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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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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Jul 28.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하연

64.

하연과 타코야끼를 나누어 먹을 때는, 비가 올 때를 제외한다면, 언제나 공원에 있는 정자로 향하였다.

그 정자는 되게 낡은 정자였는데, 그만큼 세월의 흔적이 많이 묻어있던 정자였다. 이곳저곳에 긁힌 자국은 수도 없이 많았을뿐더러, 크게 부서진 적이 있던 건지, 보수공사를 한 흔적도 곳곳에 있었다.

내가 그 정자를 좋아했던 이유는 긁힌 자국들만큼이나, 많았던 낙서들 때문이었다. 거기에 적혀있던 낙서를 읽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것 봐. 도영이랑 지원이는 4년 동안 사귀었나 봐. 2015년 10월 8일 도영 하트 지원 보여?

  -그렇네.

  -이쪽에는 16년, 여기에는 17년도 거 있고, 18년도 거는··· 아까 어디 있었는데.

  -어, 여깄다.

  -맞네, 거기 있네. 19년도 거는 없지.

  -없는 거 같은데.

  -왜 헤어지셨어요. 도영 지원씨.

  -아쉽네.

  -그러게 말이야.

  -나이테 같다.

하연이 웅얼거리며 말했다.

  -낙서가?

  -응. 만들었을 때부터 이렇게 낙서가 많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그치

  -하나 적을까.

  -뭐라고?

  -하연 왔다 감.

  -너무 딱딱하지 않아?

  -하연 왔다가요 v

  -뭐가 다른 거야.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하연식 유머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는, 아마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거 어때. 타코야끼 맛나요.

  -왜 맛나요야. 맛있어요라고 하면 안 돼?

  -그건 좀 정 없어 보이잖아.

  -그런가?

  -너 펜 있어?

  -나 없는데.

  -아쉽네, 다음에 적는 걸로.

  -그러자. 다음에도 오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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