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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her Schipper Nov 22. 2023

Angela Bulloch

안젤라 블록 개인전《Slapping Pythagoras》


에스더쉬퍼 서울은 안젤라 블록(Angela Bulloch) 개인전 《Slapping Pythagoras》를 2023년 9월 5일부터 10월 28일까지 연다. 작가는 1989년부터 에스더쉬퍼와 함께 협업해 왔으며,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다. 《Slapping Pythagoras》에서는 작가가 오랜 시 간 지속해 온 주요 연작과 더불어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신작도 함께 선보인다. 


안젤라 블록은 다양한 미디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작가로, 시스템과 반복되는 패턴, 법칙, 역사에서 나타나는 도형과 인 간의 상호작용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주로 추상적인 작품을 통해 주변 환경을 구성하고 우리의 행동을 조직하는 ‘구조’를 탐구해 온 작가는 고전 기하학, 수학, 시스템 이론 및 전시회의 가상 계층을 하나로 아우르는 신구간의 기술을 지속 수용하고 결합해 왔다. 《Slapping Pythagoras》는 작가의 선구적인 작품 세계와 함께 지금도 외연을 확장하는 활동과 작품의 제작과 전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현대적 ‘도구’의 사용을 망라하는 전시다. 


Angela Bulloch, Slapping Pythagoras, Esther Schipper, Seoul (2023)


윈도우 공간 전면에 선보이는 〈Pythagoras Theorem〉은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으로 작가가 1993년부터 작업해 온 〈Rules〉 연작에 속한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기원전 570-500년경)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직각 삼각형의 세 변의 길이에 대한 수학 정리에 관한 내용이다. 이 작품의 실체는 물리적 오브제가 아닌 개념이다. 별도로 정의된 형태가 없어 소장자는 작품을 원하는 형태, 매체, 크기로 제작할 수 있고, 이는 작가의 개입 없이 진행할 수 있다. 작품 소장자에게는 작품의 기본 규칙 및 텍스트가 기록된 인쇄물과 작가의 서명이 포함된 보증서가 제공된다. 


〈Rules〉 연작은 작가가 다양한 출처와 맥락에서 수집해 조합한 규칙 집합에 의해 생성된다. 작가가 조합한 규칙은 대체로 특정한 환경이나 단체 또는 조직 내의 행동 규정들을 나열한 것이다. 지금까지 작가가 다룬 규칙 및 행동 규범의 영역은 미술 작품과 미술계, 테크놀로지, 영화, 음악, 시사 및 정치 이슈와 같은 일반 영역부터 번지점프, 웨이트리스, 유행 다이어트, 손수건 색상 코드, 이탈리아 마피아 등 과도하게 구체적이거나 심원한 영역까지 다양하며, 〈Rules〉 연작을 위한 규칙의 집합도 포함한다. 작가는 〈Rules〉 연작 곳곳에 유머를 심어 진지하게만 느껴지는 개념 미술사에 실소를 긋는다.


윈도우 공간 내부에 설치된 〈The Daily Cloud〉는 매일 정오 12시에 짙은 안개를 뿜어내는 연무기를 포함한 수행적 조각 작품이다. 제어된 공간에 설치되어 창문이나 유리 벽을 통해 볼 수 있으며, 안개는 매일 한 번 공간을 가득 채운 뒤 서서히 사라진다. 〈The Daily Cloud〉는 공간 내의 근본적 환경과 시각 조건을 급진적으로 변화시킨다.



Angela Bulloch, Slapping Pythagoras, Esther Schipper, Seoul (2023)


〈Target Slap Happy Bag〉는 대형 빈백(bean bag), 즉 두꺼운 천 자루에 스티로폼 알갱이 충전재가 가득한 가변형 좌석이다. 조각 오브제인 동시에 관객이 위에 앉을 수 있는 설치 작품이다. 작가가 직접 그린 AR 코드가 작품 윗면에 부착되어 있어 “AB_AR”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 스캔해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수 있다. 디지털 애니메이션 작품은 작가의 〈Rules〉 연작 중 하나인 〈Pythagoras Theorem〉의 텍스트를 묘사한다.


Angela Bulloch, Target Slap Happy Bag, 2023,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안젤라 블록은 〈Happy Sacks〉 연작을 1994년 함부르크 미술협회에서 개최한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후에는 전시장에서 좌석이 필요한 곳에 〈Happy Sacks〉 연작을 배치하고 종종 오디오 또는 비디오 작품과 함께 설치했다. 이는 관객과 작품 사이의 상호관계를 강조하고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혁신적인 테크놀러지의 중요성을 드러냈다. 작품 제목은 실험 음악가이자 이론가였던 토니 콘래드(Tony Conrad, 1940-2016)의 에세이, “Slapping Pythagoras”를 참조했다. 동시에 무모할 정도로 태평하고 근심 없음을 나타내는 영국의 표현인 ‘slaphappy’를 연상케한다.



