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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스블루 Sep 23. 2015

나를 사랑하는 질투

(등장하는 모든 사진은 남프랑스에서 직접 촬영한 필름 사진입니다.)

20150821


나의 기록

자꾸 보게 되고 더 알고   싶어졌다. 그러는 동시에 괜히 밀어냈고 무관심한 척 했다. 부러웠다.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내게 보이는 그 모습이 날 충분히 자극했다. 그래서 이 책을 사들기까지도 수없이 망설였다.

정작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내려 갈수록.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볼수록 이해하고 빠져들었다. 내가 머리로만 했던 생각들. 나와 이어진 듯한 감성. 단순히 마르고 길쭉하다고 부러워했고 거부하려 했다. 다 가진 것 같아서. 내가 생각으로만 하고 말았던 일들을 쓱쓱 해내는 게 너무 부러워서. 내가 작아져서. 모두가 다르고 이야기가 있는 것을 또 잊은 채로.

오히려 배웠다.  위로받았고 받아들였다. 나보다 조금 빠를 뿐, 조금 다를 뿐 그녀도 그녀의 삶을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그럼에도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나도 할 수 있다. 나대로. 자연스럽게. 멋지게.



아무도 보여달라 하지 않은 나의 짧은 기록을 글의 서두에 그대로 옮겨놓은 이유는 오늘만큼은 누구나 한 번쯤 혹은 여러 번 경험했을 마음속 작은 불씨, '질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이다. 뭐랄까 '질투', 이 말은 단어 자체에도 찌질함과 투박함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것 같아서 쉽게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 않는다.  나보다 여러모로 잘난듯한 사람에 대해 "난 그 애가 나보다 잘나서 너무 미워. 질투가 나."라고 말하지는 못하고, 이런 저런 미운 말들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채워나가는 것도 그 때문일까.



몇 해 전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고서부턴 멋지고 감각적인 사진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인스타그램 속 사진들, 그리고 그 사진 속 사람들은 정말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요즘 많이들 쓰는 표현으론) 힙했다. 두어 달쯤 전이었다. 여느 때처럼, 수많은 사진들 속 내 관심을 끌만한 인물을 찾아 열심히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작은 얼굴,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길쭉한 팔다리는 이미 자신의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무심하게 걸친 옷가지들, 덤덤하지만 읽는 이의 감성을 쿡쿡 찌르는 글귀들. 그녀는 젊은 나이임에도 아무도 갖지 못한 자신만의 느낌이 있었다. 빼어난 몸매 덕에 간간이 모델일을 하고 있었고 뮤직비디오에도 잠시 얼굴을 비췄으며 옷에 대한 자신의 감각을 살려 개인이 인터넷으로 옷을 판매하는 소규모의 마켓을 열고 있었다. 적당히 이 정도 쯤이었다. 내가 SNS를 통해 알 수 있던 그녀의 모습은. 그렇게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사진이  올라올 적마다 챙겨보고 있던 찰나에, 그녀가 자신의 여행기에 대한 책을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쓴다는 그녀는 꽤 오랜 시간 여행을 다녀왔고  그동안의 기록을 정리하여 책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평상시처럼 그녀가 올린 사진들을 챙겨보고 그녀가 낸 책이 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여전히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책만큼은 사서 읽고 싶지 않았다. 솔직한  그때의 생각들을 털어놓자면(질투에 대해 여과 없이 말해보기로 하였으니),  '써봤자 얼마나 잘 썼겠어. 20대 청춘의 홀로 떠난 여행기는 너무 흔하지 않나. 매력적인 외모를 앞세운 SNS 마케팅이란 게 이런 건가. 이젠 글 쓰는 일에도 외모가 중요한 건가.' 살짝 과장한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런 저런 가시돝인 말들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질투했다.


