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하연
55.
동복을 입기엔 슬슬 후덥지근 해진 날씨에서, 방송부 친구들은 나와 하연의 사이에 대해서 넌지시 물어오기 시작했다.
-너 얼음이랑 싸웠냐?
-아니? 전혀? 왜?
-아니 그냥··· 서로 말도 잘 안 하고 하는 거 같아서.
-원래 하연이가 말이 좀 없잖아.
-그치? 얼음이가 사람은 좋아도, 먼저 막 나서서, 말을 거는 타입이 아니긴 하지?
-맞지, 맞지.
-아, 조금 있으면 하연이 생일이래.
-걔 생일 여름이었나··· 의외네. 언젠데?
-다다음 주였나? 뭐 준비 안 해도 되나.
-나중에 얘기해 보지 뭐.
-사이좋게 지내. 사이좋게. 싸우지 말고
-걔랑 나랑 사이좋아. 아침 방송 인기 엄청 좋잖아.
-그래서, 너네 둘은 더 싸우면 안 되는 거야. 방송부 얼굴이니까.
-아이고 부담스러워라. 언제부터 우리 둘이 얼굴씩이나 됐대. 엄밀히 말하면 얼굴은, 하연이 혼자지. 다른 사람들은 내 존재도 모를걸?
-아니던데. 은근히 너네 사귀는 사인 줄 아는 사람들도 꽤 있던데.
-엥? 걔랑 나랑 뭘 했다고 사겨?
-혐오?
-나 걔 혐오해?
-너는 몰라도, 걔는 할 수도 있지.
-근데, 나랑 걔랑은 왜 사겨?
-혐관이라는 말 몰라?
-혐관? 뭐야 그게.
-혐오 관계. 근데 이제 혐오 관곈데··· 이게 어쩔 수 없이 지속적으로 엮이면서 혐오 관계 속에서 서로가 좋아지는···
-으 징그러워. 나는 그런 병든 관계 별로 안 좋아해.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고, 싫어하면 싫어하는 거지, 혐관은 또 뭐야.
-너는 뭐가 그렇게 좋아서 방실방실 웃어.
-아니 그냥~ 근데 생각해 보니까, 정말 전형적인 혐관 클리쉐긴 하네.
-그건 서로 혐오해야 성립하는 관계 아니야? 이쪽은 일방적 혐오 같은데.
-아니지, 아니지. 진짜 맛있는 건, 한쪽은 끊임없이
혐오하고, 한쪽은 끊임없이 엉겨 붙다가 혐오하던 쪽 마음이 천천히 열리고 마음이 열릴 때 즈음에 이제 엉겨 붙던 쪽 마음이 조금 떠버린 거야 그제서야 혐오하던 쪽에서 다급해진 거지···
-너 좀 음침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네가 날 봐주지 않으니까.
- ···
-준우야, 넌 지금 만나는 여자친구랑 꼭 결혼까지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