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트라 Oct 12. 2023

첫 회사인데 퇴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3편]

첫 퇴사를 고려하는 사회초년생 분들을 위하여 - 비즈니스 태도


"00 씨, 이제 저는 주임이 아니라 대리입니다. 대리라고 직급 붙여주세요."



이보다 더 명확한 상하관계를 본 적 있는가. 내가 전담 마크하던 핏덩이 후배가 나를 계속 주임이라고 부르기에, 사회생활의 선을 확실히 그어줬다. 그렇다, 나는 퇴사 며칠을 남겨 두고 승진했다. 이게 무슨 소용이냐고?

아니, 사실 대단한 성과이다. 회사에서 뒤늦게 인정해줬다고 해도, 엄청난 성과임은 틀림없다. 나는 첫 회사에서 5년 3개월을 일했고, 사실상 정성적인 지표와 정량적인 지표가 나를 대리급이라고 인정해 주고 있었다. 오늘은 퇴사 준비의 막바지와 함께 승진하게 된 계기를 말해보고자 한다.




모든 지표가 나를 대리라고 말해주고 있는데, 회사에서는 대리 승진을 시켜주지 않으니, 퇴사 이후 이직할 때를 생각하면 골치가 조금 아팠다. 연차나 업력 등등 이미 대리급인데, 면접 자리에서 직급을 주임이라고 하기엔 난감했다. 직급이 주임이라고 하면 내 연봉 테이블의 범위가 좁아질 테니 이 또한 골칫덩이였다. 다행히 퇴사 2주 전, 팀장님과 개인 면담을 통해 나는 대리로 승진되는 걸로 통보받았다. 나는 이 말이 내가 고민했던 부분을 해결해 주기에 기뻤지만, 무엇보다 내가 5년 3개월 동안 피와 땀을 흘려가며 일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팀장님 왈, "이런 방법은 나도 생각지도 못했는데, 대표님과 이사님이 먼저 너를 승진시키겠다고 말씀하시더라. 너를 정말 많이 생각하셔."라고 전해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크게 소리 지르면서 책상을 부수고 싶었지만, 차마 회의실 밖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상사에게 혼났던 순간들, 올해 초에 무기력했던 나날들, 공황장애를 겪었던 순간들, 고객사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와 해결하느라 진땀 뺐던 순간들, 내가 주임이라고 아주 합리적인 갑질을 해대던 광고주들, 광고주에게 이례적인 성과를 안겨주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반드시 대기업에 들어가 마케팅 부서의 부장이 되리라. 부장을 넘어서서 임원진이 되리라. 나를 단순히 대행사 직원으로 대했던 그 광고주들 머리 위에 서리라.  




비즈니스 태도가 매우 신사적이고 시원시원한 광고주들도 많다. 하지만 드라마의 명대사 중 나이스한 rotoRl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 광고주들 또한 너무 많다. 본인과 같은 사람인데 단순히 인하우스 직원 신분이라고 대행사를 부하 직원 대하듯이 부리는 광고주들이 있는데, 미안하지만 그 담당자가 본인보다 머리가 좋을 수도 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단언한다.


5년 넘게 일하면서 뼈저리게 배운 것은 일을 하는 중에도 개인의 가치관이 다 드러나더라. 그 사람의 밑바닥까지 드러나니, 항상 겸손해야 하고 내 일을 덜어주는 모든 동료와 파트너사에게 감사해야 함을 배웠다. 실제로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니, 같이 일하기 힘들었던 파트너사 대리로부터 그동안 많이 챙겨주셔서 고마웠다고, 다음번에도 같이 일하면 좋겠다는 메시지까지 받았다.


혹자는 대리 직급을 퇴사 막바지에 달아서 뭐 하냐고, 대리 경력 며칠 차라고 비아냥 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내가 얼만큼 치열하게 일했는지 알까? 나만큼 치열하고 지독하게, 머리가 빠질 정도로 고민하면서 일을 해봤을까? 그래보지 못했기에 쉽게 말할 것이다. 이렇게 성취해보지 못했기에 시샘을 부리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마음을 곱게 써야 없던 복도 생긴다고 했다. 사람이 본인의 열등감을 말 한마디에 담아내면, 그 밑바닥이 훤히 보이니 우스워지는 건 정말 한 순간이다.




그렇게 나는 대리가 되었다. 존경하는 선배한테 제일 먼저 알리니 정말 진심을 다해 축하해 주더라. 그 선배는 나를 주임으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이다. 선배 왈, "00 대리의 주임 승진은 정말 뜻깊었죠. 아주 통쾌했지."라며 진심을 다해 축하해 주셨다. 대표님과 이사님, 국장님, 그리고 팀장님 또한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다. 이미 올해 승진 대상자였지만, 너무 늦게 승진시켜 줘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시더라.


내가 이렇게까지 일을 열심히 한 원동력은 뭘까. 회사에 대한 애사심? 아니다. 모든 직장인들에게 가장 높은 성취감을 주는 요소는 연봉과 승진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서였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잘, 후회 없이 일하고 싶었다. 훗날 내가 퇴사할 때 후배들이 울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내가 닦아 놓은 길을 후배들이 쉽게 갔으면 해서 치열하게 일했다.




물론, 지금도 배워야 하는 점들은 너무나도 많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대기업에 들어가면 더 어려운 난관들과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이제 생리를 깨달았지만, 이 구조를 활용해 정수를 둘 줄 알아야 한다. 이제 내 경험으로 자신감을 갖고, 더 큰 세계를 위해 모험할 차례다. 마케팅계에 내 이름 석자를 새기리라. 나를 도와줄 동료들을 리드하고, 그 동료들이 나를 100%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방향성이 명확한 선장이 되리라. 이렇게 대리라는 직급은 나에게 깊고 큰 의미이자,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불편한 말이지만 아직도 여자들에게 유리 천장이 있다. 대기업에서 여자가 임원진이 된다는 건 남자의 노력보다 10배 이상 노력했다는 뜻이다. 성차별로 임금 차별도 있다고 기사가 말해주지 않던가. 그것도 사실이더라. 하지만 진정으로 유리 천장을 깨부수려면, 그 천장을 단숨에 깨버릴 만큼의 초격차가 필요하다.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되어야 한다. 흔히 작은 회사는 man power(노동력이지만, 사람의 역량을 의미함)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사실 대기업에서도 통하는 말이다. 사람 위에 자본은 없다. 자본 위에 사람이 있기에, 리더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하여 나는 가장 나답고, 자신 있게 퇴사를 했다. 동료들에게 당당히 이렇게 말했다.


어제는 00 주임들과 00 씨까지 마지막 단도리를 잘했고요.
제가 키운 후배들이기 때문에
제가 담당했던 캠페인을 잘 진행해 주리라 믿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본인들이 못하시면 제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입니다.
잘해주리라 믿고, 안심하고 떠납니다.
그동안 감사했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저는 다른 곳에서 날개를 달고, 제 이름으로 역사를 써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매거진의 이전글 첫 회사인데 퇴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