질투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게 질투였다는 사실을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책이 발간되고 한 달쯤 지나서였을까. 친구와 시간을 보내던 나는 문득 그 책을 사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당장 서점으로 가 그 책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책이 구석진 곳에 있음을 알았을 때는 아주 조금 안도했던 것도 같다. 내가 이렇게 못된 심보를 가져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그때서야 알았다. 이 책을 집어 들기까지 나한테 시간이 필요했구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누군가는 먼저 손쉽게 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 사람이 내가 부러워하던 모습을 가진 사람이어서 그 부러움이, 질투가 가라앉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지금의 나보다 서너 살쯤 많은 그녀의 글들이 나를 위로하고 자극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들어왔다. 책의 표지가 심플한 것도, 한 페이지가 꽉 차않는 정도의 글도, 책의 시작에 인용한 문구의 주인공이 내가 좋아하는 작가분인 것도 좋았다.


그 흔한 인스타그램의 유명인들처럼, 예쁜 외모를 가진, 감성적인 글귀를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책 속에서 만난 그녀는 함부로 판단한 나의 모습이 초라해질 만큼 맑았고 깊었으며 근사했다. 여느 대학생이 가진 고민들을 했고 화려한 것들보단 소박한 일상을 사랑했다. 따뜻한 품을 가진 할머니를 생각하며 옛 추억에 잠길 줄 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진' 사람이었다. 나를 뒤흔든 여행에서 돌아와 복잡한 마음에 잠 못 이루던 나에게 예상치 못한 조언을 해주었고 거창하게 말하자면 별안간 흐려진 나의 미래를 다독이는 길잡이 같은 책이 되어주었다. 편안하게 책장을 넘기다가도 잠시 멈추어 그 글귀를  가슴속에 새기게 하는 멋진 글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려던 이야기가 뭐였더라. 아, '질투'. 책장을 덮고 생각해보니 "'질투'라는 것이 결국 나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감정 속에는 미움, 부러움 같은 직설적인 감정들도 있지만, 그런 감정들이 '닮고 싶다.'라는 생각으로도 이어짐을 깨달았다. 닮고 싶은데 나의 현실은 그 사람의 것보다 너무 초라해서 스스로를 다그치고 미워하는 게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그럼, 질투가 그렇게 나쁜 건 아니네.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건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서 드는 생각이지. 나를 성장시키고 싶은 욕구 때문에 생기는 감정들이야. 단지,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그 대상과 너무 비교하는 나머지 나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릴 뿐이야.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거랑 똑같은 것 같다.


나를 사랑하는 질투를 하면 되겠다!


나를 사랑하는 질투? 그게 뭐지.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처음 그녀를 동경하고 그 감정이 질투로 이어졌을 때. 그리고 그 질투가 그녀의 글을 통해 존경으로 바뀌었을 때.


그녀에 대한 질투가 너무 커졌을 때, 잠시 시간을 두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나는 나이고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야. 나보다 앞서 자신을 펼치는 이를 그저 또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나를 다독였다. 그러고 나니, 그녀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차이들은 내버려두고 내가 노력하면 도달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 사람의 외모는 가질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 태도에서는 너무나 배울 점이 많았고 나는 그것들에 집중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녀의 기록들은 혼란했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안에 여유를 찾고 나를 충분히 사랑할 때, 우리는 배울 수 있다. 나도 아는 나의 단점을 콕콕 집어 지적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은 것처럼, 내게 없는 것들을 가진 사람을 질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질투에서 무언가를 얻어가자. 방 좀 치우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알았어. 내가 워낙 좀 더럽잖아. 어쩌겠어."라고 받아치면 괜히 기분이 풀리는 것처럼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는 나의 온 눈과 귀를 열고 배우자. 나를 사랑하는 질투를 하면 내가 성장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질투는 더 이상 찌질하고 미성숙한 감정이 아니었다. 나에게 질투란, 물론 건강한 질투, "나를 사랑하는 질투"란 무언가를 향한 부러움이 나를 고찰하게 하고 그 진지한 생각들이 내게 교훈을 가져다 주는 일종의 테라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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