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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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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Jul 17.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하연

55.

동복을 입기엔 슬슬  후덥지근 해진 날씨에서, 방송부 친구들은 나와 하연의 사이에 대해서 넌지시 물어오기 시작했다.

  -너 얼음이랑 싸웠냐?

  -아니? 전혀? 왜?

  -아니 그냥··· 서로 말도 잘 안 하고 하는 거 같아서.

  -원래 하연이가 말이 좀 없잖아.

  -그치? 얼음이가 사람은 좋아도, 먼저 막 나서서, 말을 거는 타입이 아니긴 하지?

  -맞지, 맞지.

  -아, 조금 있으면 하연이 생일이래.

  -걔 생일 여름이었나··· 의외네. 언젠데?

  -다다음 주였나? 뭐 준비 안 해도 되나.

  -나중에 얘기해 보지 뭐.

  -사이좋게 지내. 사이좋게. 싸우지 말고

  -걔랑 나랑 사이좋아. 아침 방송 인기 엄청 좋잖아.

  -그래서, 너네 둘은 더 싸우면 안 되는 거야. 방송부 얼굴이니까.

  -아이고 부담스러워라. 언제부터 우리 둘이 얼굴씩이나 됐대. 엄밀히 말하면 얼굴은, 하연이 혼자지. 다른 사람들은 내 존재도 모를걸?

  -아니던데. 은근히 너네 사귀는 사인 줄 아는 사람들도 꽤 있던데.

  -엥? 걔랑 나랑 뭘 했다고 사겨?

  -혐오?

  -나 걔 혐오해?

  -너는 몰라도, 걔는 할 수도 있지.

  -근데, 나랑 걔랑은 왜 사겨?

  -혐관이라는 말 몰라?

  -혐관? 뭐야 그게.

  -혐오 관계. 근데 이제 혐오 관곈데··· 이게 어쩔 수 없이 지속적으로 엮이면서 혐오 관계 속에서 서로가 좋아지는···

  -으 징그러워. 나는 그런 병든 관계 별로 안 좋아해.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고, 싫어하면 싫어하는 거지, 혐관은 또 뭐야.

  -너는 뭐가 그렇게 좋아서 방실방실 웃어.

  -아니 그냥~ 근데 생각해 보니까, 정말 전형적인 혐관 클리쉐긴 하네.

  -그건 서로 혐오해야 성립하는 관계 아니야? 이쪽은 일방적 혐오 같은데.

  -아니지, 아니지. 진짜 맛있는 건, 한쪽은 끊임없이

혐오하고, 한쪽은 끊임없이 엉겨 붙다가 혐오하던 쪽 마음이 천천히 열리고 마음이 열릴 때 즈음에 이제 엉겨 붙던 쪽 마음이 조금 떠버린 거야 그제서야 혐오하던 쪽에서 다급해진 거지···

  -너 좀 음침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네가 날 봐주지 않으니까.

  - ···

  -준우야, 넌 지금 만나는 여자친구랑 꼭 결혼까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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