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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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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Jul 18.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하연

56.

하연의 생일 축하는 점심을 먹고 난 뒤, 갑작스럽게 기계가 망가진 비상상황이라는 빌미로 방송실에 불러낸 후 진행을 할 예정이었다. 진부한 스토리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토를 달 마음은 없었다.

  -야야, 얼음이한테 말 한 사람 없지?

  -준우, 케이크 준비했지?

  -어, 방송실에 놨어.

  -케이크 안 녹으려나. 날이 더워서.

  -에어컨 틀어 놓고 나왔지.

  -오케이.

  -야··· 나 진짜 미안한데··· 나 몸이 좀 안 좋아서

  -갑자기?

  -그러니까, 머리가 갑자기 아프네. 진짜 미안. 케이크 누가 샀어?

  -내가 샀지.

  -케이크 내가 살게. 준우, 계좌 좀.

  -어··· 뭐 아픈데 어떡하냐··· 계좌는 됐어. 그냥 나눠서 사지 뭐.

  -아니야, 내가 살게. 하연이한테, 생일 축하한다고 좀 전해줘.

  -어쩔 수 없지··· 가서 쉬어라. 하연이한테는 케이크 너가 샀다고 말할게.

반으로 가서는 잠시 칠판을 멍하게 바라보다,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저 죄송한데, 몸이 좀 안 좋아서요. 혹시 오늘 조퇴 좀 할 수 있을까요?

  -조퇴···? 그래, 뭐··· 내일 아침에 처방전이나 진단서만 한 장 떼서 오세요.

  -넵, 감사합니다.

병원에 들러서 처방전을 한 장 떼고, 곧장 집으로 들어갔다. 눈앞이 핑글하고 돌아갔다. 아마 바로 잠에 들었다가, 배가 고파서 돌았었나, 아니면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던 탓에, 비가 집에 들쳤었나.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 잠에서 깼을 땐, 타코야끼가 먹고 싶었다.

좋아하는 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무인도에 갇혔을 때,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을 세 가지만 고르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고를 수 있는 세 가지는 있다.

그중, 가장 첫 번째가 타코야끼였다. 누군가는 멍청한 선택이라고 말하겠지만, 마음껏 그렇게 생각하라지. 나는 타코야끼를 맛있게 먹어치우고, 미련 없이 굶어 죽어버릴 테야. 특히 우리 집 앞 가게 앞에서 파는, 가쓰오부시가 잔뜩 올라가 있는 치즈 타코야끼는,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럼 그렇고말고.

가정부 아주머니는 일주일에 3일 정도 출근을 하셨다. 출근을 하시는 날이면, 저녁을 차려두고 퇴근을 하시지만, 아닌 날은 저녁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나는 집 앞으로 치즈 타코야끼를 먹으러 갔다.

  -저, 손님 죄송한데, 지금 주문이 좀 밀려서요··· 한 30분 정도는 걸릴 거 같은데, 혹시 괜찮으신가요?

  -아, 네네.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타코야끼를 기다릴 때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향긋한 버터향과, 구워지는 반죽 냄새를 맡으며, 기대를 한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이미 알고 있는 맛을 상상한다. 이건 타코야끼를 먹기 전에 언제나 하는 일종의 나만의 의식이었다.

  -어서오세요.

의식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참에, 가게 문이 열렸다. 이어서 키오스크와 손톱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적잖이 거슬리는 소리였기에,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인상을 쓴 채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옮겼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건, 키오스크를 공격적으로 누르고 있던 손톱이었고, 그다음엔 가느다란 손가락, 손가락을 타고 올라간 곳엔, 하얗고 얇은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되게 예쁜 손목이란 생각을 했다. 시선이 손목에서 팔을 타고, 얼굴까지로 올라갔다. 하연이 서 있었다.

  -어?

급하게 에어팟을 끼고,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유튜브에 들어가서 가장 맨 위에 뜨는 동영상을 재생했다. 하연이 주문을 마치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느껴졌다. [혁오-New born] 이라는 들어본 적 없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내 왼쪽에 앉았다. 온 신경이 몸의 왼쪽에 쏠린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하연이 내 어깨를 콕 찔렀다. 몰려있던 신경의 균형이 와르르 무너졌다.

  -어? 뭐야.

  -안녕.

  -어, 안녕.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다시 에어팟을 끼려던 차에, 하연이 내가 말을 걸었다.

  -케이크 잘 먹었어. 고마워.

  -아, 잘 먹었으면 다행이다. 생일 축하해.

  -몸은 괜찮아?

  -응 그럭저럭.

  -너, 거짓말 되게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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