정도 헤어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듯 결연한 체념이 드러났다면, 프레디가 떠나고 벽난로 앞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헤스터의 모습은 아직도 프레디를 보낼 수 없을 것 같은 극도의 상실감이 나타난다. 이러한 상반된 감정과 아이러니한 헤스터의 모습이 공존하는 것은 부인하고 싶지만 여전히 프레디를 사랑하는 감정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리적으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으나 마음으론 결코 보낼 수 없는 헤스터의 딜레마에 깊이 공감한다. 잃어버린 것을 잊어야 하는 그때가 무엇보다도 지독히 고통스러운 순간일 테니. 쿨한 척 프레디를 떠나보내고 세상의 종말을 맞은 듯 처절한 슬픔에 잠긴 헤스터의 모습이 긴 여운으로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