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퇴사를 고려하는 사회초년생 분들을 위하여 - 퇴사를 위한 준비
사직서를 내기 전, 확인해야 할 것들이 꽤나 있었다. 가령 회계연도와 입사일 기준으로 연차가 얼마나 남았는지, 언제 마지막 근무일로 설정해야 하는지, 또한 반납해야 할 물품은 어떤 게 있는지 경영지원팀의 면밀한 검토 과정이 필요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담당 과장님이 빠르고 정확하게 확인을 해주셨다.
덕분에 나는 남은 연차를 고려하여 마지막 근무일을 써내려 갔고, 나는 그렇게 사직서를 결재 요청했다. 오늘은 퇴사를 위해 어떤 것들을 (물품, 마음가짐 등등) 말해보고자 한다.
나는 이 회사가 첫 회사다 보니, 사직서 또한 품의서처럼 프린트해야 하는 줄 알았다. 회사에서는 법적 효력을 갖기 위해 사직서 항목은 모두 자필로 써야 한다더라.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퇴직 사유 쓰는 것 또한 너무 어려웠다. 다음 회사에서 나의 퇴직 사유를 정확히 체크할 것 같아, '연봉 동결 및 개인 사유'로 적었다가 팀장님께 결재 요청받으면서 면담도 동시에 했다.
팀장님은 퇴직 사유가 연봉 동결이었으면 얼마든지 협상 가능하다고, 정말 이 이유가 맞냐고, 예전에 말한 퇴직 사유와는 전혀 다르지 않냐면서 질문 폭격을 하셨다. 나는 단순히 다음 회사에서 자세히 물어볼 것 같았고, 이 사유 그대로 신고가 된다면 이렇게 적어야 하는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그러자 팀장님은 "그래, 네가 퇴사도 처음이지."하고 빵 터지셨다. 나는 정말로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한편으로는 내심 연봉 동결은 부당했음을 이렇게라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가 연봉을 올려준다고 한들 나는 이제 넓은 세상에서 내 이름 석자를 새기고 싶었고, 내 시야를 넓히고 싶었다. 회사에서 내 연봉을 얼마를 올려준다고 해도 나를 붙잡진 못했을 거다.
그렇게 사직서가 수리되고 마지막 근무일은 9월 중순으로 확정됐다. 하지만 큰 난관이 있었다. 말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파일 정리'와 '인수인계서'가 남아 있었다. 파일 정리는 이미 연초마다 작년 분에 대한 파일 정리를 끝냈으니 필요한 파일만 백업하면 그만이었다. 인수인계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지막 근무일로부터 3주 전 주말에 생각을 해봤다.
내가 총괄하던 캠페인을 내 후배가 이어받는다면? 대충 휘갈겨 썼다가는 후배가 울면서 전화할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엑셀 판에 항목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최대한 상세하게, 캠페인을 총괄하려면 이 정도의 프로세스는 익혀야 된다는 의도로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5년 넘게 일했으니 프로세스 항목은 너무나 쉽게 적을 수 있었다.
문제는 상세 내용과 파일 경로였다. 후배가 알아보기 쉽게, 신입이 들어와도 이 가이드를 보고 실행시킬 수 있을 만큼 쉽게 써야 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생각보다 사원들은 마케팅 용어에 익숙지 않다. 업무 용어나 마케팅 전문 용어를 최대한 영어가 아닌 한글로 쓰려고 노력했다. 사실 이 가이드를 보고 내게 전화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인수인계서를 최대한 자세히 적으려고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그렇게 퇴사 3일 전에 인수인계서와 파일 정리를 마무리했다. 이 인수인계서를 토대로 직속 상사에게 1차 보고, 그다음은 인수인계 회의, 그다음은 상부 보고가 남아 있었다. (나는 상부에 어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부 보고를 매우 간략하게 했다. 상부 보고를 하지 않는 회사도 많으니 회바회인 점 참고하자.) 인수인계 내용 대부분은 후배들에게 알려 주었다.
