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스승의 날
아름다운 꽃들이 형형색색 뽐을 내더니
어느덧 푸르른 나뭇잎들이 거리의 가로수를 풍성하게 옷 입혔다.
가끔 뿌연 날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은
5월은 역시 계절의 여왕이었다.
고 3이 된 나는 고1, 2 때 부반장을 이어
3학년이 되어서는 선생님의 지명으로 반장이 되었다.
이유는 경험이 있으니
잘 해내리라는 선생님의 생각이었다.
나는 반장이 된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부반장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먼저는 소풍 때도 선생님의 도시락을 싸야 했다.
엄마가 고3 학부모회에도 나가야 했다.
학업만 해도 부담인데, 신경 쓸 것이 많아서 더욱 고3이 힘들었다.
담임은 수시로 입시 정보가 쓰여있는
커다란 게시물을 나에게 맡겼다.
책임감인지 의무감인지 나는
담임선생님이 건네주는 정보물을
부지런히 앞뒤 교실문에
부착하였다.
스카치테이프로 붙이고도
떨어지지 않게 압정으로 고정시키는 작업은
쉬어 보여도 나에게는 큰 수고로움이었다.
쉬는 시간 10분에 해결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낮잠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었다.
4월 소풍 때는 엄마더러
3단 도시락 통에
딸기와, 통닭, 김밥을 싸달라고 해서
어찌어찌 넘어갔다.
선생님들이 모인 돗자리를 보아하니
갖가지 진수성찬이 있어서 내가
도시락을 내어 놓아도 표도 안 났다.
선생님들은 너무 음식이 많아서
도리어 입맛이 없었는지,
통닭을 엄청 많이 남겼다.
나는 알뜰하게도
버리면 아깝다 싶어서
비어있는 도시락통에 남은 통닭을 욱여넣고서,
선생님들의 돗자리를 정리했다.
5월이 시작되자 중간고사를 치르고
성적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특히 수학 때문에 우울해진 나였지만,
본인의 임무를 충실히 하고자 애를 썼다.
쉬는 시간에 부반장인 민정이와 희영이를 불렀다.
"우리 이번에 담임선생님 선물 우짜꼬?"
"돈 모아서 우리가 사러 가자."
"한 2000원씩 모으면 10만 원 된다 아이가?"
그렇게 해서 학급 회의 시간에
반 아이들과 의논을 하여
총무더러 2000원씩을 걷게 했다.
그런데 지난번 화재성금 때도 기껏 500원 때문에 끝까지
안 내려고 실랑이하던 혜선이가 문제였다.
다 냈는데 혜선이만 또 돈이 없단다.
"혜선아, 니만 왜 안 내는데?"
"아씨, 돈도 없는데 왜 자꾸 내라카노?"
"담임쌤 선물 사려고 하는 거다 아이가, 빨리 내라."
"알았다."
1995년 5월 15일이 월요일이라
5월 13일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세 명의 교복 입은 소녀들이 길을 나섰다.
딱히 뭘 사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쇼핑몰과 지하상가가 즐비한 서면으로 버스를 타고 갔다.
선생님 선물은 아랑곳없이 세 소녀는
물건들 보는 재미에 신이 났다.
먼저 태화쇼핑몰에 갔다.
1층 잡화 코너에서 선생님 속옷과 넥타이도 보았다.
밖으로 나가서 길을 건너 아트박스에도 갔다.
도대체 뭘 사야 할지 진짜 판단이 서질 않았다.
"우리 일단 밥부터 사 묵자. 배 고프다."
"그린하우스에 냉쫄면 먹으러 가까?"
"그래, 맛있겠다. "
새콤하고 달콤한 매운 양념과 얼음 조각이
어우러진 냉쫄면은 영은이의 최애음식이었다.
'그린하우스'의 냉비빔쫄면을 먹다 세 소녀들은
하얀 블라우스에 양념을 다 묻혀버렸다.
식사를 배불리 하니 나와 두 친구는
마음도 넉넉하니 좋았다.
하지만 숙제가 남은 느낌이었고,
수많은 인파에 지쳐버렸다. 세 소녀들은
보디가드에 들어가서 일단 선생님의
언더웨어를 샀다. 사이즈도 모르고
뭘 사야 할지도 모르면서 개구쟁이처럼
삼각팬티를 샀다.
평소 수학수업에 그래프를 그리다가도
"너거, 미스코리아 가슴이 그냥 가슴이 아닌 거라.
자 봐라, 이래 딱 균형에 맞게 쌍곡선이 되는 거 아이가?"
수시로 선을 넘는 농담을 하던 선생님에게 좀 맞을 것 같았다.
나는 야한 농담을 하는 담임선생님이 진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리 열심히 들어도
수업 때만 알아들을 뿐
시험문제지만 머리가 하얘지니
선생님 볼 면목이 없기도 했다.
아무튼 남은 돈으로 넥타이와 와이셔츠와 커프스버튼도 샀다.
사실 담임은 수시로 본인의 연애담도 얘기해 주고
워낙 수학실력이 좋아서 좋아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야한 것만 빼면 재미있었고,
옆 남고에서 가르칠 때는 호랑이로 유명했지만
여학생들의 애교에는 스르르 넘어갔다.
나는 어떤 날 거짓말로 담임을 속이기도 했다.
인상을 팍 쓰고 아파 보이는 목소리로,
"선생님, 오늘 몸이 너무 안 좋네요. 집에 일찍 가고 싶어예."
"아이고, 우리 영은이 얼른 가서 쉬어래이."
자주 써먹질 않아서 가능한 나만의 필살기였다.
