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생일
내 생일은 음력 3월 4일이다.
내 생일은 추위가 싹 가시지 않은 봄이기도 했고,
조금 더워진 봄이기도 했다. 벚꽃이 만발하기도 했고,
벚꽃이 지면서 꽃비가 내리기도 했다.
벚꽃
그때그때 달라지니까 나 자신도 내 생일이 헷갈렸다.
나는 음력 생일과 양력 생일의 차이도 잘 모른 채 지냈다.
어느 날 달력 큰 숫자 밑 빨간 숫자를 보고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생일날마다 미역국을 먹었다.
미역국 먹는 날에는 누가 생일인가 보다 했다.
"영은이 미역국 많이 묵으라이."
"미역국 와 많이 묵는데?"
"오늘 니 귀빠진 날이니까 안 그러나?"
"귀빠진 날은 또 뭐꼬?"
"니 생일이다 아이가?"
"생일인데 케이크는 와 없노?"
텔레비전에는 드라마에서
생일날이 되면 케이크에 촛불을 꽂아
노래도 불러주고 그러는데 ,
우리 집에서는
그런 문화가 없었다.
나는 그게 불만이었다.
내 마음속에는 생일에 대한
감흥이 거의 없었다.
태어났다는 것이 좋기는 한 건지
케이크도 못 먹고 생일을 보내야 한다면
생일날은 결코 좋은 날이 아니었다.
단지 케이크만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할 때 엄마나 아빠에게서, 언니들에게서
내 존재에 대한 따뜻한 환영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 더 아픈 현실이었다.
나는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더 염세적인 생각이 짙어졌다.
찬란한 봄의 왈츠 속에서 꽃향기가 퍼져 나가듯.
왜 살아야 하는가?
산다는 건 무엇인가?
부모님은 고생을 하는데 어찌하여 가난한가?
왜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자이고,
또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거지일까?
죽는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어른들은 착하고 바르게 살라는데
내 눈에 비친 어른들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술 취한 사람, 가족을 때리는 사람, 아무 데서나 담배 피우고
가래침 뱉는 사람, 길을 묻다 말고 추행이나 하려는 사람 등등.
부모님조차도 별 것 아닌 것으로 시시콜콜 다투니
그럴 거면 왜 결혼을 했나 싶었다.
별일 없이 재미도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는 듯했지만
잊을 수 없는 날이 생겼다.
국민학교 5학년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초여름,
외할머니의 팔순 잔치가 범일동 부산일보 건물 7층 뷔페식당에서 열렸다.
외할머니가 살림을 맡아주던 큰 이모와 큰 이모부가 크게 선심을 썼다.
나는 처음으로 뷔페식당에 가보았다.
평생 처음 보는 각양각색의 고급진 요리들이 펼쳐진
접시들에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커다란 삼단 케이크도 보았다.
어른들은 덕담도 나누고, 노래도 불렀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너무 많이 먹었다. 난생처음 보는 갖가지 요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먹고 먹고 또 먹었다.
배가 너무 불러서 숨도 못 쉴 만큼 먹었다.
친척 또래 아이들과 술래잡기하다가도 집어 먹고,
집에 오기 직전까지 먹었다.
집에 와서는 배가 불러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다음 날, 내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커다란 케이크가 있었다. 우리 가족이 수가 많으니
큰 이모가 따로 챙겨준 것이었다. 삼단 케이크의 맨 아래
커다란 케이크였다.
버터크림이 듬뿍 들어 있는 카스텔라와
겉에 설탕옷으로 코팅한 하얀 케이크를
보고 나는 얼마나 셀러였는지.
게다가 식구 수에 맞춰 칼로 잘라서
국 그릇에 나눠준 케이크 맛은 진짜 맛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생일을 제대로 느끼게 된 것은
아주아주 세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꽃들은 만발하고 햇살은 눈부시고 바람은 솔솔 불고.
문득 나는 자신이 태어난 생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날인지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깨닫게 되었다.
꽃이 지면 허무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열매가 맺혔다.
머잖아 파릇파릇 연둣빛 새순이 금세 자라
초록이 물결치는 나무들이 될 터였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케이크 좀 못 먹었으면 어떻노?
내 생일은 진짜 좋은 날이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