(실제 인수인계 내용 일부를 발췌하였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회사명과 관련된 내용은 모두 비공개 처리하였다.)
내가 담당하는 캠페인이 2개 브랜드였는데, 브랜드별 인수인계 시간이 1시간 30분 이상은 걸렸다. 처음 1개 브랜드 담당자는 주임급이었고, 아주 수월하게 진행됐다. 다행히 주임급은 어느 정도 실무를 알고 있기에, 캠페인 재무 계획(파이낸스)을 쓰는 법, 견적서를 짜는 법 등등 돈과 관련된 문서 위주로 설명해 주었다.
나머지 1개 브랜드 담당은 이제 업무 경력이 1년도 안된 사원이었기에, 2시간 30분 동안 설명해 주었다. 최대한 상세히 알려주는데도 이 toRl는 물음표 살인마를 하더라. 야근 30분을 해가면서 인수인계를 하려니 체력이 딸리고 기가 빨렸다. 사원의 힘이란 대단하다. 직속 상사의 기를 쪽쪽 빨아먹는 그 혈기는 정말 감당이 되질 않는다.
마지막 근무일로부터 1일 전, 나는 내가 총괄하는 브랜드의 광고주들에게 마지막 인사 겸, 다음 진행될 캠페인의 목표와 예산을 파악하기 위해 팀장님과 아끼는 후배, 나, 이렇게 3명이서 판교로 마지막 미팅을 갔다. 그 미팅은 일전에 큰 예산으로 혼자 담당하면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업무 분배만 했었던 캠페인의 담당 팀과의 미팅이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일시적인 담당자(광고주)가 내 이름을 기억해, "주임님, 어디 가세요. 가지 마세요. 저 주임님이랑 일하고 싶은데요."라고 말해주면서 성사된 미팅이었다.
미팅을 가고 보니, 생각보다 스케일이 엄청났다. 그 캠페인은 2개월 집행하는데, 억 단위를 쓰는 대형 캠페인이었다. 이 시기에 퇴사를 하는 게 정말 아쉬웠다. 이건 내가 만든 캠페인이어서 놓칠 수가 없었다. 내부 보고용 문서를 작성하면서 점점 욕심이 커져 갔다. 일전에 팀장님이 말씀하셨던 프리랜서를 이 캠페인으로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굳어져, 팀장님 자리로 당당히 걸어가 "팀장님, 저 이거하고 싶어요. 이거 제 거예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팀장님은 "조금만 기다려봐. 나도 위에 보고를 해야지. 네가 반드시 할 수 있게 해 줄게. 마음 차분히 갖고,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일분일초가 조급했다. 왜냐면 나는 바로 오늘 퇴사해야 하니까. 그래서 곧장 회의록과 캠페인 발의서를 들고 이사님께 어필하기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캠페인이고, 이런 연결성이 있고, 예산은 이 정도인데, 억 단위라 더 줄어들 것 같다. 제 생각엔 이거 주임, 사원급이 맡기엔 너무 큰 캠페인이라 과장, 대리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다행히도 이사님이 그 자리에서 팀장님을 호출해 팀장님의 의견을 듣기 시작했고, 팀장님 또한 이 캠페인은 내가 맡아야 한다고 어필해 주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어느 정도 확정이 되었다. 다만, 프리랜서 계약서 등등은 추후에 작성하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벌써 일할 생각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 예산이면 이것도 해볼 만 한데? 저것도 한번 태워봐? 테스트로 광고도 다 돌려봐?
나는 이 브랜드의 캠페인의 95% 이상을 성공시켰고, 그중 10%는 캠페인 담당 팀의 이례적인 성과를 올려주었다. 정말 자신 있었다.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하지 못할 캠페인이기에 자부심 또한 엄청났다. 이 회사에 나만큼 그 브랜드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개인 노트북을 사기 위해 조바심 나는 마음을 뒤로하고, 10월 중순부터 다시 첫 회사와 일할 준비를 하고 있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