월요일 당일 0교시 보충수업을 마치고
조례하기 전
칠판 가득 꽃도 그리고
"유승호 선생님, 감사합니다."도 썼다.
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은 다 같이 '스승의 날' 노래도 불렀다.
담임은 기분 좋게 선물을 하나씩 풀고
속옷을 본인의 몸에 대보기도 하여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가리고
한편에선 환호하며 그렇게 스승의 날은
지나갔다.
나는 수능성적이 아주 훌륭하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나와서 사범대 일반사회교육과에 진학했다.
23살 대학교 4학년이 되어 1999년 5월에 광안여고에서
교생실습을 하게 되었다.
유승호 담임과 재회를 하게 되었다.
나중에 듣기로 교생 실습 허락을 신청한 수많은 대학생들 중에서
유승호담임이 담당이라 '호영은' 이름을 보고 뽑아주었던 것이다.
본교 졸업생 중에서도 좀 괜찮았던 학생들 중에 뽑힌 것이 나는 자랑스러웠다.
총 6명밖에 되지 않는 교생 중
모두 같은 학교 재학생인데 딱 한 명 타학교 학생이 있었다. '이보연'은
지리 전공이었다.
그런데 보연이가 유승호 선생님을 짝사랑하다 못해 아주아주 사랑하고 있었다.
여고 시절부터 이어진 찐사랑이었다.
교생 실습을 하던 중
금요일 교사 회식에 교생들도 함께 갔다.
그때 나는 아주 못 볼 꼴들을 제대로 보았다.
술에 취해서 계속 엉덩이를 붙이며 다가오는 체육선생님,
혀가 꼬부라져 대놓고 손을 대려는 국어 선생님 등 도저히 계속 있을 수가 없어서 나는 핑계를 대고 나와버렸다.
몇 안 되는 여교사들도 일찌감치 자리를 떴다.
회식이 금요일이었고,
토요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토요일 아침 보연이가 영 이상했다.
아주 안절부절을 못하였다.
넋이 나간 듯도 하고,
정신이 혼미해 보였다.
그러면서 보연이가 나에게 부탁을 했다.
"영은아, 니 이거 유승호 선생님한테 좀 갖다 주라. 나는 도저히 못 가겠다."
"니 좋아하는 유승호 선생님한테 직접 갖다 주라매."
"안된다. 나는 못 간다."
"니 왜 그러는데?"
그제야 보연이가
전날 회식 이후 있었던 일을 나에게
실토하였다.
회식이 1차, 2차, 3차까지 이어졌고
담임 유승호와 둘만 노래방에 갔다가
담임의 유려한 손놀림과 입놀림에 당하고 만 것이다.
"보연아, 니 내 많이 좋아하제?"
"네? 그렇죠. 쌤."
"그라믄 이리 와바라 어?"
그러면서 순진한 처녀 보연이는
못 볼 꼴을 당하고 만 것이었고,
다음날도 정신을 못 차렸던 것이다.
나는 기가 차고 말도 안 나왔다.
속으로 욕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남은 교생 실습을 생각하면 말없이 지내야 했다.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꽤가 난 영은이는 보연이의 선물을 받아 들고,
옛 담임 유승호에게 갔다.
"선생님, 보연이가 전해달라고 하데예."
"보연이가 와 직접 안 오고?"
"그게, 아가 좀 이상하더라고예.
정신도 없고 많이 아픈 것 같아에."
"아아, 그렇나."
유승호는 양심은 있었던지 살짝 후회되는 모양새였다.
영은이는 살짝 눈을 흘겨주었다.
속으로
'선생 자격도 없는 놈아, 자식 뻘 젊은 아가씨 앞길을 어짤라카노?'
생각은 하면서도 더 할 수 없는 자신의 형편이 아쉬울 뿐이었다.
나는 정치경제 담당 조현식에게
백화점에서 산
차 세트를 선물하였다.
참 '스승의 날'이란 게
있는데 그냥 넘어갈 수도 없고,
교과담당교사와 배정된 반의 교사에게 똑같은 것을 선물하였다.
두 교사 모두 웃음으로 받았다.
종이상자에 '롯데백화점'이라 쓰여 있을 뿐
안에는 작은 티백 세 상자씩 들어있는 초라한 선물이었다.
나중에 나는 스승의 날 시즌만 되면 고3 때와, 대학교 4학년의 그날이
꼭 생각이 났다.
'과연 스승의 날은 무엇인가.
진짜 스승은 어떤 사람인가.
스승이라 부를 사람이 있는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친구 보연이를 보면서 나는 더욱 몸가짐에 조심을 하게 되었다.
언제든 곁을 내보이면 안 되겠다 싶었다.
자고로 남자들은
틈만 나면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말을 언니들로부터,
내가 읽은 수많은 고전소설에서부터
익히 듣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대학교 1학년 때 사귄 남자친구가
영화방에서 한 번만 안아보자고 하는데,
큰소리로 거절을 하는 바람에,
제대로 사귀어보지도 못하고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나는 순진한 척 해도 알 건 다 알았는데,
연애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또 영어 동아리에서 다섯 살이나 많은 복학생 오빠가 대놓고 좋은 티를 내니까
나는 부담스러워서 그날로 그 동아리에 안 나갔다.
나는 연애에 대한 단꿈에 빠져있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아서 아쉬움이 가득했다.
도대체 내 짝은 어디에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캠퍼스 곳곳에서
카페와 식당에서도
수시로 얼굴을 비벼대는
또래 젊은이들을 보며
그렇게 부럽지만은 않았다.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내 사랑은 어디선가 열심히 스스로를 가꾸고 있을 것을 믿었다.
그 믿음은 참 강력했다.
결과적으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