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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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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일 Aug 15. 2023

순애(殉愛/純愛)

나와 하연

75.

  -너 손목 되게 예쁘다.

그 말은, 마침 하연의 손목에 감겨있던 파란색 머리끈을 보고 했던 말이었다. 그때 정자에는 하연이랑 나밖에 없었는데, 그 아이는 자신에게 한 말인지 되묻는 양, 날 바라보며 자신에게 손가락을 가리켰다.

  -내 손목? 징그럽지 않아? 핏줄 다 보이는데.

  -핏줄까지는 본 적 없는데. 오, 너 핏줄이 되게 청록색이다.

  -손목 예쁘다는 칭찬은 처음 들어본다.

  -아무래도 흔한 편이 아니긴 하지.

하연이 이래저래 자신의 손목을 뜯어보고 있었다. 한참 손목을 바라보다, 꺼냈던 얘기는 손목 얘기가 아니었다. 달이 둥글다는 얘기였는지, 요즘 낮에는 무더운 데에 반해 저녁에는 추워서 고역이라고 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길래, 나도 그런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도 되게 신기하지 않아? 그때 나 아팠던 날 있잖아. 맞아. 그날 너 생일이었잖아. 그때 너가 타코야끼 먹으러 그 가게 안 왔으면, 아직도 어색했을 텐데. 우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지.

  -그거 우연 아닌데.

  -어?

  -그거 우연 아니라고.

하연이 마지막 남은 타코야끼를 입에 넣었다.

  -그럼 뭐야?

  -집 가는 길에, 너 있길래 들어간 거였어. 그 뒤로도 몇 번 더 그랬는데.

  -그 이후로도? 그럼 우리 만난 게, 우연히 만난 게 아니었어?

  -아니었지.

  -이건 좀 충격인데.

  -우연이 계속되면, 그게 우연이 맞는지 한 번 생각해 봐야지. 우연인지, 누군가의 의도인지.

하연이 기지개를 켰다. 내려앉은 정적을 깼던 건 내 쪽이었다.

  -무슨 의도였는데?

  -남은 거 먹고 얘기할까?

  -방금 너가 먹은 게 마지막이었어.

  -뭐야, 이건 좀 부끄러운데.

  -좀 더 사 올까?

  -아니야, 됐어 배불러.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내가 배고프다. 좀 더 사 올게.

  -아니야. 잠시만 앉아봐.

하연이 내가 입고 있던 가디건을 잡았다. 이어서 무어라 말을 하려 하길래,

  -우연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다행이다.

  -너랑 장난치는 것도 재밌어.

  -나도 재밌어.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어.

  -나도.

  -굳이 장난 안 쳐도.

  -맞아.

  -그럼···

  -만나자.

  -응,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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