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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에피소드 12. 그래요... 여긴 그런 곳이예요.

by 더곰


시간이 흘러 어느덧 손님들이 간간히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책 한 권밖에 없어서 허탈해 하며 나가는 손님이 있는 반면, 진열된 단 한 권의 책을 꼼꼼히 체크 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 권의 책에 집중하는 손님들의 모습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 이것이였다.

심사 숙고하면서 책을 바라보며 흥미가 생기게 되면 쉽게 책을 내려놓을 수 없다.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심사숙고만 할 뿐, 커피 한 잔을 시킨 채 자신만의 열일 모드로 들어가는 이들이 태반이다.

그들에게 이곳은 책방이 아니라 커피숍인 것이다. (사뭇 아쉽군. 그래도 판매해주니 고마울 따름)

그래도 파이팅 넘치는 카공족을 아직까지는 만나지 않아서 늘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 처음 보는 분이시네.’


동네 장사다보니 이제 얼추 커피 마시러 오는 분들의 얼굴을 대충 익혔다.

그런데, 처음 보는 여자 한 분이 들어온 것이다.

그녀는 주문을 하기도 전에 자리를 잡고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셋팅을 하기 시작했다.

노트북 전선을 꽂고, 테블릿PC 전선을 꽂고, 심지어 핸드폰 충전까지. 완벽하게 셋팅한다.


‘갓벽하네~ 뉴스에서만 보던 분이 여기에 강림했네.’


그동안 너무 무탈했지.

진상 고객 없는 평안한 삶에 긴장을 놓치말라고 이런 시련이 나에게 왔구나.


“저기요!”

“네”

“물티슈 있나요?”

“없는데요.”

“왜 없어요?”

“있을 필요가 없어서요…?”

“아니… 여기 테이블 한 번 닦아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닦아 드릴게요.”


손걸레를 들고 가서 테이블을 닦으려는데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이거 소독하신 건가요? 손걸레로 닦으면 냄새 나던데..?”

“소독해서 사용하죠~ 나름 음료 파는 책방인데요. 음.. 그럼 한 번 닦아보고 냄새 확인해볼까요? 아까까지만 해도 냄새는 안 나기는 했거든요.”


나는 손걸레로 테이블을 닦았고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아니… 어떻게 물티슈가 없어…”


여자는 다들리게끔 궁시렁 거린 후 그제야 주문을 할 자세를 취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네. 알겠습니다. 손 소독 원하시면 저쪽에 손소독제도 있어요.”


여자는 내 말에 집중하지 않고 바로 자리로 이동해서 작업에 몰두했다.

표정이 엄청 진지한 게 어려운 일을 하는 분 같았다. 그래서 이토록 예민한 걸지도.

근데 테블릿 PC는 쓰지도 않는데 왜 여기서 충전을…


“음료 나왔습니다.”


여자는 커피를 받으면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빨대 없어요?”

“아. 빨대요.”


나는 다회용 빨대인 스테인레스 빨대를 건넸다.

그런데 여자는 받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이건 좀 찝찝한데… 그냥 빨대 없어요?”

“네. 그건 저희가 취급하지 않아서요.”

“여긴 뭐 다 안되는 거 천지네요. 이래서 장사 되겠어요?”

“그니까요. 그래도 저만의 작은 소신이라서요.”

“별 개 다 소신이네요.”

“혹시 바쁘세요?”

“네…?”

“아. 만약 하는 일 다 하고 여유가 생긴다면 책장에 놓인 책 한 번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부담 없이 읽어보세요.”


여자는 내 손가락 끝을 따라 책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오늘의 <독점>이 놓여있었다.







IMG_6737.jpg?type=w580 by. THE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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