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상담자로 많은 이들을 무한 위로 하고 있는 박상미 교수의 기록이다. 2년여 동안을 다양한 사회 명사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연재하고, 또한
강연장에서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얻은 지혜.
박상미 교수에게 명사들로부터 전해 들은 인생의 성공비결을 물어 오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아마
그들의 질문은 다름 아닌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아니었을까 생각 한다.
성공한 이들의 삶에는 "언제 어디서든 그들을 지지
해주는 <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고달픈 우리 인생에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단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바로 그<단, 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는다.
이 책의 첫 인터뷰 주인공은 김혜자 배우다. 한없는 사랑이 흘러 넘치는 사람. 그녀가 주고 받은 사랑이 잔잔한 나비효과를 일으켜 주변을 환히 밝혀준다.
"나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일 수 있는 배우이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았어요,,,
누구나 너무 아픈 고통은 말할 수조차 없죠. 누가
옆에서 '신은 극복할 수 있는 고통만 준단다'하고
말해도 위안이 되기는 커녕 더 고통스럽기만 하죠.
지금 정말 마음 아픈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제 말을 꼭 기억해 주세요. 인간의 사랑은 늘 불안 한 거죠. 변치않는 사랑은 신의 사랑밖에 없어요"
(p.29)
배우 김혜자를 만난 후, 박상미 교수는 인생모델이
생겼다고 한다. 김혜자는 아닐지언정 김혜자처럼
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004년 김혜자가 쓴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에서 읽은 글을 가슴으로 밑줄 그은 문장이 있다.
"내가 만일 비라면 물이 없는 곳으로 갈 겁니다.
만일 내가 옷이라면 세상의 헐벗은 아이들에게
먼저 갈겁니다. 만일 내가 음식이라면 모든 배
고픈 이들에게 맨 먼저 갈 겁니다"(p.31)
국민엄마, 김혜자는 지금도 여전히 아프리카 아이 들을 돕는다. 박상미 교수는 배우 김혜자를 보면서 파란 눈의 '소 알로이시오' 신부를 떠 올린다. 멀리 한국, 부산 송도에 와서 엄청난 사랑의 씨앗을 뿌린
신부. 그가 뿌렸던 씨앗은 수 많은 열매를 맺었다. 그중 2002년 대한민국 축구 4강 신화의 주역이던 김병지 선수가 있다. 또한 소 신부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아프리카의 성자 이태석 신부도 있었으니 '나비효과'의 위력이 어마어마 하다고 할 수밖에.
인터뷰는 다시, 박동규 교수에게 넘어 간다. 시인
박목월의 장남이자 서울대 명예교수이며 작가다. TV프로그램과 라디오를 통해 문학과 문화를 쉽게 읽어 주는 방송인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박동규 교수. 시인 아버지는 가난했고, 그런 가난한 시인 남편을 지극히 내조한 어머니의 사랑은 갸륵했다.
가난한 시인 아버지와 지극한 어머니를 둔 박동규
교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빈 자리를 시작업으로
채우며 '시의 집'을 꾸미느라 분주하다고 한다.
다음 인터뷰는 이병복 극단 자유의 대표. 배우를 앞세우고, 자신은 평생 무대 뒤에 엎드려 의상을
만들고 무대미술의 예술성을 세계에 알린 사람.
기자들과 인터뷰하는걸 가장 싫어한다는 소문은
박상미 교수를 긴장시켰다. '권옥연 화백의 아내' 이자 극단 대표로서의 이병복은 대가족 살림 사는 어머니처럼 평생 단원들을 보살폈다. 대한민국의 연극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이병복은 너무 멋졌다.
올해는 소띠다. 표재순 연출가도 소띠다. 박상미 교수가 만난 표재순은 방송국에 30년간 몸 담고,
드라마 45편과 연극 및 오페라 170편 넘게 연출 했다. 특히, 88올림픽 개회식과 폐막식 총연출로 유명하기도 하다.
"제가 소띠예요. 저는 소처럼 살아온 것 같아요. 소는 평생 밭 가는 존재 아닙니까. 씨 뿌리고 꽃 피우고 열매 따는 일은 다른 이들의 몫이지 소의
몫은 아니지요. 묵묵히 밭 가는게 소가 할 일이죠. 누가 알아주냐고요? 밭은 내 마음을 알 테지요.
그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그거면 족해요,,,"
(p.112)
말이 적은 표재순 감독의 인생 이야기는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말하기보다 경청하기를 좋아하는 그.
인터뷰 사진을 찍는 박상미교수를 향해 영정사진
으로 쓰겠다고 말하는 표재순 감독 때문에 그 날, 카메라 렌즈에는 자꾸 (눈)물이 고였다고 한다.
드디어, 신경림 시인을 만났다. 박상미 교수는 열 일곱 살 때 동국대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처음 그를 만났고, 외가 댁 어른이던 전우익 선생 사랑방에서 두 번째 만난 후, 이번 만남이 세 번째라고 한다. 사실, 신경림 시인과의 만남은 나에게도 있었다. 여행작가 프로그램에서 강사로 초빙되었던 그를 만났던 기억이 새롭다.
신경림 시인의 시는 길 위에서 쓴 시라고 말해도 될 만큼 유랑에서 얻은 소재들이 많다. 그 시중에서도 가장 압권이 '농무'라는 시였다.
