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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Aug 01.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하연

66.

사람은, 저마다 각자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언제였는지. 상당히 오래된 기억이지만, 그 말을 또렷이 기억하는 걸 보면, 그 당시 나에게 꽤나 인상적인 말로 닿았었나 보다.

하지만 어딘가 나와 완전히 똑 닮은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충돌하게 된다면. 그건 세계관의 확장일지, 지루함의 확장일지. 이 생각은 한참 비가 많이 오던, 저번 장마 기간 동안에 많은 시간을 할애캐 했던 생각이었다.

아, 주제와 벗어난 이야기를 잠깐만 하자면, 나는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장마를 꽤나 좋아한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에, 우산을 들고 오지 못한 사람들이 어디론가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평소에 창밖을 바라보며 시답지 않은 생각을 즐겨하는 나로서는, 장마 동안에 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만큼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닌, 사색에 잠긴 감상적인 사람처럼 비춰지는 게 좋았다.

다시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와, 작년에 하던 생각은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던 미완의 생각이었고, 다시 돌아온 이번 장마 기간엔, 그와 반대로, 나와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나의 세계관의 충돌이 있다면, 그건 나의 세계관의 멸망일지, 새로운 세계의 탄생일지에 대한 고찰이 주어진 새로운 숙제였다.

하연이 생각났다. 나와 같은 세계를 가지고 있을지, 나와는 전혀 다른 반대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지, 그 안에 바다는 있는지, 비는 내리는지, 식물은 자라는지, 온통 사막뿐인지, 꽁꽁 얼어 있는지, 생명체는 살고 있는지. 하연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파악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랬다.

그럼 내 세계와 하연의 세계가 맞닿게 된다면? 그건 세계관의 확장일지, 지루함의 확장일지 두 행성의 멸망일지. 바다도 있고 식물과 생명체도 살고 있으며,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장마까지 있는 새로운 세계관의 탄생일지.

이번에도 장마가 끝날 때까지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시 한번 해답을 내지 못한 질문을 만들어 찝찝한 느낌이 들지만, 장마는 원래 찝찝한 뒷맛이 있어야 옳게 된 장마라는 마음으로,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컵 안에 가득 담아와도, 5분이 채 지나기 전에 몽땅 녹아내리던 얼음이, 10분이 지났을 때도 녹지 않고 살아있었다. 드디어 여름이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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