Angela Bulloch, Target Object Slapping Pythagoras, 2023, Mixed media, 19,5 x 24 x 9,5 cm


〈Target Object Slapping Pythagoras〉는 3D 프린터로 제작한 암석 조각이다. 전면에는 작가가 직접 그린 기하학적 모티프를 볼 수 있다. 이미지를 “AB_AR”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 스캔해 디지털 애미네미션을 감상할 수 있다.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볼 수 있는 디지컬 컨텐츠는 작가의 수행적 설치 작품인〈The Daily Cloud〉를 시각화한 것이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에스더쉬퍼 서울의 1층 윈도우 공간에서 매일 정오 12시에 짙은 안개를 내뿜는 실제 작품을 증강 현실의 세계에서 재현한다.〈Target Object Slapping Pythagoras〉는 안젤라 블록이 최근에 시작한 새로운 연작의 일부다.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주제들을 통합하는 하이브리드 테크놀러지를 탐구하는 연작이다.



Angela Bulloch, Dynamic Stereo Drawing Machine, 2020, Mixed media, 170 x 300 cm


〈Dynamic Stereo Drawing Machine〉은 벽 표면에 자동으로 드로잉을 그리는 기계 장치다. 드로잉을 그리는 장치를 고정하고 움직이는 장치 상단에 고정된 수평 레일과 그 위를 타고 좌우로 움직이는 수직 레일로 구성된 작품이다. 수직 레일에는 필기구가 부착되어 벽면에 수평, 수직, 타원형 등의 움직임으로 자유롭게 흔적을 남간다. 작품 우측의 금속 상자에는 기계 조종 장치가 들어있다.


이 작품은 사람이 낙서하듯 타원형 선을 그리는 〈Drawing Machine〉 연작 중 하나다. 다른 〈Drawing Machine〉 작품과 마찬가지로 〈Dynamic Stereo Drawing Machine〉 또한 특정 자극(impulse)에 반응해 움직인다. 기존 작품과 다른 점은 입력 장치가 원형 동작을 실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Dynamic Stereo Drawing Machine〉은 음향 자극에 반응하도록 내부에 일체형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다. 작가가 음악 파일을 선택하여 오디오 재생기에 업로드 및 재생하고, 기호에 따라 다른 음악 파일을 선택하여 재생할 수도 있다. 


Angela Bulloch, Dynamic Stereo Drawing Machine, 2020, Mixed media, 170 x 300 cm, detail view


〈Drawing Machine〉 연작은 안젤라 블록 작품 세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연작의 첫 작품인 〈Blue Horizon〉은 1990년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 전시를 위해 제작했다. 이후 작가는 다양한 입력 메커니즘을 사용해 파란색, 노란색, 세피아, 빨간색 등 다양한 색상을 사용하는 작품 14개를 제작했다. 〈Drawing Machine〉 작품의 장치들은 기계적인 과정으로 드로잉을 그리지만, 그 움직임을 결정하는 요소는 다소 임의적인 면모도 있다. 이러한 점을 통해 작가는 기술과 진정성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아울러 초기 작품은 관객 참여 요소가 더 도드라졌다. 예를 들어, 〈1994 Betaville〉은 작품 앞 벤치에 관객이 앉으면 작동을 시작했다.



Angela Bulloch, Scorpio & Antares, 2022, LED lights, blue felt, aluminum, 68 x 68 x 5 cm


〈Night Sky〉는 검푸른 펠트 패널 위에 프로그래밍 된 LED 조명이 은하계 또는 별자리의 형상에 따라 서서히 깜빡이는 연작이다. 벽면 또는 천장에 설치할 수 있다. 은은하게 빛나는 LED 조명이 서서히 변하는 밤하늘의 별 풍경을 시뮬레이션한다. 작가는 〈Night Sky〉의 화면을 구성할 때 지구에서 관찰할 수 있는 별의 위치를 표시하는 3D 별자리 매핑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작가는 실재하는 천체를 사용하지만, 화면 속 별자리는 익숙한 듯 어쩐지 신비롭고 낯설다. 별을 바라보는 시점을 지구가 아닌 우주 다른 곳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의 변화는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는 아주 다양한 가능성을 환기한다. 작가는 다양한 별무리를 나타내는데, 이 작품에는 전갈자리와 가장 밝은 별인 안타레스를 사용했다.



Angela Bulloch, Slapping Pythagoras, Esther Schipper, Seoul (2023)


〈Abacus〉 연작은 내부에서 빛이 나는 선반 위에 밝은색의 유리 요소들이 그리드 형태로 배치된 작품이다. 네 개의 선반은 수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라이트박스를 연상시킨다. 각 선반 위에는 25개의 유리 요소가 놓여있으며, 그중 23개는 하나의 색상으로, 나머지 2개는 다른 색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유리 요소의 배치 순서는 바뀔 수 있다. 


