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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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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Jul 04.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하연

45.

할매의 소식을 들었던 건,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반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담임선생님은 급하게 나를 교무실로 불렀고, 선생님이 날 교무실로 부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교무실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에는, 왜인지 식은땀이 무척이나 났다. 학교에서 나와서는, 곧장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고, 병원에 도착했을 땐, 사람들이 할매의 침대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할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할매와 눈이 마주 닿았을 땐, 할매가 평소처럼 나를 보고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마음이 편안했다. 나도 할매와 같은 템포로 눈을 깜빡였다. 내가 할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내가 많이 사랑해, 고마웠어. 나는 걱정하지 마.”였는데, 할매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이번만큼은 할매가 보내는 깜빡임보다도, 할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할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댔지만 내가 바랐던 의도와는 달리, 울음은 좀처럼 쉽게 참아지지 않았다.

일정한 템포로 눈을 깜빡이고 있던, 할매의 깜빡임이 조금씩 헝클어지져 가고 있었다. 템포가 실에 진득한 꿀이 묻은 것처럼 종잡을 수 없이 엉겨가다, 이제는 도무지 풀어갈 수없겠다 싶을 정도로 엉겼을 때, 할매는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다. 할매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훌쩍거리다. 소나기처럼 울어댔고, 나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아직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내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내 어깨를 어루만지며 괜찮다고 하셨지만. 나는 어떤 게 괜찮은지, 어떤 게 괜찮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할매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의 울음이 멎어갈 때가 되어서야,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순간까지도 멍했던 아버지의 표정이 역했던 건지, 눈앞에 있는 현실이 이 순간까지도 믿기지 않았던 건지.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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