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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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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Aug 10.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하연

72.

그날 이후로도 하연은 이따금씩 나에게 장난을 걸어왔다. 어떨 때는 콩알탄만한 작은 장난이었고, 어떤 날에는, 옆에서 폭죽이 터진 것처럼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장난이었다.

그런 장난을 칠 때면, 하연이는 표정을 잘 숨기지 못했다.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나에게 장난을 칠 때면, 기뻐하는 하연의 표정을 봤고, 받은 장난에 상응하는 수준의 장난을 돌려주지 않았을 때 드러나는, 묘하게 서운해하는 표정을 보았다. 그게 참 재밌었다.

그날은 하연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체육시간에 나에게 물총을 쐈다. 등이 흠뻑 젖은 나는 어떤 장난으로 받은 걸 돌려주지 싶은 마음에 주변을 둘러봤고, 눈앞에는 마침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벌레가 보였다.

‘벌레를 봤다’라는 생각은 ‘저걸 잡아야겠다’라고 이어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벌레를 잡았다’에서 ‘저 물총 살인마의 어깨에 이걸 올려주어야겠다’라는 사고로 번지기까지도, 그다지 긴 시간이 들지 않았다. 짧은 순간에 모든 사고를 마친 나는 저 멀리에 있던 하연에게 다가가, 슬며시 벌레를 어깨 위에 올려두었다.

어깨에 있던 벌레를 본 하연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털썩 쓰러져 앉아 입술을 파들파들 떨었다. 그게 장난이 아니었다는 걸 안 시점은, 하연의 눈에 쌀알만 한 눈물이 고여있을 때였고, 그제서야 나는 용케도 아직 안 날아가고 어깨에 붙어있던 벌레를 떼주었다.

  -왜 하필 벌레야···

라는 짧은 감상을 남기고, 하연은 교실로 돌아갔다, 나는 잠시 멍을 때리다, 하연이를 따라 교실로 들어갔다.

  -미안해. 장난이었어.

  -알아.

  -벌레 무서워하는 줄 몰랐어.

  -무서워해.

  -미안해. 앞으로는 이런 장난 안 칠게.

  -그래.

  -이따 학원 끝나고, 맛있는 거 먹을래?

  -응.

  -내가 살게.

  -됐어.

지금도 폭죽이 터지는 걸 보고 있자면, 왜인지 황홀경에 젖어 입이 벌어지곤 한다. 하긴 새까만 밤하늘에, 화려한 불꽃이라니, 아무래도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긴 하니까.

쏘아 올린 불꽃이 꺼지고 나면, 어딘가 공허한 뒷맛이 남는다. ‘벌레 어깨 위’ 사건을 이후로, 하연과 나는 서로에게 커다란 장난을 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터뜨렸던 커다란 폭죽 같았던 장난에서부터, 나의 짧았던 영광의 시대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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