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한강

by 에스더esther

한강이 만들고 부른 노래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육성으로 부르는 한강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듣고 또 들었다. 황홀했다.


새벽의 노래


새벽에 눈을 떠

하늘을 보았어

어둠이 걷히고

푸른 빛이 번졌어


구름은 뭉클뭉클 피어나

어디로 흘러 떠나가는지

하나 둘 깨어나는 나무들

가지를 뻗어 올렸어


이리 아름다운 세상이

내 곁에 있었나

두 눈에 맺히는

네 눈썹같은 조각달


나 이제 푸른 날개 펼치고

저들을 따라 날아 오르네

푸르른 불꽃같은 나무들

가지를 뻗어올릴 때


살아 있다는 건 뭘까

살아 간다는 건 뭘까

대답할 필요 없네

저 푸른 불꽃들처럼

(p.150~151)


최근 한강의 책을 세 권이나 연달아 읽었다.

'작별'과 '작별하지 않는다'를 세트처럼

끼고 읽다가 2021년과 작별했고, 당분간

작별하지 않을 2022년을 맞이했다.


지금은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손에서 놓지도

못하고 귀를 닫지도 못하고 있다. 세월을 거슬러

강산이 두어번 바뀌기 전에 나온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온라인 중고서적을 헤매었다. 그리고 '최상'

등급의 책을 골랐다. 이렇게 좋은 책이 왜 다시

나오지 않는걸까?한강 작가를 만나면 꼭 묻고

싶다. 왜? 2쇄, 3쇄를 쭉 쭉 안 내는거냐고.

새벽이면 걷다 오는 물가에 버드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라는 시집도 있지만, 버드나무들의 모습을
보면 식물에게도 감정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실감이 난다. 특히 그중 한 그루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이는데, 뭔가 나에게
말을 하고 있는것 같아서다. 뭘까. 뭐라고
하는걸까. 그걸 들으려고 한참 서 있을 때가
있다. 언어로 하지 않는 말이니 설령 들었다
해도 옮겨 적기는 어렵다. 굳이, 억지로 옮겨
적자면........하루는 이렇게 말하더랬다.

울지 마라고. 그럴 거 없다고.

그 말이 맞다.
그럴 거 없다.

(p.5 '인사' 중에서)

그렇게 한강은 나무의 소리를 듣는다.

나무가 하는 말을 노래로 부른다.


나무는


나무는 언제나 내 곁에 있어

하늘과 나를 이어주며 거기

우듬지 잔가지 잎사귀 거기

내가 가장 나약할 때도


내가 바라보기 전에

나를 바라보고

내 실핏줄 검게 다 마르기 전에

그 푸른 입술 열어


언제나 나무는 내 곁에 있어

우듬지 잔가지 잎사귀 거기

내가 가장 외로울 때도

내가 가장 나약할 때도

음-음-

(p.138)


날것으로 부딪는 곡조가 이렇게도 커다란 위로가

될 수 있다니. 신기했다. 마치, 시를 낭송 하듯이

노래를 들려주는 한강 작가에게 반해 버렸다.

앞으로도 내가 살아갈 동안 한강이 들었다던

나무의 말이 오래도록 나를 위로할 것 같다.


울지 마라고. 그럴 거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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