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프 자베드(Atif Javed)와 아지즈 알구나임(Aziz Alghunaim)이 MIT 공대 졸업을 앞두고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낼 때였다.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 문제가 대두되고, 주위 친구들이 하나둘씩 난민 수용소 현장 봉사를 떠났다. 친구들을 보며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수용소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공학도로서 우리가 도울 만한 건 없을까?" 그들이 들은 대답은 '언어'였다. 난민의 의식주 해결에 집중하는 봉사자 다수가 그 중심엔 소통이 있음을 간과한다고 했다. 실상은 수용소 난민들이 하루 중 90% 정도의 시간을 번역하는 데 사용한다고 했다.
이로써 이슬람계 미국인이자 이중언어 가능자인 두 청년은 통역 봉사에 뛰어들었다. 학생 신분이기에 현실적으로 현장 봉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통역 봉사는 꼭 그곳에, 그들 곁에 있지 않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더 많은 친구들이 우리와 함께하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은 페이스북 메신저 플랫폼을 구축했고, 이것이 난민을 위한 실시간 통번역 서비스 '타짐리(Tarjimly)'의 시작이다.
2017년 1월 공식 출시된 타짐리는 언어 장벽으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난민을 전문 통역사와 실시간으로 연결해 주는 페이스북 메신저 봇이다. 봉사자는 모두 시험을 통해 타짐리의 평가 기준을 충족한 전문 통번역가이며, 현재 6,000여 명의 통번역가들이 영어, 아랍어, 스페인어, 페르시아어, 소말리아어 등 총 16개 언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페이스북 메신저 앱을 통한 서비스인 만큼 사용법도 간단하다. 대화창을 열어 간단한 상황 설명과 함께 통번역이 필요한 내용을 음성 메시지, 문자, 사진, 비디오, 문서 등의 형태로 전송하면 끝이다. 머신 러닝을 통해 사용자가 처한 상황에 적합한 봉사자를 알아서 매칭해준다. 서비스 제공 국가 중 여덟 개국에서는 가상 번호를 통한 실시간 전화 서비스도 가능하다.
신변 보호를 위해 사용자와 봉사자가 성씨를 제외한 이름만 공개하는 옵션과, 한번 매칭되면 같은 상대와 재매칭되지 않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나아가 서비스 이후 사용자가 통역사를 평가할 수 있도록 했다. 눈에 띄게 좋은 평을 받은 통역사에 한해 평가 결과가 공개된다. 봉사자 간의 경쟁을 돋구는 일종의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를 가미해 서비스의 질을 높인 셈이다.
타짐리가 페이스북 메신저를 이용한 데에는 나름의 전략이 숨어있다. 바로 ‘친숙함’이다. “우리의 미션은 소통에 니즈가 있는 이들이 그들의 바짓 주머니에 통역사를 넣고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난민이 더 이상 막연한 통계 자료 수치가 아닌 실질적인 대화와 도움의 대상이 되길 바라요.” 자베드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한 말이다. 접근성을 높여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돕고 도움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타짐리로 희망을 되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이는 자베드와 알구나임의 원동력이 된다. 서비스 출시 직후 그리스에 위치한 어느 여성 센터의 트라우마 상담 봉사자는 아프간, 시리안 난민 여성들과 소통할 수 있음에 무척 기뻐하며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해당 센터로 오는 여성들은 성적 추행,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으며, 개중엔 우울과 자살 문제를 겪는 경우도 있어 대화를 통한 치료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때 두 청년이 깨달은 건 타짐리가 난민의 소통을 도와 생명까지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난민, NGO 종사자, 현장 봉사자를 포함해 현재까지 15,000여 명이 넘는 수혜자를 배출한 타짐리는 앞으로도 그 선한 행보를 이어가려 한다. 난민을 살리는 소통의 기술 뒤에는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이 있었다. 이들의 마음이 모이고 모여 장벽 없는 세상을 이룰 날을 기대해본다.
위 글은 과거 에디터 활동 당시 작성한 글을 옮겨놓은 것으로 내용이 현재 상황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