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순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일 Jul 07.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하연

49.

일주일 만에 간 학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친구들이 건네는 커다란 위로의 말들 때문에 그랬는데, 정작 나는 그만큼의 크기로 슬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쫓기듯 아침 방송을 하러 방송실에 도착했고. 방송실에는 송하연이 먼저 와서, 방송 송출실 앞에 앉아 있었다.

송하연은 아나운서였고, 나는 아나운서가 읽을 대본을 쓰는 작가였다. 우린 같이 아침방송을 진행했다.

  -안녕, 오랜만이네.

  -어, 안녕.

하연이 대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아, 맞다. 대본에 몇 개 추가해야 될 거 있는데. 불러줄까? 불편하면, 메모장에 써서 주고.

  -써서 줘.

  -잠시만.

메모장을 건네받은, 하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메모장을 천천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좀 악필이지, 미안.

  -응, 좀 그런 편이네.

  -처음 시작할 때, '안녕하세요, 방송부 아나운서, 송하연입니다' 앞에, '완연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하고 뒤에 멘트 읽어주면 돼. 그리고 중간고사 날짜 바뀐 건 알 거니까··· 그거는 바뀐 날짜로 읽어주면 되고, 중간 부분 한 번 봐 볼래? 이거는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데, 사자성어 소개하는 부분 할래, 뺄래? 나는 빼는 게 좀 더 매끄러울 거 같다는 생각은 들던데.

  -넣는 게 더 낫겠어.

  -오케이. 그건 넣는 걸로 하고. 이제 마지막 인사 부분만 바꾸면 돼. '피어나는 벚꽃보다, 만개할 여러분들이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시간이 얼마 없었던 이유로, 내가 하는 말이 빨라짐에 따라, 펜을 쥔, 하연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동시에 하연의 교복 소매가 조금씩 올라갔다. 맥락 없이 하연의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하얗고, 얇상한 게, 되게 예쁘게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순애(殉愛/純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