Angela Bulloch, Abacus Tablet: Bevy, 2023, Mixed media, 8 x 41,5 x 41,5 cm each


이 작품의 모티프는 고대 아날로그 계산 장치인 주판(abacus)이다. 시스템과 반복되는 패턴, 법칙, 역사에서 나타나는 도형과 인간의 상호작용 등 안젤라 블록 작품 세계의 중심 주제 또한 이 작품에 나타나는 모티프다. 작가는 관객이 작품 요소의 구성과 상호작용하도록 유도한다.


Angela Bulloch, Abacus Tablet: Parliament, 2023, Mixed media, 8 x 41.5 x 41.5 cm



Angela Bulloch, Slapping Pythagoras, Esther Schipper, Seoul (2023)
Angela Bulloch, Slapping Pythagoras, Esther Schipper, Seoul (2023)
Angela Bulloch, Slapping Pythagoras, Esther Schipper, Seoul (2023)


전시 3층에 선보이는 조각들은 코리안(Corian)으로 제작된 장사방형 형태의 모듈식 요소들이 수직으로 쌓은 구조다. 기하학적 모듈의 표면은 각 면들이 밖으로 나아가거나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시를 일으켜 추상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안젤라 블록은 조각 연작을 통해 구조의 기하학적 형태, 색상 조합, 그리고 전시 공간에 의해 형성되는 연결점을 탐구한다. 디지털 이미징 프로그램으로 구상 및 설계된 모듈들은 고유한 동시에 서로 연관되어 있다. 


Angela Bulloch, One Bean, One Vote, 2023, Corian, paint, 150 x 46 x 30 cm
Angela Bulloch, Withering Aristocrat, 2023, Corian, paint, 60 x 46 x 30 cm
Angela Bulloch, Avenging Democrat, 2023, Corian, paint, 100 x 76 x 30 cm


보는 이의 시점에 따라 모습이 변화하는 작품을 통해 작가는 조각에 대한 인식을 유희하는 동시에 갤러리 관람객으로서의 경험을 설계한다.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아야 하는데, 이는 작품이 도식적이고 추상적으로 보이게 하며, 이차원과 삼차원 사이를 오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작가는 미니멀리즘의 주요 주제, 특히 물체의 영향이 공간 지각에 미치는 미학적 탐구를 현재로 전이한다.



Pythagoras' Shadow in a Bean Field, 2023, vinyl, dimensions variable


〈Pythagoras’ Shadow in a Bean Field〉는 작가의 조각 작품, 〈Pythagoras in a Bean Field〉의 장사방형 모양을 참조한 벽화 작품이다. 조각의 삼차원적 형태를 이차원 벽으로 옮겨 조각의 해체된 그림자 또는 실루엣을 드러낸다. 조각 〈Pythagoras in a Bean Field〉의 삼차원적 장사방형 모듈을 그래픽화하는 것이다.


Angela Bulloch, Multi Waisted Zero Seoul, 2023, vinyl, dimensions variable
Angela Bulloch, Multi 808 Seoul, 2023, vinyl, dimensions variable
Angela Bulloch, Penrose 800, 2023, aluminum, 70 x 50 cm


〈Multi 808 Seoul〉과 〈Multi Waisted Zero Seoul〉은 영국의 수학자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로부터 영감받은 독특한 정육면체 패턴으로 이루어진 벽화 작품이다. 〈Penrose 800〉은 벽화 작품과 연결된 알루미늄 패널 작품이다. 숫자 8과 0으로 이루어진 패턴 요소의 갯수는 벽 크기에 따라 가변적이다. 작가는 숫자 8과 0의 착시적 특성을 활용해 패턴 내에 실제로는 불가능한 공간을 구성한다.


숫자 8과 0은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작가의 음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드러내기도 하며, 1980년부터 1983년까지 생산된 전설적인 아날로그 드럼 머신인 Roland TR-808을 참조한다. 흔히 ‘808’이라고 불린 이 머신은 사용자가 미리 설정된 패턴을 사용하지 않고 리듬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게 한 최초의 드럼 머신 중 하나였으며, 일렉트로닉, 댄스, 힙합 등 1980년대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벽화 작업은 안젤라 블록 작품 세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작가의 카툰을 기반으로 한 초기 벽화 작업과 〈Rules Series〉의 그래픽성과 연결된 동시에 조각 작품과의 연결성은 작가가 2000년에 〈Pixel Box〉을 평면 벽에 옮기며 시작됐다.


Angela Bulloch, Multi Waisted Zero Seoul, 2023, vinyl, dimensions variable, detail view


Photos: © Andrea Rosse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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