박상미 교수는 멋진 가수 인순이를 인터뷰 하기 시작한다. 전액 무상 기숙형 대안학교인 다문화
해밀학교 이사장이기도 한 인순이 가수. 홍천에
있는 해밀학교에 간 적이 있는 나에게는 더욱 더
반가운 만남이다. '해밀'이란 뜻은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이다. 학생들은 전원이 무상 기숙을 하고,
등록금도 완전 무료인 학교. 큰 엄마로 불리기도
하는 교장쌤 인순이는 누구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고 치유해 주는 진정한 '마음치유 전문가'다.
아, 이제 만날 사람은 황현산 선생이다. 평론가이자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적신 작가. 암 투병하면서도 글을 썼고, 세상이별의 날까지도 허술하지 않았던 시대의 스승이다. 그의
마지막 산문집 <사소한 부탁>을 읽으면서 마음이
짠했던 기억. 박상미 교수는 투병중의 선생을 만나 다르게 사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배우기를 멈추지 말고, 참신하게 생각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게 책을 읽는 것
입니다. 내가 이제 70인데, 요즘은 책을 잡으면
그 책의 저자는 거의 나보다 젊은이들입니다,,,"
(p.210)
좋은 어른을 만나기 힘든 시대, 박상미 교수 덕분에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나 만날 수 없는 황현산 선생의 조근 조근한 음성을 듣는 듯 싶다. 참 고맙다.
다음으로는,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로 유명한
조벽 인터뷰가 이어진다. 인성이야말로 인재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중요한 실력임을
깨닫게 해준 교육자이다. 미국 미시건 대학에서
20년간 공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창의력을 위한
혁신센터를 역임한다. 지금은 한국에서 교사와
학부모 및 학생들에게 '인성이 실력'임을 강의
하고 있다. 40년 동안 한국을 떠나 있었던 조벽
교수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한국인의 장점을 찾아준다.
김현영은 젊은 시절을 발레리나로 살았다.43세에
시력을 잃은 뒤, 장애인들의 심리치료를 위해 상담
공부에 매진했고, 대전 장애인 자립생활대학 학장 으로 살고 있다. 장애인들이 '자기치유'를 통해서
진정한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인생 목표다.
박상미교수는 어느 '영화치료' 수업에서 김현영을
학생으로 만났다. 그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열 다섯 살이나 어린 교수는 혼자서 우왕 좌왕 갈피를 못 잡았다고 한다.
"상관 없어요. 현영 언니는 느낌으로 다
알아 들어요!" (p.253) 동기들의 말이었다.
장애인 상담은 장애인이 할 때 더 효과가 크다는
김현영 학장은 진정한 자립을 위해서 무진 애를
쓰고 있다. 박상미 교수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고난을 이겨내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무조건 믿어 주고 응원해 주는 '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 힘 으로 반드시, 반듯하게 꿈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
(p.265중에서)라는 결론을 얻는다.
다음 인터뷰 대상은 특이하다. 섀넌 두나 하이트.
1982년생으로 미국 가정에 입양된 후 국내에 성공 적인 입양사례로 손 꼽혔지만,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환 입양인들과 연대하여 미혼모 가족들을 돕는 활동을 해 왔으며, 한국사회가 '아이를 입양 보내지
않아도 엄마가 잘 키울 수 있는 사회' 되기 바라는
마음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박상미 교수가 만든 입양인과 미혼모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마더 마이 마더>를 찍을 때 섀넌 두나
하이트를 만났다. 섀넌을 처음 만나던 날, 박상미
교수는 한 없이 작아 졌다고 한다. 자기를 버린 이
나라를 다시 찾아와 입양인과 미혼모를 돕고 있는
섀넌은 지극히 마음이 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의 어머니를 애타게
찾았고, 우여곡절 끝에 친모를 만났다.
"엄마가, 만나기 전날, 전화로 말했어요. 우리,
만나면 울지 말고 웃자고. 이미 우리는 많이도
울었으니까,,,정말 울지 않고 웃으면서 뜨겁게
서로를 안았어요."(p.277)
한국의 어머니를 만나던 2013년이 섀넌에게는
매우 특별한 해라고 한다. 묵묵히 곁에서 지지해
주는 남편을 만나 결혼도 했다. 2015년, 섀넌은
엄마가 되었다. 친 엄마, 시부모님, 미국에 있는
양부모님까지 수 많은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며,
아이를 낳았다. 한국사회가 아이를 버리기 쉬운
사회에서 잘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될 때까지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는 섀넌에게
박상미 교수는 담담하게 읊조린다.
"당신, 참 고맙다"라고,,,
책은 드디어 마지막 인터뷰 대상을만난다. 다름아닌, 박상미교수 자신이다.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단 한 사람의 힘을 강력히 믿는.
"박상미 묻고, 박상미 답하다: 함께 울어주면, 나중에 함께 웃을 수 있다" (p.298)
박상미 교수의 장점은 '하고 싶은 일은 곧바로 하는
것'이다. 그런 점은 정말 닮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늦게 시작했다고 말하는 박상미 교수는 "느려도
반드시 반듯하게 갈겁니다"라고 얘기한다. 좋다.
그녀에게 '믿어 주고, 응원해 주는 단 한 사람'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다. 특별하지 않아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민들레꽃 처럼 살아야 한다던 아버지의 말을 가슴에 담고 사는 박상미 교수의
앞날이 그래서 더 기대된다.
결국, 나는 이 책을 덮으면서 나의 인생 제 2막을 제대로 살아볼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있는 멘토, 박상미교수를 새롭게 만난다. 앞으로 절대로 놓치지 않고 꼭 붙들고 갈 작정이다. 모두 굿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