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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her Schipper May 16. 2023

Sun Yitian

쑨 이티옌 개인전 《Portraits》


에스더쉬퍼는 쑨 이티옌(Sun Yitian)의 신작을 공개하는 특별 프레젠테이션, 《Portraits》를 2023년 4월 28일부터 5월 25일까지 에스더쉬퍼 베를린에서 선보입니다. 1991년 중국 저장성 출생인 쑨 이티옌은 중국 중앙미술학원에서 2015년 회화과를 졸업하고 2018년에는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현재 베이징 칭화대학교 인문학과 문학 박사과정을 수료 중입니다. 


Sun Yitian, Portrait, Esther Schipper, Berlin (2023)


쑨 이티옌은 직접 연출하고 촬영한 사진을 기반으로 대량 생산되는 물체를 확대해 그린 그림으로 알려진 작가입니다. 2022년에 참여한 에스더쉬퍼 베를린 단체전, 《Summer ‘22》에서 소총 모양의 플라스틱 장난감 튜브를 그린 대형 회화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이번 프레젠테이션 《Portraits》에서는 플라스틱 장난감 인형 머리를 거대한 규모로 확대해 대형 캔버스에 그린 회화 세 점을 선보입니다. <Kevin>(2023), <Jason>(2023), <Alger>(2023)에 등장하는 성별이 남자인 인형은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무심히 주위의 세상을 공허한 눈빛으로 응시합니다. 


Sun Yitian, Portrait, Esther Schipper, Berlin (2023)


쑨 이티옌은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중 바비와 남자친구 켄 인형에 일종의 연결고리를 느꼈습니다. 켄은 표면적으로 완벽했으나 사실 바비의 파트너라는 정체성만을 지닌 텅 빈 플라스틱 조각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켄과 같은 인형이 대량생산으로 점철되어 깊이를 상실한 현시대의 조악한 실상을 함축한다고 봅니다.  

Sun Yitian, <Kevin>(left), <Jason>(center), <Alger>(right), 2023


이러한 현시대의 실상을 회화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이미지의 비율, 규모와 재료에 대해 고민합니다. 작가는 대학 시절부터 미니멀리즘에 관심이 많았고, 추상적인 접근으로 구상적인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쑨 이티옌은 그리는 대상을 실제로 존재하는 물체로 보지 않고 실루엣과 배경, 다양한 색상 구획 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집중합니다. 작가의 이러한 고민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에서도 나타납니다. 각 작품은 배경의 색상, 인형의 피부와 머리 색상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배경을 인형의 턱 쪽에서 서로 다른 색으로 나누어  평평한 표면이 아닌 깊이감을 더하고 인형 머리에 드리운 그림자에 입체감을 주는 효과를 강조합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인형 머리의 거대한 비율은 보는 사람이 일종의 불편함을 느끼게 합니다. 작가는 평범한 인형의 모습을 거대하게 확대해 비현실적으로 매끈한 헤어라인, 우아하게 구부러진 입술, 완벽하게 배치된 광대뼈 등을 강조하며 낯설게 느껴지도록 합니다. 쑨 이티옌은 이처럼 평범함을 낯설게 만드는 방식으로 대량 생산된 공산품이 함의하고 있는 공허함을 다시 한번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Sun Yitian, Portrait, Esther Schipper, Berlin (2023)


작가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인터뷰에 따르면 아크릴 물감은 플라스틱과 같은 느낌을 지녔기 때문에 인형의 피부를 표현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재료라고 합니다. 쑨 이티옌의 작품은 언뜻 보면 사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붓질의 질감이 드러나 회화적으로 보입니다. 


쑨 이티옌은 회화에 대해 상당히 개방된 태도를 지닌 작가입니다. 단순히 진지해 보이는 그림 또는 엘리트만이 미학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그림을 지양하며, 접근하기 쉽고 귀여운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를 사유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작가는 가볍고 귀여운 대상을 이미지의 비율, 규모, 그리고 재료의 선택을 통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대상에 대한 인식적 선입견을 제거하고 낯설게 만듦으로써 다시 사유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만듭니다.  



글쓴이: 이채원 (Digital Humanities, University of Cologne)

Photos: © Andrea Rosse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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