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하연
46.
-동제야, 동제야!
할매는 나를 동제라고 불렀다. 지나가는 이야기에 의하면, 내가 엄마의 배를 막 차기 시작할 때즈음에, 할매가 지은 이름이란다. 아, 물론 내 이름은 동제가 아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만약에 내 이름이 동제였다면, 나는 학교 다닐 때, 이름표를 떼고 다녔을 거야.
어느 날은 비가 왔고, 나는 할매랑 군밤을 까먹으며 여느 때와 같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할매, 왜 하필 동제야? 무슨 이름을 그렇게 촌스럽게 지었대.
-동제가 뭐 어때서, 멋들어지기만 하는구먼.
-무슨 뜻인데?
할매는 시선을 티비에 고정하고 내 물음에 답했다.
-구리로 만들었다는 뜻이지.
-아, 동제가 그런 뜻이야? 철제할 때 그런?
-그럼.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응수했고,
-구려.
-구리긴, 이놈아. 뜻이 얼마나 좋은 뜻인데.
뾰루퉁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지.
-무슨 뜻인데.
-다른 금속들처럼 힘 꽉 주고 살다가 부러지지 말고, 찌그러지고, 구부러지기도 하면서 유연하게 살라는 뜻이지.
-차라리 은제나, 금제로 짓지 그랬어. 동은 3등이잖아.
-동이 왜 3등이여, 너네 할매는, 금이랑 은보다 동을 훨씬 더 사랑혀.
-그럼 나중에 할매 반지는, 금반지 말고, 동반지로 맞춰 줄 거여.
-할매는 동도 좋아하는데, 금도 좋아혀.
꿉꿉했던 분위기, 군밤은 참 달콤했고, 티비에서는 지금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안정적, 안정적이었다. 이런 대화를 하던, 어린 시절 나는, 어쩌면 엄마가 평생 바빠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할매가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른 건, 병원에서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었지. 그다지 슬프지는 않았다. 주변에서도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다들 호상이라고 했으니까. 다만 진료카드에서 처음 본 할매 이름이, 눈에 계속해서 밟혔다.
-이옥춘-
아, 할매한테도 이름이 있었구나. 나한테 할매는, 그냥 할매였는데. 할매도 어느 시절에는 이름으로 불렸던 때가 있었겠구나. 아, 이름이 있었구나. 참 촌스러운 이름이다. 그래도 알았다면, 느끼한 표정을 지으면서, 옥춘 여사님 오늘은 스테이크를 드시러 가실까요? 제가 사죠. 했을 거야.
할매, 할매 이름도 동제만큼이나 참 촌스러운 이름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