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정아
38. (나와 정아 / 끝)
나와 정아는, 눈사람에게 코를 달아주었던, 같은 해 크리스마스에 헤어졌다. 그것도 극장에서 영화를 함께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우리가 탈 버스 시간을 보고 있었다. 정아는 화장실에 갔다 온다고, 나보고 먼저 밖에 나가있으라고 했다. 건물에서 나온 정아가, 뒤에서 나를 안더니, 내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고, 나는 정색을 하며, 정아를 밀쳤다.
-뭐 하는 거야?
-아니… 날씨가 너무 추워서…
-날씨가 추워서?
-아니야, 네가 추워 보여서…
내 호흡이 떨리고 있는 만큼, 정아의 눈 역시도 심하게 흔들렸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뭐 때문에 그러는데.
-그냥 싫다고, 좀.
정아는 해야 할 말을 잃어버린 듯, 가만히 얼어붙어있었다. 정아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너, 나 싫어해?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냥 그만하자.
- …왜?
정아를 납득시킬만한 마땅한 이유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 고등학교 올라가면, 따로 등하교 해야 되잖아.
-그게 왜.
-요즘에 계속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나는 너랑 같이 등하교 할 때 했던 이야기들이 좋았던 거지, 네가 좋았던 게 아니었던 거 같아. 그래서 손잡는 것도 피했던 거고, 네가 껴안으려는 것도 피했던 거야. 어, 맞아. 다른 건 다 버텨도, 그건 도무지 못 버티겠더라.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정아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슬픈 눈으로 날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 이 눈빛. 어디서 봤던 눈빛이었더라. 녹아 없어질 눈사람에, 뭐 하러 이름을 지어주냐고 물었던 때였었나. 어딘가 그때랑은 다른데.
-쓰레기 새끼…
이번엔 내가 정아를 그렇게 바라봤다.
-뭐라는 거야… 짜증나게.
버스가 도착했다. 정아도 분명 이 버스를 탔어야 했는데, 나 혼자만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는, 내리던 눈만큼이나 펑펑 울었다. 앞으로 다시는 정아를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울었는지, 엄마가 그립다는 마음에 그랬는지, 헷갈렸다.
추웠던 날씨 탓에,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모르는 반지가 만져졌다. 아, 아까 정아가 넣어 놓았나. 주머니에 있던 반지를 빼서, 집 앞 화단에 쌓여있는 눈 사이로, 반지를 파묻었다. 내년에 봄이 올 때면, 반지도 눈과 함께 녹아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랬다.
물론 내가 바라는 것처럼, 반지는 겨우내 녹아 없어지지 않을 거야, 정아야. 하지만 묻어둔 반지는, 내년 봄에 그 자리에서 찾을 순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