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3-1. 두껍다고 포기하기엔 술술 읽히는 책
"하필, 이 책은 제법 많이 두껍습니다. 백과사전처럼 말이죠."
이번 주 <독점> 서적은 <365일, 최재천의 오늘>이다.
이 책을 선정하게 된 것은 알고리즘에 걸려버렸기 때문이다.
한 인문학 강연을 들으러 갔다. 강연자는 김경일이었다.
그는 강연을 하면서 '최재천'이라는 이름을 언급했다.
그는 대체 누구일까?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렇게 그가 쓴 책을 읽어보자 다짐했다.
생각보다 책을 제법 많이 쓴 분이셨다. (뒤늦게 알게 된 점 머쓱)
수 많은 책들 중에서 제일 먼저 손이 갔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365일, 최재천의 오늘>
그런데... 아뿔사.
"네? 저 지금 엿 먹이시려는 거죠?"
백수 아드님께서 제법 썽이 난 듯 말했다.
"그러니까요. 왜 하필 이번 주에 오신 거예요. 몇 주 전에 오셨다면 제법 가벼운 책을 손에 쥐실 수 있었는데요."
"아이고~ 딱 좋네! 이걸로 주소!"
"싫어!!! 이 책 내용이 뭔 줄 알고 대뜸 읽으래."
"그럼, 제가 실례가 안된다면 책을 설명해드려도 될까요?"
너무나 두꺼워서 자칫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거부감을 감소시켜주기 위한 노력일까. 깔끔한 노란색 표지가 인상적이다.
게다가, 페이지를 보고 놀라지 말라는 듯 이 책에는 페이지가 표기되어 있지 않다.
그저 읽어 나갈 뿐이다.
일러두기
- 저자의 고유한 말맛을 살리기 위해 국립국어원의 규정을 따르지 않은 경우도 있다.
- 해당 날에 슨 글이 아닌 경우 실제 쓴 날짜를 적어 두었다.
- 책의 특성상 차례와 쪽수를 따로 적지 않았다. 대신 왼쪽 색인을 월마다 다르게 배치해 두었다.
<365일 최재천의 오늘>
이 책은 최재천 작가의 루틴한 일상의 글 모음이다.
13년 간 [조선일보]에서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를 연재했다.
무려 4,745개의 글이 신문에서 연재된 것이다. 그것들을 모두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면.... 지금의 책보다 더 두꺼워지겠지... 그렇기에 13년 간의 기록 중 365일에 맞춰 365개의 글을 엄선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일러두기에서 말했듯이, 페이지는 없지만 몇 월 며칠이라는 게 명시되어 있다.
"사실, 저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자가 심리학자인 줄 알았어요. 그의 다른 책들을 보면 <최재천의 공부>, <최재천의 희망 수업>, <양심>, <공감의 시대> 등등을 보면 왠지 그런 편견이 생기잖아요. 근데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에요. 그리고 흰개미 연구의 1인자이기도 하십니다."
"어머어머! 그럼 이 책을 보면 배우는 것도 많겠네~ 이거 주세요!"
"아 쫌!"
"맞아요!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13년간의 글들 중에서 엄선한 글들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해 그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어 재미있었어요. 아! 내가 잊고 있었던 그 날의 일들이 있었지!하고요."
책은 읽다가 지칠까 우려됐는지 중간 중간 쉼의 공간을 마련해 두었다.
최재전 작가의 사진과 그의 메모들이 그것이다.
사진만 봐도 그의 품격이 보인다. 특히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아이의 눈 높이에 맞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게다가, 글씨체도 참으로 정갈하고 예쁘다.
이런 사진과 메모를 보면서 글을 읽어나가면 그의 생각에 더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이 손님에게 딱인 이유가 있어요! 365일의 글들을 담은 책이잖아요. 긴 호흡으로 읽어보세요. 날짜에 맞춰서 읽는다! 이 마음으로 읽으면 읽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고, 하루에 목표를 달생했다는 만족감도 생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맞네! 맞어!!! 어머~ 말씀 참 잘하신다~ 결혼은 했고?"
"네....?"
"쫌!"
"그리고 이런 책이 진짜 유용한 게 뭔지 아세요? 아는 척을 심하게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흰개미가 바퀴벌레 과인 거 아세요?"
"뭐요?"
"이 책을 읽으면, 왜 그러한지 알게 되요~! 이런 거 술자리에서 지식 뿜뿜할 때 써먹기 딱 좋은 허세 아닙니까~~~"
"...."
항상 이런 책을 읽으면 저자가 경이롭게 보인다.
생태학자이자 동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삶에 통찰력까지 있어 세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혜안을 지녔다.
게다가 지식이 자신이 전공한 분야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방면으로 뻗어져 있다는 것이다.
진짜 신기하다. 어쩜 이 많은 지식들을 뇌에 저장하고, 글로 쏟아내는지.!! 그저 존경스러울따름이다.
"읽을겨?"
아주머니는 그제야 아들에게 책을 살지 말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손님에게 낮게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이 책 에피소드 중에 '나체팅'이 있어요~"
"...!"
백수 아들은 흠칫 놀라더니, 한 마디하고는 엄마를 뒤로하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사주든가!"
"저눔의 시키! 그래도, 이 책 읽기는 하겠네~ 저 놈이 저런 행동을 보인다는 건 호기심이 생겼다는 거거든요~ 아이고, 우리 주인 아가씨가 책을 잘 파네. 한 권 줘 봐요."
"네!"
그렇게 아주머니는 책을 계산하고는 아들 뒤를 따랐다.
사실, 나체팅은... 야한 내용이 아니다.
1960-70년대 봄이 되면 야밤에 꽃놀이로 창경궁에 청장년들이 많이 갔다고 한다.
나이트 + 체리 블라썸 + 미팅의 준말이 바로 '나체팅'이란다.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