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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독서: 스토너STONER

A novel by John Williams

by 에스더esther

1965년 초판본

'스토너'라는 제목의 책을 한참 전에 사 두었다가

이제서야 꺼내 읽는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이 소설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다른 누구보다 풍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책'이라고 하는데,

뉴욕 리뷰 북스의 편집자 에드윈 프랑크가 2006년

'스토너'를 재발행 하면서 건넨 문장이다.


1965년 초판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 책은 맨

처음 출간되었을 때, 미처 2천부를 다 팔지 못하고

절판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눈이 밝은(?)

독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심지어 초판본은

온라인 중고시장에서 고가로 거래중이란다. 그럼,

지금 읽고 있는 나는 진심으로 귀 밝은 독자인가?


저자인 존 윌리엄스(John Edward Williams)는

주인공인 스토너(Stoner)와 같은 문학교수로서의

길을 걷는다. 그래서 두 인물은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다. 스토너를 향한 저자의 헌사는 곧, 자신에게 던진 겸손한 자존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스토너를 슬프고 불행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 에는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에 대한 헌사중에서)


첫 문장에서 밝히는 주인공 스토너의 출생년도는

1910년이다. 존 윌리엄스가 1922년 출생이니,

한 다스의 세월만큼 인생 선배인 셈이다. 어쩌면

스토너의 일생을 따라가기 위한 후배로 스스로를

위치시킨건지도 모르겠다.


스토너는 열 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같은 대학의 강사로 1956년 세상을 떠날때

까지 강단에 섰다. 존 윌리엄스가 1994년 숨을

거두었으니 저자보다 38년 쯤 먼저 떠난 것이다.


어쩌면 이게 스토너에 대한 이야기의 전부일 수도

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영문학 교수로

평생을 살았던 그를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다. 그는

첫 눈에 반한 이디스와 결혼을 했으며, 그레이스를

딸로 얻은 대학의 조교수일 뿐이었다. 사랑은 처음

이디스를 만났을 때 이후, 그저 냉랭하기만 했다.


그런 스토너가 도대체 왜,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말해주는 걸까? 책의 3분의 2를 넘기는 동안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스토너였기에 저자의

헌사가 허언이 아닐까도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스토너의 반전은 후반부터 시작되는 중이었다.

마흔 세살이 되던 해에 스토너의 몸은 거의 젊은 청년 시절만큼이나 호리호리했다. ,,,
해가 거듭될수록 그의 어깨는 점점 더 굽었고,
그는 천천히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 ,,,초봄의
어느 날 늦은 오후에 그는 연구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그는 누군가가 등 뒤에 서 있음을 알아 차렸다.,,,캐서린 드리스콜이 서 있었다.,,,
(p.253~254중에서)

캐서린 드리스콜, 그녀가 스토너의 인생에 개입을

하기 시작한건 이때부터다. 물론 캐서린은 훨씬전

부터 스토너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대학의

후배교수인 캐서린은 논문원고를 스토너에게 감수

받고 있었다. 놀랍게도 캐서린의 원고는 매혹적일

뿐만 아니라 스토너를 격렬한 사랑에 빠지게 했다.


"그렇게 그는 연애를 했다. 그는 캐서린 드리스콜

에게 자신이 품고 있는 감정을 서서히 깨달았다.

어느 새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오후에 그녀의 집을

찾아갈 핑계를 찾아내고 있었다."(p.263중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스토너를 흠모해 왔던 캐서린은

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오히려 억지로 밀어내려 애쓰고 있는 스토너를 부드럽게 감싼다.

나이 마흔 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이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 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p.270중에서)

스토너와 캐서린의 사랑은 뜨거웠다. 모든 연인들

처럼 열정적으로 서로를 존중했다. 아무도 모른다

생각했던 그들의 관계가 진즉부터 스토너의 아내,

이디스가 알고 있었다는 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들의 사랑은 이내 많은 사람들의 입과 귀로 널리

퍼졌으며, 급기야는 서로에게 조용한 결말을 허용

하고야 만다. 캐서린은 어느 날, 강렬한 사랑의

기억만 남기고 떠난다. 다시는 못 보게 될 이별.


스토너는 다시 이디스와 그레이스의 곁에서 머물게

되었지만, 이미 그는 급속히 늙어갈 뿐이었다. 그저

강의하는 교수로서의 역할만 남겨진 듯 했다. 그를

지탱하는 유일한 일은 대학교수로서의 사명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전쟁이 벌어졌고, 전쟁보다 더욱 더 끔찍한 질병이 스토너를 덥쳤다. 전쟁은 끝나고

대학은 다시 활기를 찾았지만 그는 긴 잠에 빠진다.

기쁨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
것없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가
없는 생각이었다. 그의 의식 가장자리에 뭔가
모이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주위가 부드
러워지더니, 팔 다리에 나른함이 조금씩 몰려
들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
으로 책장을 펄럭 펄럭 넘기면서 짜릿함을
느꼈다.,,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책의 마지막 문장중에서,,,)

그렇다. 스토너는 책을 넘기다가 스르륵 눈을

감았다. 누구보다도 평안한 죽음이었다. 그는

평생을 인내하는 삶을 살다가 조용히 떠났다.


1965년 출간된 이 미국소설은 거의 50년이 흐른 뒤에야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된다.

주인공인 스토너만큼이나 참을성이 많은 작품인

것이다. 온전히 배우고 싶은 인내의 아이콘처럼

가슴에 귀하게 품는다. 모두들 무탈하시고,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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