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독서:무인도에 단 한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품겠다"

by 에스더esther

만약, 무인도에 가는데 단 한권의 책만 가지고 갈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책을 품에 품고가야 할까?


인생 책으로 꼽을 만한 몇 권의 후보를 떠올린다.

이왕 꼽는 김에 열권 쯤으로 추려보기로 한다.


첫번째,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

두번째,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

세번째,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

네번째,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다섯번째,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여섯번째, 김훈의 <자전거 여행>

일곱번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여덟번째,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아홉번째, 양귀자의 <모순>

열번째,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사실은 무인도에 동행할 단 한권의 책만 고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가지고 가고픈 책의 후보들은 아무리 손 꼽아도 모자르기 때문이다. 백권, 천권이라도 좋은 책들은 너무도 많으니까.


그래도, 불가피하게 정말 단 한권만 가져가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눈물을 머금고 가슴에 품게 될 책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이다.


빅터 프랭클은 유대인이자 정신의학자로 역사상 가장 끔찍하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음의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고 생환한 생존자였다.


살아 돌아온 그의 곁에는 가족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유일하게 그에게 남아 있었던 것은 죽음의 터널 속에서 그를 살렸던 '삶의 의미'였다.


1945년 죽음에서 살아 돌아 온 빅터 프랭클은 처음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익명을 원했다.

실제로 독일어 초판본의 표지에는 빅터 프랭클의 이름이 없다. 하지만 초판본 출간 직전에 적어도 속표지에 만큼은 이름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는 친구의 권고를 받아 들였다. 그만큼 이 책은 전혀 명성을 바라고 쓴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빅터 프랭클은 말한다.


"내가 원했던 것은 독자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통해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만약 강제수용소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것이 입증 된다면 사람 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84년 영어판 73쇄에 붙인 서문 중에서,,,)


이 책은 로고 테라피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 준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로고 테라피는 나의 커다란 관심 분야이기도 하다.


2021년부터 로고테라피를 통한 의미치료 상담사 과정에 도전한다. 나를 살리고, 남도 살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책을 번역한 이시형 박사와 최근 통 통 튀는 심리상담으로 나를 온통 매혹시킨 박상미 교수의 제자로 입문하게 된다.

그래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다시 읽는다. 온 몸과 마음이 짠해 지는 전조 현상을 거쳐야만 비로소 다가오는 이 책을 어찌

무인도에 동행하지 않을 수 있으랴.


지옥보다 더 끔찍했다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네 군데나 전전하면서도 끝까지 삶의 품위를 잃지 않았던 빅터 프랭클 박사.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생환해 온 산 증인으로서 92세가 되던 1997년 삶을 마칠 때까지 그의 영혼은 호수처럼 맑았다고 후학들은 전하고 있다. 나는 그를 가까이 본 것도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를 느낄 수 있다.


단 몇줄 만으로 이 책을 요약할 수는 없겠지만,

감히 그 시도를 해본다면, "살아야 할 이유"다.


빅터 프랭클은 살아야 할 이유를 이렇게 얘기한다.


"수용소에서 사람의 정신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그에게 먼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는 데 성공해야 한다. 니체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라고


이 말은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와 정신 위생학적 치료를 하려는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말이다. 수감자들을 치료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을 어떻게 해서든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

-목표-를 얘기해 주어야 한다" (p.137중에서)


과연,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끔찍한 상황이 지금 우리 앞에 닥친 현실 속에는 없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것이다. 어쩌면

죽음의 수용소에서 겪었던 비극적인 일상들이 지금도 각자의 감옥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로고 테라피는 너무도 필요하다.


다시한번, 이 책을 마주 대하는 감격이 몰려온다. 구체적으로 스스로를 향해 묻는다.


"'왜' 사느냐고???"


오늘은 밤이 무척 길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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