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연간 회고록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공황장애를 앓으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해서 옆집의 신고를 받아, 지구대에 간 적도 있고요. 올해는 유난히 제 인생에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변곡점이라면 변곡점이겠지만, 아직 그렇게 부를 정도로 모든 것이 해결되고 평화로워지진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저의 2023년 연말 회고록을 남기고자 합니다.
저는 올해 가장 많이 깨달은 것이 역시 상위의 고통은 명치를 아프게 한다는 것입니다. 공황장애도 그렇고요. 저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도 그렇고요. 제 영혼이 한없이 늪에 가라앉는 것을 느낄 때도 그렇습니다. 단순히 슬픈 감정이 아니라, 한 단계를 더 넘어, 비탄(悲歎)하게 만들더군요.
그럼에도 의미는 있었습니다. 제 어린 자아가 두 살 더 먹기도 하고, 저를 조금 더 현명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자살 시도하면서 든 생각은 '미치도록 살고 싶다.'라는 겁니다. 저는 누구보다 살고 싶어 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게 살고 싶은 건 생존의 의미와 잘 살고 싶다는 삶의 의미도 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잘 살고 싶습니다.
퇴사하고 나서, 제 개인적인 미뤄뒀던 버킷리스트를 많이 이뤘습니다. 해외여행을 못 가봤던 저는 여권을 처음 만들어보기도 했고요. 제 커리어를 위해 자격증을 따려고 부트캠프에 다니고 있습니다. 엄마와 스티커 사진도 찍었고요. 꽤나 이룬 것이 많습니다.
'잘 산다는 건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라고 연세대 뇌과학자 교수가 말하더군요. 마음 근육이란, 모든 꼬리표를 떼고 온전한 제 자신을 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가령 사람들에게 불리는 제 이름과 학력, 직업, 병력, 그 외의 사람들로부터 받은 모든 편견을 떼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럼 제 자아만 남겠지요.
앞서 말한 과정들은 '자기 객관화'와 '자기반성'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자기 객관화'를 심도 있게 들어간 것 같더군요. 그 교수는 명상을 통해 만날 수 있다고 하지만, 저는 이미 만난 것 같습니다. 저기 어느 구석에서 한 없이 웅크리고 떨고 있는 어린아이인 저를요. 엄마가 사다준 피카츄와 잠만보 인형을 들고, 내복 차림으로 웅크려 누워 있는 제 자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진정한 제 자신을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거기서부터 마음에도 근육을 키울 수 있지요. 마음 근육이란 그런 것이라고 그 교수도 말하더군요. 명상을 함으로써, 어린 제 자아와 대화함으로써 근육을 키울 수 있고요. 강도 높은 신체적인 운동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운동까지 필요한지 몰랐는데, 미뤄뒀던 킥복싱을 등록해야겠네요.
저는 아직 우매하고 어리석습니다. 자기 비하가 아니라, 아직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앞으로도 어리석을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 근육을 키워서 조금 더 단단해져, 덜 어리석어질 예정입니다. 신앙도 다시 단단히 붙들고 있을 예정입니다. 저만의 명상법이니까요. 천주 성부의 아들인 예수님은 어쩌면 그 어리고, 웅크리고 있는 작은 아이인 저를 보고 긍휼히 여긴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유난히 올해는 귀신들을 많이 느꼈습니다. 마음이 약해지니 사사로운 것들이 저를 소름 끼치게 하네요. 하지만 두렵지는 않습니다. 그깟 귀신들은 쌍욕을 해주면 겁을 먹거든요. 꿈에서는 때릴 수도 있습니다. (제 경험담입니다.)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의 마음이더군요.
돌아서면 찰나처럼 변해버리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무서워졌습니다. 저는 항상 제 마음과 행동과 말에 일관성을 두려고 하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잘 믿는 제가, 탐색하는 과정이 더 길어지게 됐습니다. 어느 순간, 제가 '저 인간이 내 신뢰를 받을만한 인간인가?'라는 관점으로 예리하게 관찰하고 있더군요.
그럼에도 제 마음 한 켠에 어리고, 순진한 제가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고통스러워 몸부림 치는 걸 지켜본 친구들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 순진함을 보고 남아있는 것 같네요. 아직도 그 나이 먹고 순진하면 X신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순진하다'라는 말에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하다.'입니다. 저는 어수룩하진 않습니다. 두 번째는 '마음이 꾸밈이 없고 순박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 저는 마음에 꾸밈이 없고 솔직합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첫 번째 의미만 알고 계시더군요. 두 번째 의미는 이 각박한 세상에서 저런 마음을 가지면, 호구 취급을 당하니 자꾸만 망각해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솔직하고 순박하고 싶습니다. 순수한 것과는 의미가 조금 다르지요. 순수하다는 건 사사로운 욕심이과 못된 생각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사사로운 욕심이 엄청 넘치고요. 못된 생각도 많이 합니다. 잔꾀를 그렇게 부려요. 그리고 돈 욕심도 넘칩니다. 그렇다고 목돈을 모으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죠.
전 어쩌면 사치스러운 걸 수도 있습니다. 명품에는 관심이 없지만, 스트레스를 풀 때 먹거나, 무언가에 꽂혀서 사거든요. 요새는 살이 빠져서 옷 사는 데에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안 입던 옷들을 두 번 정도 정리하고, 입을 것이 없기도 했고, 살이 15kg이나 빠져 옷 입는 재미가 들렸습니다.
이렇듯이 올해는 다시금 저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나 고단했지만, 성당을 다니고, 다시 돌고 돌아 인연을 다시 만나니, 조금은 안정된 것 같아요. 정신과는 여전히 다녀야 하고요. 정신과를 다니면서 저를 좀 더 탐구해 볼 예정입니다. 제게 정신과를 다닌다는 건, 저를 알아가는 과정이라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여전히 저는 어리석고, 저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겁 많은 아이가 대담하게 나아가고 있는 게 대견합니다. 정말 잘하고 있고요. 삶을 좀 더 잘 살아내려고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조금 깨달은 것치곤, 그 값이 너무나 비싸지만 그럼에도 값지게 살아가려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늘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제게도 마음 근육이 단단해져 안정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