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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독서 : 아이러니스트 2

유영만

by 에스더esther

존 듀이와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유

존 듀이는 교육철학자로 불리우기도 하면서

동시에 경험주의 혹은 실용주의 철학자로

부르기도 한다. 그의 책 <민주주의와 교육>

에서는 '성장은 경험의 계속적 재구성'이라

말하고 있으니, 그에게 있어 경험이야말로

교육과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실제로 유영만 교수는 듀이가 강조하는 경험을

철학사에 비추어 예시를 들어 주고 있다.

듀이는 왜 경험에 관한 문제의식으로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는지 철학사에
비춰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가 철학적 연구
주제로 경험을 전면에 내세우기 전에는 거의
모든 철학이 경험을 경멸의 대상으로 여겼
습니다. '이성'을 철학적 '이상'이라고 생각 했고, 경험은 이성의 명령과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경험은 상황에 따라서 가변적이고 변덕이
심하기에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이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장에
듀이가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이성 중심
철학이 지배적이던 시대에 용감하게 맞서며,
듀이는 경험없는 이성은 근거 없는 관념적인
사유에 지나지 않음을 주장합니다.

(책 p.47중에서)

이렇듯이, 듀이는 경험을 철학적 사유의 전면에

부각시킴과 동시에 오감으로 직접 경험하는 질적

사고를 개념화 시킨다. 유영만 교수는 이를

설명하면서, '놀라운 장면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감탄사'를 질적 사고의 예로 든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필수 요인으로서의 경험은

듀이 철학의 근본이자, 오늘과 내일을 연결하는

통합적 세계라고 한다. 킬리만자로 등반과

사하라사막 마라톤 대회를 경험한 유영만교수,

그의 경험이 바로 한 사람을 성장시키고 변화

시킨 실제의 사례임을 강조하면서 존 듀이는

살아있는 철학적 사유로 재건축 된다.


이 책을 장식하는 세 번째의 주자는 '프리드리히

니체'다. <전복과 파괴의 철학자>로 잘 알려진

니체는 정상적 사유를 뒤집어 비정상적 사유로

전환하는 것을 즐겼던 사람이다. 유영만 교수의 니체는 바로 그런, '천의 얼굴을 가지고 천 가지 길을 걸어간 철학자'였다.

저는 니체를 기존 가치 체계나 옳다고 믿는
신념을 뒤집어서 그 위에 새로운 철학적인
건축을 시도하는 전복의 철학자라고 생각
합니다. 기존 가치를 뒤집어 새로운 가치
체계를 만들려고 한다는 점에서 니체를
가치전도의 철학자라고도 합니다.,,,
(p.85중에서)

유영만 교수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대목을 인용하기도 한다.


"돌 속에 하나의 형상이, 내 머리 속에 있는 형상

가운데 으뜸가는 형상이 잠 자고 있구나! 아,

그 형상이 더할 나위 없이 단단하고 보기 흉한

돌 속에 갇혀 잠이나 자야 하다니! 이제 나의

망치는 저 형상을 가두어두고 있는 감옥을

무섭게 때려 부순다. 돌에서 파편이 흩날리고

있구나. 나와 무슨 상관인가?" (p.88중에서)


과연, 망치의 철학자 혹은 파괴의 철학자라고

불리울만하다. 니체는 무척 어렵다. 그의 책을

보면서 머리를 싸매고 고뇌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닌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데 유영만 교수의 니체에 관한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길이 보인다. 니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

니체를 전복의 철학자라고 하는 이유를 몇 가지 더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우선 모든 전통은 진통 속에서 탄생합니다.
진통 없이 전통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니체는 전통을 망치로 산산조각 깨부수는
전복의 철학자답게 진통을 당연히 겪어야
할 고통으로 받아들입니다. ,,,(p.91중에서)

유영만 교수의 또 다른 책, <니체는 나체다>에서

그는 니체 철학을 '나력(naked strength)'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나력'이란 벌거벗은 야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니체로 인해서 인생에

있어 네 번의 전복을 경험했다는 유영만 교수는 체력, 인식론적 혁명, 관계론적인 혁명과 아울러 가치론적 혁명을 실제 체험을 통해 설명한다.


여기에서 어쩔 수 없이 니체 철학의 가장 황금률

같은 운명론을 얘기해야 할것 같다. '아모르 파티',

즉 운명애를 말한다. 유영만 교수는 운명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고 있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운명을 아름답게 창조

하는 것입니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은 결국,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p.105중에서)

이제, 오늘의 독후감은 니체로 마무리 해야 할

듯 싶다. 운명을 마음껏 사랑하기 위해서 잠깐

저녁 외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힘든 삶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니체의 '위버멘시'를 유영만 교수의 버전으로 소개

하면서 말이다. 모두들, 굿 이브닝!!!


너는 너 자신의 불길로 너 자신을 태워버릴
각오를 해야 하리라. 먼저 재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새롭게 되길 바랄 수 있겠는가!
_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 p.105중에서)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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