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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영은의 비밀

#23 지옥 같은 꼰대담임

by 에스더쌤

나는 몰랐다.

내 고교시절의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처음 담임 김재휘를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내가 고입 연학고사의 성적이 우수했고,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표정은 서글서글하고,

뭐든 시키면 군말 없이 순종적이었으니까.




입학하고 며칠이 지나

담임 김재휘는 나를 불렀다.

"호영은, 이리 와봐라."

"네, 무슨 일이신데예"

"여기에 증명사진 알맞게 잘라서 붙이래이"

"네? 네..."

반학생 모두 조용히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를 하는데, 나는

어느 빈 교실에 가서

50명 아이들의 증명사진을

서류 칸에 맞게 잘라서 풀로 붙였다.



증명사진의 크기도 각양각색이었고,

사진 속 얼굴의 비율도 제각각이었다.

가위질에 풀질에 쉴 틈이 없었지만,

단순노동은 묘미가 있었고,

아이들 사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김재휘가 내가 있는 자리 가까이 다가오면

짙은 담배냄새와 함께,

그 냄새를 가라앉히려 뿌린

강한 향수가 역겨운

냄새를 내뿜었다.



아빠도 담배를 피우는데

차원이 다른 냄새였다.

내가 잘하고 있나 살펴본

김재휘는 만족을 하고 나갔다.

그는 수시로 나를 불러댔다.

나는 내심

심심하면 불러내는 담임이 귀찮으면서도

특권의식 같은 것도 느꼈다.



그러다 중간고사 결과가 나왔는데

내가 시험을 잘 못 봤다.

갑자기 담임은 태도가 바뀌어

나를 쌀쌀맞게 대했다.

급기야 어느 날 오전 자율학습 시간에

반 아이들이 떠들었다고

반장과 두 부반장 세 명을 불러 세웠다.

"반장, 부반장 다 나와!"

"너거들은 뭐 하고 있었노, 어?"

"시끄러우면 조용히 시켜야 할 거 아이가?"

큰 소리로 호통을 친 담임은

가지고 있던 막대기 끝으로

나의 배를 세게 밀었다.

나는 장기가 터져나가는 아픔을 느꼈다.




반전체 아이들이 보고 있는데서

폭력을 당한 것은 깊은 모멸감과 수치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육체의 아픔보다

마음이 더 아려왔다.

나는 배도 아프고 서글프고 어쩔 줄 몰라

엉엉 울어버렸다.

"영은아, 네 잘못도 아인데 아팠제?"

한 친구의 말에 더 서럽게 울었다.



담임은 국어시간 자기 인생 이야기를 주로 했고

훈민정음을 외우게 하고 못 외우면

각목으로 여학생 다리를 때렸다.

그리고 자주 트집을 잡고

자율학습시간 의자를 들고

책상 위 무릎을 꿇고 앉게 하고

1시간을 넘게 두었다.

팔이 아파 의자가 흔들리면 또 때렸다.




하루는 우리 반 롱다리 민경이가 담임에게 걸려들었다.

옆 남학생이 민경이에게

연애편지를 보내었다.

멍청한 남학생은 지나가다

예쁜 민경이를 보고 반했는데

연락처를 알 수 없으니

묘안을 짜냈다.

학교로 편지를 보냈다.

그 남학생은 명찰을 보고

반번호와 이름을 알아내고,

겉봉투에'1학년 10반 김진경에게'라고 적었다.

안에는 온갖 미사여구로 사귀자고 했다.

그날로 진경이는 날마다 담임에게 불려 갔다.

"가시나가 어데서 꼬리를 쳤노?"

"어짜고 다녔길래 학교로 편지를 다 받노?"

"너거 엄마 불러 오너라."



담임은 민경이를 혼내려고 부른다는 핑계로

민경이 얼굴 한 번 더 보고,

한편 봉투도 챙기려는 꼼수를 부렸다.

민경이는 괴로워서 한숨만 내쉬고

울고 지쳤지만 절대 자기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담임의 괴롭힘의 대상이

민경이로 옮아간 것에 좋아하는 스스로가 미웠다.

나는 학교는 무엇인지,

공부는 무엇인지,

과연 교사는 자격이 어떠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이런 취급을 당하는지

그 누구에게도 말도 못 하고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시험기간이면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자주

화장실을 들락날락했고,

또 변비로 고생을 했다.



게다가 여학생들의 화장실은

한 학년만 500명이 넘는데

한 층 양끝 서너 칸씩이 전부였으니,

담임뿐 아니라 화장실 여건도

폭력적이었다.

그것도 2학년 때 공사하기 전까지

재래식이었다.



내 꿈이 교사가 된 것은 우연도

존경으로 인함도 아니었다.

적어도 그런 인간 같지 않은 교사는 되지 말아서

아이들의 인격을 짓밟지 않아야겠다는

작은 소망에서 시작했다.

딱히 뭘 뒷받침해 줄 집안 환경도 아니니 교사가 가장 나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노래나 무용을 좋아했다.

그런 예술 쪽은 아예 쳐다볼 엄두가 안 났다.



나는 학교 다니기가 너무 싫었다.

그런데도 학교를 그만두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건 내 선택지엔 없었으니까.

도살장으로 향하는 송아지 같은 신세였다.

그 와중에도 2학년만 되면,

고등학교만 졸업해서 대학교에만 가면,

장밋빛 인생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던

나 호영은.

나는 참 순진한 바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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